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수 칼럼] 학제개편 논란과 ‘에밀’
[한석수 칼럼] 학제개편 논란과 ‘에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8.05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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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석수 공주대학교 정책융합전문대학원 초빙교수
한석수 공주대정책융합전문대학원 초빙교수
한석수 공주대정책융합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최근 루소의 에밀을 다시 펼치게 됐다. 예전에 읽을 때 그의 아동 발달단계 분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학제 개편 논란과 관련하여 갑자기 그의 유아교육 단계는 몇 살까지였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사실 난 그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참된 유모는 어머니이고 아버지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사라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그 당시 유행하던 살롱 문화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소홀함을 질타한 측면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독신으로 살며 하숙집 하녀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다섯 자녀를 모두 고아원에 보내면서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긴 그래서 특정인의 교사 되기는 극구 사양하며 자신의 제자 모델로 제시한 에밀을 고아 출신으로 상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발달단계를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 성년기 등 5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유아기는 '출생에서 다섯 살까지', 아동기는 '다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앞뒤로 낀 나이, 다섯 살은 유아기와 아동기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물론 '까지'를 이하가 아닌 미만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작금의 논란과 관련하여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궁금한 마음에 영역본을 살펴보니 발달단계 연령 자체가 없다. 더 궁금해져 불어 원전을 봐도 단계만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 연령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너무 민감한지 모르겠지만 만 5세를 유아로 볼 것인지 아동으로 분류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공교육 기능을 강조하더라도 학제 개편에 있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동의 발달 수준과 단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피아제(Piajet)가 제시한 인지적 쉐마(conceptual schema)가 단계마다 각기 다른 구조를 갖는다고 하지 않는가.

생애 초기 단계부터 가능한 사교육 차이를 줄이고 출발선상의 공정한 교육 기회 제공을 강조하는 교육 당국의 뜻은 이해되지만 급하게 서둘러 자중지란을 초래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교육정책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점증주의적 만족모형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루소는 에밀의 첫 문장을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모든 것은 조물주에 의해 선하게 창조됐음에도 인간의 손길만 닿으면 타락하게 된다.'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변질되기 이전의 최초 성향에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것만이 진정한 교육이다', '자연과 사회제도는 양립돼 있으므로 우리는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인간을 만들 것인지 시민을 만들 것인지를.' 이라고 적고 있다. 이런 고민을 제대로 해보라고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는 것일 게다.

학제 개편에 대해 루소에게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까. 그는 에밀이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생각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양육과 교육에 있어 아이들의 노예가 되지 말고, 경험으로 배우게 하고 서둘러 가르치지 말라고도 했다.

진부할 수 있지만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학문은 인간의 의무에 관한 학문밖에 없다'면서 뜬금없이 교육의 기본인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손사래 하지는 않을까.

이번에 제기된 학제 개편 논란이 교육의 기본부터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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