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박순애는 학부모를 얕봤다
[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박순애는 학부모를 얕봤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8.03 23: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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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전 중앙일보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전 중앙일보논설위원

지난 번 칼럼에서 “벼슬자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자리”라는 장자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바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아슬아슬한 ‘예외적 임명’을 두고 쓴 글이었다.

7월5일 취임한 박 장관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했었다. “①소신이 뭔가, ②뚝심이 있나, ③실력이 있나, ④고르디우스의 매듭 풀 수 있나, ⑤세종에 오래 머물 수 있나”였다.

비난 프레임→정책 프레임 전환

한 달이 지난 지금, 박 장관은 프레임 전환에 성공했다. 음주운전, 논문 논란, 자녀 입시, 조교 갑질 의혹 등 자신을 둘러싼 ‘비난 프레임’을 ‘정책 프레임’으로 바꾼 것이다.

‘만 5세 초등학교 취학’은 역대급 교육 정책 프레임이었다. 그 정책을 통해 박 장관의 소신, 뚝심, 실력, 교육 난마 풀기, 세종에서의 소통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메랑이 됐다. 기회가 아니라 위기가 된 것이다. 만 5세 취학은 ‘박순애 흠결 프레임’을 ‘정책 프레임’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교육을 얕잡아 보는 바람에 ‘위기 프레임’을 자초했다.

업무보고를 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하자 박 장관은 내심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였다. ‘졸속’ 여론에 박 장관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박 장관 스스로 소신도, 뚝심도, 실력도, 리더십도, 소통 능력도 부족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 된 것이다.

‘만 5세’ 정책으로 벼랑 끝 몰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나 대선 공약에도 포함되지 않는 만 5세 취학이 갑자기 돌출한 사유를 밝히는 것은 국정조사감이다. 교육공무원은 약다. 만 5세 취학이 가져올 파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발을 빼려 했는데 박 장관이 덜컥 '뜨거운 감자'를 입에 문 것이다.

교육 정책을 개인의 보신을 위해 차용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가뜩이나 국회 교육위원회가 박 장관에 대한 ‘사후 인사 청문회’를 벼르고 있는 터에, 만 5세로 기름을 부었으니 박 장관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여당도 박 장관 편을 들어주기 어려운 형국이다.

박 장관이 자신의 흠결을 정책으로 덮고 진정으로 소신과 실력과 뚝심을 보여주려 했다면, 맥을 잘 못 짚었다. 취학연령과 가을학기제, 6-3-3-4의 학제 개편은 여러 정부에 걸쳐 진행해야 할 진정한 백년대계다.

그런데 성급하고 초조한 나머지 섣부르게 뇌관을 잘 못 건드린 것이다. 어떤 정치인이 ‘음주 정책’이라고 지적하자 많은 네티즌들이 공감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르디우스의 매듭, 유보통합부터 풀라

취학연령이나 학제개편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이왕 빅 이슈가 불거졌으니 국민적 공론화와 정책적 타당성, 중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한민국 인구가 1949년 통계청 집계 이후 72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고, 3년 뒤 학령인구가 94만 명이나 급감하는 데 언제까지 낡은 교육제도를 고집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유보통합을 시발로 초·중·고와 대학까지 모두 한 몸이 되는 교육 대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치는 유보통합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권력다툼,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힘겨루기로 한 치도 못 나가고 있다. 유보통합은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예산이 15조원 든다고 하면, 우선순위로 배정하고 교육부와 복지부가 싸우면 정리해 줘야 한다. 한해 27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시대에 유보 싸움은 너무 하지 않은가. 박순애 장관은 그런 절실함과 당위성을 대통령에게 읍소하는 역할만 해도 큰일 하는 것이다.

박 장관, ‘소통의 경고’ 되새기길

2022년 박순애 발(發) ‘만 5세 취학’은 사실상 폐기됐다. 국민을 얕잡아 본 정책은 신속히 접는 게 순리다. 27만 명 태어나는 시대에 만 5세 취학을 한다면, 일찍 사회에 진출하기는커녕 외려 대입 재수생, 취업 재수생만 늘어날 수도 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학교 일찍 들어갔으니 대학 재수, 삼수하면 어때”라는 단순한 추측도 못해 봤나. 지금도 47만 명 대입 수험생 중 30%가 재수생인 데 말이다. 아이들의 발육상태, 사회적·경제적 비용 같은 복잡한 얘기보다는 젊은 엄마들에게는 이런 현실적인 가정이 더 설득력 있는 게 교육이다.

박 장관은 사면초가다. 우군이 없다. 그렇다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국가교육위원회와 협의 운운하는 것은 애처롭다. 장관 스스로 아이들 앞에, 선생님들 앞에, 교사들 앞에, 학부모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8월이다.

다섯 가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에는 5번(세종시에 오래 머물 수 있나) 질문부터 자답해 보시라. 소통 없는 정책의 비참한 최후 아닌가. 일은 결국 공무원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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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제 2022-08-04 09:05:23
교육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에 의한 명석한 분석이 교육정책 입안에 도움이 되야합니다. 유보통합은 절대절명의 과제이기도 하고 교육개혁의 단초 역할이 됩니다. 알아야 개선을 하고 개혁을 할진데, 장차관 모두 공부하기 바랍니다. 공부해서 정책에 반영하기란 쉽지 않으나 실수는 최소한 하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