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 교육부장관만 몰랐던 초등교실 분투기
[현장 칼럼] 교육부장관만 몰랐던 초등교실 분투기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8.11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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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위지영 서울신남성초등학교 교사
위지영 서울신남성초 교사
위지영 서울신남성초 교사

정부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교육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자 사실상 철회했다. 박순애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번 만 5세 입학 파문은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함에 있어 교육의 전문성과 절차성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각인시켜준 사건이다.

초등학교는 만 6세부터 만 11세의 아이들이 동일한 시간표에 따라 생활한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은 8시 40분~9시 등교, 40분 수업, 10분 쉬는 시간이라는 표준화된 학교생활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초등학교 생활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운영되던 놀이 중심 감각 통합 수업 방식과 다르다. 20명 전후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책상과 의자에 40분 동안 앉아 공부하는 것은 만 6세 아동들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휴직하는 부모들이 많고 아이의 학교 적응을 가정의 최우선 과제로 두는 것이다.

저출산의 주된 원인으로 사교육비와 경력단절의 부담이 크다는 조사를 근거로 정부는 입학 연령을 1년 낮추면 사교육과 돌봄 문제가 해소되어 출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지만 교육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생각은 다르다.

◆ 교육의 전문성과 절차적 민주성의 중요성 확인

초등학교 1학년은 오후 1시 전후에 하교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오후 3~5시 사이에 하교하는 점을 고려하면 학부모가 느끼는 돌봄 부담이 커진다. 연간 수업일수도 초등은 약 190일인데 유치원, 어린이집은 210일~240일이어서 학부모가 체감하는 돌봄의 부담은 오히려 무거워진다.

맞벌이 가정은 학교 안에 있는 초등돌봄교실과 지역의 돌봄 기관을 이용하는데 현재 돌봄 기관은 신청자 전부를 수용하지 못해 추첨이나 선착순으로 일부만 수용할 수 있다.

돌봄에 탈락한 아이들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며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일명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충분한 돌봄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 5세 입학 연령 하향은 맞벌이 학부모가 느낄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현재 초등학교 아동들의 돌봄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만 5세 아동의 입학으로 늘어나는 돌봄 수요 학생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돌봄교실은 학교 수업만큼 관리되고 있지 않다. 만 5세 아동이 수업을 마치고 돌봄교실로 가면 그저 아이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만 5세 입학은 사교육의 진입 연령도 함께 낮추게 될 것이고 이른 나이에 경쟁 활동을 할 우려가 있어 학부모를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2017년 조사된 영유아 사교육비는 연간 3조 7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배를 뛰어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만 5세 아동의 초등입학은 더욱 가파른 사교육비 폭증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실제로 7월 29일 교육부의 입학 연령 하향 발표에 발맞춰 스마트러닝 업체, 교육콘텐츠 제작 및 컨설팅업체 등 교육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상승한 점을 근거로 들 수 있다.

◆ 급식시간 마다 어르고 달래고 전쟁통

전교생이 같은 규격의 급식판과 의자를 사용하는 급식 환경은 초1 학생들만을 위한 배려가 없다.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동일한 음식을 먹는 학교 급식에 적응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힘든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유치가 빠지기 시작해 앞니 없는 아이들이 많아서 깍두기나 단단한 과일을 못 씹어서 급식 시간마다 매번 어려움을 겪는다. 교사는 아이가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 음식을 챙겨야 하고 편식하는 아이들을 달래고 타일러야 한다.

만 5세 아동의 개인차는 만 6세보다 커서 급식 시간이 지금보다 2배 더 소요될 것이다. 게다가 1월생과 12월생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사실을 감안해 1, 2월에 자녀를 출산하려고 임신을 계획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그만큼 같은 출생연도 안에서도 신체적 정신적 발달에 차이가 있는데 만 5세를 만 6세와 같은 학급에서 생활하게 한다면 13개월~24개월 차이로 인한 당연한 학습 결과와 또래 관계 형성의 수준 차이를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여겨 자신감이 부족해지고 학교 활동에 소극적일 수 있다.

만 5세 아동과 만 6세와 함께 다니는 과도기도 문제지만 그 이후 만 5세끼리 초등학교 1학년을 시작하는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공교육이 수 개념과 한글 기초에 들어가기 어려운 만 5세 아동에게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1년 일찍 입학시키는 것은 학생으로 하여금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 있고 자발성과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으며 조기 한글 교육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자 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뇌과학 및 소아정신과 연구로 밝혀졌다.

