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교육감만 12년 .. 지금이 왕조시대인가?
[기자수첩] 교육감만 12년 .. 지금이 왕조시대인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2.08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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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요즘 학생들은 2022년을 ‘코로나 3년’이라고 부른다. 선조 5년 인조 14년 하듯 코로나에 연호 (年號)를 붙인다. 감염병에 철저히 지배받다 보니 마치 전제 왕정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연호를 붙여야 할 곳이 또 있다. 교육계다. 오는 6월 치르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출마 예정자들이 앞다퉈 예비후보 등록을 한다. 코로나에 대선까지 맞물려 신인들에게는 이름 알리기조차 버겁다 보니 돈을 들여서라도 사무실을 내고 현수막을 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단일화 경선에 벌써부터 피말리는 샅바 싸움을 하는 곳도 있다.

반면 현직 교육감들은 느긋하다. 공직 사퇴 시기를 최대한 늦추면서 교육청 예산으로 선심을 쓰고 민심을 듣는다며 학부모를 만나 암묵적 지지를 호소한다. 걸핏하면 기자회견을 열어 자화자찬에 열을 올린다. 행정력도 총동원 돼 달콤한 정책들로 지원사격 한다.

◆ 깜깜이 선거가 고마운 현직들 .. ‘3선 불패’ 이어갈까

사정이 이러니 교육감 선거에서 현직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도전자들은 조직력과 지명도에서 상대가 안 될 정도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전복 직전이다. 일반 시민들은 교육감에 관심이 없으니 ‘깜깜이 선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서 현직 교육감 치고 선거에서 패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재선 교육감은 3선 도전에 실패한 적이 없다. ‘3선 불패’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김승환 전북교육감, 민병희 강원교육감, 장휘국 광주교육감 등이 불패 신화의 주인공이다.

오는 6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재선 교육감들 대부분이 3선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조희연, 부산 김석준, 대전 설동호, 경기 이재정, 충북 김병우, 충남 김지철, 세종 최교진, 경남 박종훈, 제주 이석문 교육감 등이 모두 8명이 3선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들이 성공하면 12년 교육감을 한다. 457년 고려왕조 평균 재임 기간은 13.9년에 버금가는 재임 기간이다.

이쯤 되면 연호를 붙여야 할 것 같다. ‘金감 7년’, ‘李감 11년’식으로 말이다(교육청에서는 교육감이란 호칭 대신 ‘감’이라는 말로 줄여 암호처럼 부른다). 교육소통령으로 불릴 만큼 권한이 막강하니 무리는 아닐 성 싶다.

이렇게 따지면 서울교육청은 올해가 조감 8년이다. 오래 재임하는 게 꼭 나쁘다고만 볼 순 없다. 서울시민이 뽑은 사람이니 탓할 일도 아니다.

◆교육소통령들의 낯뜨거운 성적표 .. 내로남불 교육 점철 

하지만 지난 8년 납득 할만 한 성과가 있었느냐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추락하고, 교육격차는 멀찍이 벌어졌다. 청렴도는 전국 17개 교육청 중 최하위권을 맴돈다. 여론조사기관이 매달 실시하는 교육감 평판도 조사에서는 꼴찌를 맡아 놓았다.

대입 재수생이 가장 많은 곳도 서울이다. 공정성은 또 어떤가. 해직교사 부당채용 협의로 법정에 서야 할 판이다. 교사를 놀고먹는 집단으로 폄하하고 선생님 대신 ‘쌤’이나 ‘프로’라는 말로 호칭하자고 했다가 뭇매를 맞고 사과한 적도 있다. 특정 이념과 집단에 사로잡혀 획일적, 편향적 교육으로 교육의 다양성을 훼손했다는 평가는 오점으로 남는다.

비단 서울만이 아니다. 경기도교육청은 조용할 날이 없다. 교원과 행정직, 공무직 간 갈등이 두달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재정 교육감은 꿈쩍 않는다. 교육 구성원들의 갈등을 팔짱만 끼고 지켜본다. 뜻있는 교육계 인사들이 학교업무 재구조화 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지만 들은 척 않는다. 그래서 ‘불통 교육감’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부산 김석준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특성화고생 임용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탈락으로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역교육계가 교육감 사과를 요구하며 들끓었다. 도를 넘어선 ‘내사람 심기’ 인사로 교육청 직원들조차 부글부글한다. 그럼에도 3선에 나설 뜻을 스스럼없이 내비친다.

최교진 세종교육감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본인은 순수한 의도라고 해명하지만 지역주민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3선 종료를 앞둔 교육감들의 성적도 시원치 않다.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학력 꼴찌 강원’이란 거센 비판에 시달린다. 수능성적이 전국 최하위 성적표를 받은 탓이다. 수도권 등 타지역 출신 교사들의 강원지역 유입도 심각하다. 중등의 경우 지난 2017년 타지역 출신 비율이 60%를 넘어섰다. 지역내 국립 사대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교육청은 쉬쉬한다.

김승환 교육감은 참학력을 내세워 교육개혁을 추구했으나 현장에선 싸늘하다. 지난해 전북교사노조 설문결과에 따르면 65% 가량 교사들이 ‘잘 모른다’고 답했다. 교육감이 세 번 당선되는 동안 줄곧 강조한 참학력에 교육현장은 “그게 뭔데” 라는 반응을 내놨다.

◆ 교육감에 대한 불신은 공교육 불신 .. ‘후진(後進)교육자치’ 책임져야

교육감은 학생들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어느 자리보다 중요하다. 교육감의 철학과 정책이 오롯이 학생 교육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치우친 가치관이 일방적으로 12년간 주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금의 교육 현실처럼 진영과 이념색채가 짙은 교육이라면 더욱 그렇다.

또 하나, 교육정책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신선하고 다양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시스템이 중요하다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최근 들어 3선 교육감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자치가 진일보했다면 모를까 지난 12년 한계와 문제점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 탓이다. 한마디로 후진(後進) 교육자치가 됐다. 아마도 차기 정부에선 어떤 형태로든 ‘고비용 저효율’ 교육자치를 손볼 것 같은 예감이다. 전국교육감 선거에 드는 경비만 2천억 원이 넘는다.

그래서일까 교육계 안팎에서 교육감 ‘3선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2세 교육을 12년씩 맡기기에는 불안하고 못 미덥다. 할 일은 안 하고 할 소리는 못 한다. 다음 선거가 기다리고 있으니 자신을 밀어준 집단의 ‘눈칫밥’을 먹는 탓이다.

교육감에 대한 불신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다. 사교육비가 매년 치솟고 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교육부·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7년 28만 5,000원이었던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8년 32만 1,000원, 2019년 36만 5,000원으로 매년 오른 뒤 2020년 38만 8,000원까지 치솟았다.

책임을 통감하고 용퇴하는 인물은 어디 없을까. 염치없는 교육감들의 내로남불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하다.

마른가지에 매달려 삭풍에 바들거리는 나뭇잎처럼 초라한 건 없다. 선배 기자는 자리에 집착하는 관료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단풍도 떠날 때를 알아야 제값을 받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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