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택환의 현장 속으로②] 학교 목적사업비 잔액 꼭 0원으로 맞춰야 하나요?
[권택환의 현장 속으로②] 학교 목적사업비 잔액 꼭 0원으로 맞춰야 하나요?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2.01.22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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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택환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대구교대 교수
권택환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대구교대 교수
권택환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대구교대 교수

#1 충북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A선생님은 12월만 되면 걱정이 커진다. 목적사업비의 잔액을 0원을 맞춰야 한다는 안내가 계속 이어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품구입을 예산에 맞춰서 온라인 주문을 했는데 예상치 못한 할인이 들어가 270원이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예산과 합쳐서 필요도 없는 물품을 추가로 구입했다. 0원을 결국 맞췄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2 올해 첫 발령을 받은 B선생님은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교직을 시작했다. 공모 사업으로 지정된 기후변화 동아리 업무를 부여 받고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아이들에게 활동을 지원하고 함께 활동하며 열심히 1년을 보냈다.

보람 있는 시간들이었고 예산을 쓸 때도 아껴서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하였다. 꽤 많은 잔액을 남겼는데 교감선생님께 잔액을 남기면 안 된다는 핀잔을 들어 당황스러웠다. 귀한 세금을 아낀 건데 칭찬은 듣지 못하고…

현장에서 만난 두 선생님의 사례에 많은 선생님들께서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코로나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 연초 계획했던 사업 운영이 여의치 않았던 터라 목적사업비의 집행이 더 어렵고 힘들었다. 그런데 전액 집행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반복해서 겪고 있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학교회계의 종류부터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학교회계는 크게 학교운영비, 목적사업비, 수익자부담금으로 나눌 수 있다. ①학교운영비는 교육청에서 학교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주는 것으로 교부받은 학교운영비는 예산 범위 내에서 사용하는 본예산이다.

②목적사업비는 말 그대로 사업에 따라 교육청이나 타기관에서 교부하는 예산으로 사용 내용과 용도의 범위가 정해져 있고, 집행 내역을 별도로 보고하게 돼 있다. ③수익자부담금은 수익자인 학부모가 부담하는 금액으로 현장체험학습, 방과후학교 등 필요한 예산을 수익자에게 징수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유형 중 특히 학교현장에서 잔액 집행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목적사업비의 사용이다. 잔액이 발생하였을 때 학교운영비는 과목 변경이나 추경을 통해 다른 예산으로 운용이 가능하다.

수익자부담금은 징수 때부터 비교적 정확한 금액이 맞춰져 처리가 되지만 여러 이유로 발생하는 잔액은 소액인 경우 운영위원회를 통해 학교수입으로 편입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접사업비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잔액 없이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원칙상 잔액을 반납할 수 있지만 행정실에서 예산 부여 기관으로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0원’을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학교에서는 12월이면 몇 십 원 단위의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굳이 살 필요가 없는 물건들을 예산잔액에 맞춰 사느라 분주하다. 십 원 단위까지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선생님들의 귀한 에너지가 허비되고 스트레스로 쌓인다.

목적사업비는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귀한 재원이다. 행정 편의를 위해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 되도 너무 잘못된 악습이다. 목적 사업의 취지에 걸맞은 사업운영이 잘 운영되었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잘 운영하여 잔액이 남았다면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앞의 사례에서 만난 B선생님은 힐난을 받을 것이 아니라 표창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렇게 목적사업비의 완전 집행은 행정력과 혈세의 낭비라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목적사업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까지 생기는 것은 모두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회계 관련 법령과 운영 지침을 고쳐 목적사업비의 경우에도 잔액 발생하면 반납이 될 수 있도록 고치면 된다. 예산을 다 써야 사업의 목적이 달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간단한 절차로 반납이 이루어질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좀더 자유롭게 그리고 꼭 필요한 부분에 예산을 사용할 수 있고, 모인 잔액은 또다른 좋은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익자 부담금의 잔액 전환처럼 학교발전기금으로의 전환도 적용 가능한 방법이다.

물론 제도의 개선과 함께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겠지만, 12월이면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목적사업비 잔액 처리의 문제는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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