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돈 많은 백수가 꿈인 아이를 위하여
[송은주의 사이다 톡] 돈 많은 백수가 꿈인 아이를 위하여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4.29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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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현직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현직 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현직 교사

진로 교육을 한 날, 아이가 공책에 “나의 꿈은 백수이다”라고 적었다. 몇 줄 적은 글인데 호방한 아이의 성격답게 이유나 설명을 자세히 쓰지는 않았다. 이 글을 읽은 담임교사로서 댓글을 뭐라고 달아주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백수가 뭐냐”? 요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고 하는 어른들도 많은데 아이들의 순수한 답에 너희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 이중적이다. “꿈을 크게 가져라”? 어떤 꿈이 큰 꿈인지 알 수 없는 상투적인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통 사람이 생계 걱정 없는 백수로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가. “어떤 백수가 되고 싶니”? 흠. “백수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 선생님이 따지려는 건 아닌데… 참. 쉽지 않다.

이쯤 생각이 닿으니 아이가 말한 백수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아이는 왜 백수를 꿈꾸게되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가 글에서 ‘편함’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아이가 말하는 백수란 자발적 무직이자 노동의 의무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몸은 안락하고 마음은 평온한 상태 말이다. 아마도 아이 눈에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안락해 보이지 않거나, 또 자신이 일(공부)을 할 때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이라고 하면 보통 노동과 동일시한다. 노동을 생각하면 힘든 일,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근로라는 말은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근로자는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의 대가로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생각하면 원하지 않을 때도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과 마음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수동적이고도 고통스러운 노동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모두 연관되어 떠오르게 된다.

사실 근로와 노동의 기본 정의에는 계약이나 급여 따위의 조건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계약’, ‘급여’의 개념이 항상 동반되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근로의 사전적 정의는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이고 노동이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고 하니 근로와 노동은 결국 같은 말이다.

계약과 급여 때문이 아니어도 사람이 노력을 들여 해야 하는 일은 모두 노동이자 근로이다. 우리가 노동과 근로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기계 부품처럼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과 다르게, 어쩌면 노동과 근로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즐거운 다양한 범위의 일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헌법에서도 노동의 의무보다는 권리를 먼저 말하고 있다. 헌법 제3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이고 2항이 바로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이다. 헌법도 이러하니 노동을 의무니까 힘들게 한다기보다는 권리로서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고의 전환을 해보자는 말도 그럭저럭 말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노동의 권리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돈과 같은 경제적 보상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펼친다는 자아실현의 의미와 정신적 만족감 같은 정서적인 가치까지 모두 포함될 것이다.

정신적 만족감은 매우 범위가 넓은데, 무엇보다도 나를 넘어 다른 사람과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기여감은 노동이 있을 때만 가능한 특권이다. 이런 가치 때문에 굳이 힘들여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덕분에 인간을 이롭게 하는 많은 것들이 탄생한다.

한동안 조기퇴직의 바람이 불어 조기퇴직과 프리랜서에 관한 책을 종종 읽었다. 그들의 삶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바,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은 일을 아예 안 함이 아니었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비로소 함에 더 가까웠다.

아이가 백수로 살고 싶다고 한 것도 사실은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함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를 말하는 듯하다. 그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뭔가 나의 노력을 들여야만 하는 일들은 계속 있다. 안락함도, 풍요함도, 즐거움도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요즘 사람들이 꿈꾸는 백수白手라 함은 다른 압박을 놓고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맨 손, 자유를 선택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지만 노력까지 놓은 완전한 빈손은 아니다.

그 자유가 퇴직이나 무직으로 오는 것이라면 나 자신을 진정 위하는 자유로 가는 잠시 쉼, 잡고 있던 무언가로부터의 잠시 해방일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안락하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비자발적인 무직으로 인한 맨손일 때, 절감하게 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는 무엇인가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다.

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최근에 나온 《김형석의 인생문답》에서 행복은 인간답게 사는 노력, 과정, 그 성취에서 주어지는 것이라 하셨다. 그 말만 보아도 행복과 노력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다.

아이에게 뭐라고 댓글을 달았는지는 비밀이다. 우리 반 아이를 위해 쓰는 글 같지만 우리들 대부분의 안에는 돈 많은 백수가 꿈인 아이가 살아 그 아이를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뭘 가르쳐주어야 할까, 마음 속 아이를 달래며 오늘도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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