[신호현의 독서칼럼] 죽음 너머에 삶을 노래한 죽음의 철학자
[신호현의 독서칼럼] 죽음 너머에 삶을 노래한 죽음의 철학자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11.29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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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현 서울배화여중교사/ 시인
 도기엽의 '시간 넘어 저 공간 넘어'
 도기엽의 '시간 넘어 저 공간 넘어'

어제 도빈 조기엽 시인의 부음을 받았다. 조기엽 시인이 누구냐구요? 어제 송파문인협회 시화전 및 한성백제백일장 시상식에 참가해 묵묵히 두 번째 시집 『시간 넘어 저 공간 넘어』를 열심히 사인해서 나눠 주시던 시인이 있었다.

운영진은 행사를 진행하느라 제대로 인사도 못했고, 시인들은 각자 자기 시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정담을 나누느라 뒷좌석 한적한 곳에 앉아 있는 시인을 주시하지 않아도 조 시인은 열심히 사인을 하고선 송파구청장을 비롯 한국문인협회, 송파문인협회 시인들에게 시집을 나눠주곤 했다.

행사를 성황리에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돌아와 들고온 짐을 정리 못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시집 제목을 보는 순간 시집이 아니라 부고장으로 다가왔다.

『시간 넘어 저 공간 넘어』라면 죽음 저편의 세계를 말하는 것 아닌가. 조 시인은 이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이생 너머 죽음의 세계를 탐구했던 것이다. 그 너머의 것들을 불러 시로 쓰고 시집을 내어 자신의 부고장으로 사인해서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인생을 더욱 의미 있게 살 수 있다.'는 말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고통을 끌어안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담은 김인종 김영철의 저서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라는 책은 죽고 싶도록 살고 싶은 열정을 역설로 표현하여 고통 속에 있는 삶을 열정으로 극복할 것을 권하는 책이다. 조 시인은 이생에서 이미 죽음을 연구하여 시로 승화시킨 '죽음의 철학자'가 아닐까.

시집을 펼쳐 '시인의 말'을 보니 '시집을 읽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라는 말을 통해 시인이 기독교인이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먼저 눈이 간 곳이 '제3부 구원'이었다.

과연 조기엽 시인은 구원을 받았을까. 궁금하죠? 물론 필자도 누구도 한 시인의 구원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다.

조 시인이 '구원'(74쪽)에 대해 "구원 받고 싶거든 / 진실하라 / 진 없는 구원 공 하니 // 구원 받고 싶거늘 / 정직하라 / 선없는 구원 허 하니 // 구원 받고 싶을 양 / 아름다워라 / 미 없는 구원 덧없느니"라고 노래하고 있다.

조 시인에게 있어 구원의 조건은 '진, 선, 미'인 것이다. 진, 선, 미의 행동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구원의 조건은 '진, 선, 미'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것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 종교 개혁자 캘빈주의 신앙이다.

구원을 추구하는 조 시인은 '하나의 죽음'(75쪽)에서 "하나의 죽음 / 슬픈 비극 / 공즉시색이오 // 많은 죽음 / 통계 숫자 불과하니 / 색즉시공이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매우 심오한 진리를 추구하는 시이다.

본래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말은 불경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니 조 시인은 기독교인이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의 의미를 탐구한 넓은 의미의 종교적 고찰이다. 색(色)이란 형태가 있는 것, 대상을 형성하는 물질적인 것, 넓게는 대상 전반을 가리키고, 공(空)이란 일체 물질이 없는 비어 있는 공을 말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체(色)는 공(空)이고, 형상은 일시적인 모습일 뿐, 실체(實體)는 없다는 죽음의 철학이다.

조 시인은 '죽음에 관한 몇 가지'(80쪽)에서 친구의 죽음 부고를 듣고 죽음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시인은 이순(耳順)의 나이를 살기까지 얼마나 뜨거운 삶을 살았는가.

저 넘어 전북 순창 시골에서 고려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ROTC 장교로 대한민국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대성자사고에서 34년 간 수학을 가르쳐 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퇴임하면서 국가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했으니 얼마나 영예로운 삶을 살아왔는가. 퇴임 후에도 월간 국보문학에서 시와 수필 두 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여 시분과 이사, 송파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온전히 삶을 위해 살아왔는데 '죽음 이야기 몇 가지'(80쪽)에서는 "몇 달 소식 없던 친구 전화 / 친구 분인 목소리 / 하늘나라 갔단다 / 70초에 가다니 100세 시대에 / 죽음은 이제 먼 얘기가 아닌 듯"이라고 쓰고 있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던 시인은 이제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뭐, 삶과 죽음의 문제는 비단 조 시인만의 고민은 아니다. 이 세상에 생명을 부여받은 짐승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 인간의 공통 분모이다. 어쩌면 어떻게 살까는 분모이고 어떻게 죽을까는 분자가 되어 분모와 분자가 같아져서 약분이 되는 날에 온전한 숫자 1로 남아 나의 삶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조 시인은 살며 성공적인 삶을 위해 부지런히 집을 지었을 것이다. '1) 현실의 집'을 잘 지어 서울 아파트에서 살 것이고, '2) 가상의 집'을 지어 블로그, 홈페이지를 운영할 것이고, '3) 생각의 집'을 지어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강의를 다닐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면서 '4) 영혼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죽어서 하늘나라(天國)에 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열심히 하늘나라에 기둥을 올리고 서까래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5) 관계의 집'을 짓기 위해 열심히 SNS 대화방을 검색하고 글을 올릴 것이며, 다만 사는 동안 몸이 건강하게 살자고 '6) 건강의 집'을 짓기 위해 맛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보조식품도 열심히 챙겨 먹고 있을 것이다.

조 시인은 '죽음의 시인', '죽음의 철학자'로 '시간 넘어 저 공간 넘어'로 죽음만 노래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애국 장교 출신 시인으로 애국의 시를 쓰고 있다. '거짓말의 비극'에서는 거짓이 활보하는 나라를 보면서 양치기 소년을 비유로 시를 쓰고 있다.

'거짓 나라 거짓 세상'(60쪽)에서는 "동방 반도에 거짓 나라 있었네 / 거짓말쟁이들이 왕이 되고"라고 나라를 걱정하며 한탄하고 있지만 마지막 연에서는 "거짓 세상 / 진실에 / 허무하게 무너지니"라고 마무리하면서 사필귀정(事必歸正), 진실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마스크 대열'(26쪽)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의 비극을, '어느 노교수의 인생 고백'(44쪽), '도스트예프스키의 5분'(46쪽), '시지프스의 신화'(48쪽)에서는 철학자의 사고를 시로 표현하고 있다.

조 시인은 '죽음 너머의 삶을 노래한 죽음의 철학자이지만 삶에 소중함을 노래한 시인이다. 시시각각 인생의 겨울은 다가오지만 '생은 바람이니'(17쪽) '사는 동안'(14쪽) 보듬어 주면서 '살아 있는 날 사랑하자'(16쪽) '그대 있음에'(13쪽) 사랑과 배려와 감사를 알아 행복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산 눈물 인생 눈물'(24쪽)에서는 "만년설 설산 / 눈 녹아 눈물 / 서러운 / 산 눈물 흐른다 // 만년설 인생 백발 / 삶 녹아 눈물 / 서러운 / 인생 눈물 흐른다"로 표현하고 있다. 그야말로 죽음의 철학자다운 시이다. 시집 『시간 넘어 저 공간 넘어』는 시간 너머 저 공간을 바라보는 죽음의 철학적 부음(訃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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