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지방대학 시대’ 헛구호?
[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지방대학 시대’ 헛구호?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9.1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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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 과제 중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내걸었다.

지역인재 투자협약제도, 지자체의 고등교육 권한 강화, 대학 중심 산학협력·평생교육 등을 통해 지방대학을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지났는데도 교육부 수장 자리는 오리무중이고 액션플랜은 온데간데없다.

기껏 대통령 한마디에 반도체 등 첨단학과 증원 문제로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을 편 가르기 한 게 고작이다.

그러더니 15일 교육부가 야심찬 카드를 내놨다. 저 출산 쇼크를 막겠다며 대학정원을 줄이는 계획이다. 이번에도 돈줄이다.

국민 세금인 ‘돈 다발’을 흔들며 정원을 줄이는 대학엔 지원금을 주는 형식을 답습했다. ‘전가의 보도(寶刀)’ 같은 ‘완장 행정’이다.

정원 1만6197명 감축, 지방이 88%

2025년까지 전문대와 4년제를 포함한 대학 입학정원을 1만6197명 줄이는데 국민 세금 1600억원을 나눠준다. 찔끔 찔끔 정원을 줄이는 대학이 전국 96개 대학이다.

96개 대학이 많은 것 같지만 착시다.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합하면 전국의 대학 수가 330개가 넘는다. 1년에 27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시대에 코미디 같은 한전공대를 만들더니 대학 정원을 줄이라고 윽박지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교육부가 신뢰를 잃은 원인 중 하나다. 교육 거버넌스가 뒤엉킨 상태에서 이번 정책은 편 가르기만 심화시킨다.

대학을 만만하게 봤지만, 정원을 줄이겠다는 곳은 전체의 3분의 1도 안 된다. 그것도 ‘인 서울’ 대학은 학부 정원을 대학원 정원으로 돌리는 꼼수로 돈도, 실리도 챙겼다. 교육부는 눈을 감았다.

“지방대만 죽인다” 수도권대와 갈등 심화

반면 지방대는 음참마속의 심정으로 일부 정원을 줄이며 교육부에 복종했다. 전체 감축인원 1만6000명 중 비수도권이 1만4244명으로 88%, 수도권이 22곳 1953명으로 12%인 게 그 반증이다.

지방대는 정원 조정이 국토균형발전에 역행한다며 반발한다. 반도체학과 파동 때보다 더 격할 조짐이다. 2021년 수도권 대학 입학 인원은 19만66명으로 전체 입학 정원 47만3189명의 40.2%를 차지하는 데 지방대학만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게다.

감축인원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권) 대학이 4407명으로 가장 많고, 충청권(4,325명) 호남·제주권(2,825명), 대구·경북·강원권(2,687명) 순이다.

사실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수도권은 ‘블랙홀’이다. 역대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목 놓아 외쳤지만 허상이었다. 그 원인의 하나는 교육이다. 교육 중에서도 대학이다.

‘SKY 대학’의 지방 이전을 운운한 행안부 이상민 장관의 언급이 의도적인지, 설화(舌禍)인지 헷갈리는 까닭이다.

그 만큼 대학은 인구 분산이나 지역 균형발전의 뜨거운 감자다. 그렇다면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과연 ‘돈 잔치’로 정원을 줄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감사원 “2024년까지 9만7000명 줄여라”

대학은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다. 2021년 43만 명인 입학 자원은 2031년까지 40만 명대를 유지하다 2032년 30만 명대, 2040년 20만 명대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대학교육연구소 ‘대학구조조정 현재와 미래’ 연구보고서, 2021).

대학의 미충원 인원도 2024년에 8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도 궤를 같이 한다. 감사원은 지난해 ‘대학기본역량 진단 및 재정지원 사업 추진 실태’ 감사보고서를 통해 문재인 정부(2019~2021학년도)의 대학정원 감축실적이 박근혜 정부(2016~2018학년도)의 43%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2021년 전국 대학(전문대 포함)의 신입생 미달 인원은 2020년의 3배인 4만586명에 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2024학년도까지 입학 정원을 9만7000명 감축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수도권대 ‘오만’ vs 지방대 ‘홀대’ 충돌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1만6000명 정원 감축은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 상당수 대학들은 온 몸의 세포가 죽어가는 데도 산소 줄을 끼고 연명하는 형국이다.

자율적으로 살을 빼라고 해봤자, 수도권 대학은 여전히 오만하고 지방대학은 여전히 홀대라며 좌절한다.

극약처방으로 모든 대학의 정원을 n분의 1씩 줄이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자율경쟁 원칙을 좀 먹는 행정이다. 자칫 공도동망(共倒同亡)한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의 입장 차는 극명이다. 지방대는 “아랫목 특혜를 누리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확 줄이고, 지방대학은 죽든 살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주장한다.

반면 수도권 대학은 “잘 살고 있는 우리를 도매금으로 넘기지 말고 지방대를 줄이라”고 맞선다. 반도체 등 첨단학과 정원 파동 때 생생하게 본 장면 아닌가.

0.8명 출생, 국립대·교대發 개혁부터

한 해 출산율이 0.8명에 불과한 시대에 이런 코미디를 언제까지 방영할 것인가. 학령인구 절벽 시대에 교육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교대는 신규 교사를 입학정원의 3분의 1밖에 뽑지 않는 데도 건드리지 않고, 국립대는 학과 운영이 방만한 데도 그대로 두면서 지방 사립대만 옥죄는 ‘관치행정’도 문제다.

국립대에 전문대 전공을 카피한 작업치료학과, 방사선학과, 안경광학과, 건강뷰티향장학과, 뷰티산업학과, 외식산업학과가 있는 게 말이 되나. 고등교육 재구조의 시발탄으로 국·공립대와 교대부터 개혁하는 게 순리다.

교육부와 대학이 코에볼류션(coevolution, 共進化)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대학의 절반은 살아남기 힘들다. 규제 중심적, 국가 중심적 틀을 자율 중심적, 지역 중심적으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의 자율적 변신이 중요하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2008년 141명이던 컴퓨터공학 정원을 2020년 745명으로 다섯 배 늘렸는데, 서울대는 같은 기간 55명에서 70명으로 겨우 20명 늘렸다는 게 그간의 화제였다.

그러나 그건 서울대의 변명에 불과하다. 학부 전공이 134개나 된다. 대학원에나 있을 법한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미학과 같은 쪼개기도 있다.

손해 안보고 그 많은 전공을 탐하다보니 컴퓨터공학 전공을 늘릴 수 없었던 것이다.

시카고대, 존 듀이 교육학과까지 폐지

지방대학도 마찬가지다. 국립대를 중심으로 온갖 전공을 지키려다 몸집을 줄이지 못했다. 물론 순수 학문 유지와 계승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게 교수를 위한 것이지 과연 학생을 위한 것인가.

미국 시카고대는 1990년대 교육학의 거장인 존 듀이가 몸담았던 교육학과를 폐과했다. 교육학의 아이덴티(identity)가 없고 소통이 없어 타 학문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게 바로 파괴적 혁신 아닌가.

교육부·대학, 共進化에 승부 걸어라

대학정원 조정은 큰 과제를 남긴다.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만들려면 교육부도, 대학도 함께 공진화해야 한다. 말이 쉽지 실행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정파 행정’과 대학의 ‘이기주의’를 동시에 파괴해야 길이 보인다. 대통령실에 기가 죽고 기획재정부에 윗자리까지 내준 교육부는 교부금 재구조화 등 재정확보와 고등교육 리모델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대학은 존 듀이의 교훈을 체화해야 한다. 현재대로 가면 ‘지방대학 시대’는 헛구호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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