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현의 독서평론] 최경숙의 '부다페스트 해바라기'
[신호현의 독서평론] 최경숙의 '부다페스트 해바라기'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9.06 2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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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해바라기
부다페스트 해바라기

책을 읽다 보면 손에서 놓기 아까운 책이 있다.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부다페스트 해바라기'가 그랬다. 내 손 안에 작은 여행이다.

그것도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저기 멀리 동유럽 헝가리다. 시집을 읽는 내내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소개하는 책들은 새로운 것을 알려줘도 신선하지 않았는데 최경숙 시인의 '부다페스트 해바라기'는 늘 신선했다.

늘 손에 두고 읽는 책은 가까이 있어 잃어버리는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사라졌다. 3분의 1 정도 읽었는데 3분의 2가 없어졌다. 시집을 받으면 책값은 못 드려도 시집평이라도 써드려야겠다는 마음 속 약속이 깨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시집을 새로 살까. 아니야 분명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어디에서 뛰어 나올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있으면 학교 책상에 있을 것 같고, 학교에 있으면 꼭 집에 서재에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방황하는 동안 또다시 시집들이 몇 권 날아와도 새 시집을 읽을 수가 없었다. 여행을 하다 중간에 돌아온 느낌이기도 하고 일을 열심히 하다 마무리 못 짓고 중간에 끝낸 기분이다. 그런데 새로운 일들은 여기저기 터지다 보니 '부다페스트는 멀어지고 해바라기는 시들고 있었다.

그러다 조영희 시인과 만나 식사를 하는데 필자가 서평을 써서 올리고 여기저리 수십 권 씩 주문이 들어와 시집이 바닥나는 일이 생겼다는 이야길 들었다. 조영희 시인은 현대판 정형시조를 너무 잘 써서 "감히 황진이에 견줄만 하다."라고 평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빛바랜 해바라기 같은 시집을 작심하여 찾았다. 유독 비가 많았던 지난날에 비 맞지 않게 하려고 종이봉투에 넣어둔 시집이 빼꼼이 고개를 내밀었다. 최경숙 시인 만나듯 반가웠다.

드넓은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부타와 페스트가 합쳐진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최경숙 시인과 부다페스트 동반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족 여행 때 부다 궁정을 지키는 누우런 군복 입은 병정들이 총을 들고 경비라는 모습이 떠올랐다.

가난해서 굶주렸던 시절 씻지 못해 피부에 구석구석 곰팡이 세균으로 버짐 일던 모습처럼 공산주의 세력들은 아직도 음습한 땅에 번져 그들만의 서식지를 넓혀 가려하고 있다.

평화를 향한 우크라이나의 발길에 러시아가 총구를 들이대는 모습도 같은 선상에 올려져 있다. 헝가리는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서 전쟁을 겪으면서 많이 피폐되었다. 가난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아름다운 도시에 사상만 들어가면 오랜 경제 침체로 가난과 굶주림 속에 허덕였다.

시집을 펼쳐 첫 번째 시를 읽으면, 시집을 다 읽은 듯 시인의 선명한 이미지가 형성되는데 '부다페스트 해바라기'는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부다페스트를 향해 자동차로 달리다 / 수천만 평의 해바라기 밭을 만났다 // 다뉴브강 푸른 물을 마시고 자란 / 키 작은 해바라기'('부다페스트 해바라기' 부분, 12쪽) 단지 네 줄을 읽었는데 필자의 눈은 부시고 가슴은 마구 뛰었다.

어쩜 필자는 가보지 않았는데 수 년 전 최 시인이 보았던 노오란 해바라기 평야에 함께 서 있는가. 일본 홋가이도 여행 중에 보았던 알록달록한 패치워크를 떠올렸다. 그 감동을 '노란 원복을 입고 ~~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었다'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빨간 외발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 제 힘으로 세상을 버틸 수 있을까'('괜한 걱정' 부분, 13쪽) 시인은 '괜한 걱정'이라 했다. 또 '오지랖'이라 했다. 필자가 자주 듣는 쿠사리(일본어, 핀잔)다. 이웃의 어려움에 자꾸 관여하면 쓸 데 없는 참견이란다.

그런데 어쩌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을. 참새가 쩔뚝거려도 가슴이 아픈데 시인은 외발 비둘기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 도르륵 도르륵 눈알 굴리더니 / 양쪽 날개죽지 한껏 들썩거리며 / 한 발로 폴짝폴짝 뛰어 먹이를 찾는 척하다가'로 표현하고 있다.