문법과 철자를 익히는데 사용되는 좌뇌는 7세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하는데 그 전에 글자를 배우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기회를 크게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뇌는 7세 이후 퇴보하기 시작하므로 영유아기 아이들은 읽기 교육보다 감각을 자극하는 활동이 적절하다. 우뇌 발달 시기를 놓치면 비언어적 의사소통 능력, 창의적이며 직관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충분히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간지각력 발달이 완성되지 않아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학교 안에서 길을 헤맨다. 학교 건물은 대부분 1970년대에 지어져 증축을 거치다보니 구조가 복잡한 곳이 많다. 만 6세 아동들도 보건실, 방과후 교실 위치를 찾기 힘들고 친절하지 않은 학교 구조에 적응하기 어렵다.

리모델링 없이 이대로 만 5세가 입학한다면 학교 환경은 두려운 공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교하는 일도 첩첩산중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방과 후 스케쥴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학교 후문으로 다니는 아이가 정문으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집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만 6세 아동에게도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을 익히는 것이 힘들다. 더군다나 아이들마다, 요일마다 방과 후 스케쥴이 각양각색이다.

◆ 초등 1학년 담임이 극한 직업인 이유

교사가 아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해서 후문으로 가는 아이들, 정문으로 가는 아이들, 방과후교실로 가는 아이들,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 지역아동센터로 가는 아이들, 돌봄교실로 가는 아이들 따로따로 구분해서 순차적으로 데려다주는 훈련이 거의 1년 내내 이뤄진다.

왜 초등 1학년 교사를 EBS <극한직업> 프로그램에서 취재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원격수업으로 전환될 때마다 1학년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는 일로 학교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아이는 혼자 집에 갈 수 없는데 학부모님은 회사에 있거나 곧장 자녀를 데리러 오지 못해 난감했던 일이 많았다. 만 5세 아동이 입학한다면 난처한 상황들은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초1 학생들 가운데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만 5세라면 분리 불안을 더 많이 느낄 것이고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하며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달래야 하는 일이 자주 생길 것이다. 만 6세 아동들 중에는 배변 훈련이 안된 아이들도 더러 있다.

교사는 여분 옷을 미리 교실에 준비해두어야 한다. 학생이 배변 실수를 하면 교사는 샤워기도 없는 화장실에서 서둘러 뒤처리를 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부모에게 연락해야 한다. 교사가 자리를 비운 교실에서 나머지 아이들은 기다려야 한다. 만 5세 아동이 입학한다면 이런 상황이 빈번할 것이다.

물론 단체 생활의 교육 효과와 아동 발달 단계를 고려할 때 만 5세가 적절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문제는 신중한 검토와 현장 조사, 공론화 없이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국가 책임제로 교육의 출발선부터 격차를 해소한다는 의도를 실현하려면 만 5세의 발달 단계를 고려한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졌어야 했다.

◆ 아이를 중심에 두지 않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

만3세~5세 누리과정에서 만 5세를 분리하여 유아학교로 운영하거나 국공립유치원 수가 부족하다면 초등학교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도 타진해볼 수 있었다. 또는 현재의 6-3-3-4 학제개편을 축소하고 그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문제도 함께 논의 선상에 올렸어야 했다.

물론 학생들이 대학 4년을 보내고 바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느라 학교에 적을 두고 오래 머무는 현실을 보면 학제개편은 다양한 영역의 사회문제와 보조를 맞추어 진행되어야 한다.

이번 발표를 두고 시도 교육감들은 교육청 패싱이라고 비판했지만 교육의 최전선에서 만 5세를 마주할 일선의 교사들이야말로 철저히 무시된 계획이었다.

만 5세 입학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당장 2024년부터 학교에 도입될 예정인데 만 5세 아동에게 초등 교육과정을 어떻게 적용하란 것인지 현장의 교사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교육부는 과거에 비해 요즘 만 5세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발달이 빨라져서 1학년에 입학해도 괜찮을 것이라 했지만 이에 대해 실제 연구로 입증된 근거가 없다.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체 발달이나 학습 능력은 향상되었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사회성, 도덕성 발달이 학교에 다닐 만큼 준비가 되었는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조기입학생은 2011년 4089명에서 점점 줄어 2021년 537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만 5세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거나 학교 적응이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을 추적조사한 근거 자료 없이 1년 일찍 보내 1년 일찍 졸업시키겠다는 정책은 어디서 나온 말상일까.

더욱 염려되는 문제는 따로 있다. 2025년부터 입학하는 만 5세 아동은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에 태어난 ‘코로나 베이비’들이다. 뇌 발달은 영유아기에 급속도로 성장하여 생애 초기 경험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출생부터 3세까지 부모와 애착관계를 건강하게 맺고 안정적인 돌봄을 받아야 아이가 성장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회복탄력성이 만들어진다.

생후 3년을 오롯이 코로나19 펜데믹과 함께 보낸 2025년 만 5세가 되는 아이들이 인지적, 심리적, 정서적인 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에 대한 이해 없이 아이들을 중심에 두지 않은 교육정책은 환영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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