최 시인의 '괜한 걱정'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걱정이다. 걱정을 안하면 다들 그럴 것이다. '그게 사람이냐, 짐승이지'라고. 사람들은 다 외발 비둘기를 걱정해 주는 심정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믿는다. 시인은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아니, 들여다 보이고) 시라는 매개체로 표현할 뿐이다. 시인은 자세히 보여지는 것을 지나칠 수 없기에 오지랖이 넓다. 가지가 꺾여 있어도 팔이 잘려나간 듯 아프다.

말라 있는 화초를 보면 목이 말라 물을 주고 지나가야 한다. 그게 시인이다. 시인이 세상의 아픔을 시로 노래하고 새 희망을 갈구하는 힘은 '괜한 걱정'과 '오지랖'이다.

이번엔 시집 중에서 뽑기를 하듯 맨 마지막 시를 뽑았다. '그리움을 보자기로 싸서 정표로 보낼까 /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당신 / 영원한 이별을 고할까'('하피첩' 부분, 112쪽) 하피첩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라는 뜻으로 정약용의 부인 홍 씨가 유배 떠난 남편이 그리워 시집올 때 입은 다홍치마를 그리움의 글과 함께 보냈는데 정약용이 치마를 잘라 종이를 붙여 4개의 첩으로 만들었는데 현재 3개만 전해진다.

아마 3자녀와 부인 홍 씨에게 글을 보냈을 것이다. 하피첩 하나만 보아도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잘 되어 그대로 홍 씨 부인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얼룩진 눈물 자국 그대로 뿌려진 채로 / 지아비에게 보내진 빛바랜 하피' 그대로 홍 씨 부인의 마음이다.

처음과 끝 시 세 편만 읽어도 나머지 64편의 시를 다 읽는 듯하다. 최 시인의 시는 첫째, 시어를 통해 이미지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시를 통해 감동을 주는 힘은 심상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5감각이다. 그 중에 시각적 이미지는 인지능력에 75%를 차지한다.

소설에서도 묘사(그림을 그리듯이 설명)가 뛰어나야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앞에 두 시에서 짧은 문장으로도 독자를 시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이미지화 능력이 우수하다. 어떤 대상을 독자와 같이 보는 효과를 드러낸다. 이는 시공을 초월하고 있다.

둘째, 상황을 서술하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음식을 먹을 때 식감처럼 언어의 청명감을 살리고 있다. 마침표니 느낌표도 없다. 시에서 마침표를 고집하는 시인도 있다지만 사족이다.

셋째, 자연물에 대한 감정이입이 매우 뛰어나다. '괜한 걱정'이나 '오지랖'을 넘어 '하피첩'은 최 시인이 그대로 '홍 씨 부인'이다.

최경숙 시인은 충남 서산 출생으로 2007년 문단에 등단하여 수필집 『아버지의 보따리』를 출간했다. 그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시 '외발' 외 4편을 써서 두레문학상을 탄 중견 작가이다.

한국문인협회 송파지부 이사로 문단활동에도 열정적이다. 사실 최 시인과 대면하여 열 마디의 인사도 안 나눴지만 시인은 작품으로 교감하기에 최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필자가 시인이라고 하기 부끄럽다. 시가 수필처럼 스토리가 전개되는 듯하다가도 정곡을 찌르는 감동은 깊다.

시에서 아픔도 느껴지고 기쁨도 느껴진다. 시집 한 권에서 최 시인의 성숙한 인생이 잘 익은 김치처럼 상큼하다.

시해설은 마경덕 시인이 '자연과 인간과의 균형을 찾아가는 길'이라 했다. 마 시인은 "시를 쓰는 일도 그 고요한 속에 파묻힌 표적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가 조준한 것들은 다 시가 되었을까. 표적을 찾았다고 다 시가 되지는 않는다.

논리적 사고와 재구성으로 "표적의 심장"을 명중해야만 시로써 유효하다.'고 작시의 과정을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인용하면서 적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최경숙 시인이 자연을 대상으로 포착하여 시선의 과녁 명중으로 시가 탄생하여 다시 인간의 이야기로 빗대는 표현을 시의 '균형'이라 했다.

최 시인은 겸손히 '푸성귀같은, 순전히 날것'이라 자세를 낮췄지만 마 시인은 시해설에서 '투명한 감각으로 미세한 생명의 숨소리조차 품어 안는'이라고 한껏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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