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연 대선 교육의제 20] 누구도 ‘자투리’가 되지 않는 학교, 기본학력 보장제 - ①
[미자연 대선 교육의제 20] 누구도 ‘자투리’가 되지 않는 학교, 기본학력 보장제 - ①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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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태영 미래학교자치연구소 정책연구위원

미래학교자치연구소(이하 미자연)가 우리교육의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교육 의제 20개를 제안했다. 주요 교육이슈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토론을 거쳐 만들어졌다. 학생과 학부모, 교수, 교육전문가, 현장교사는 물론 교육·시민단체들이 함께한 결정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육 주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최초의 교육 공약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지는 '미자연'과 공동으로 2022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교육의제 20’ 연재를 시작한다. 오늘 제시된 교육의제들이 다음 정부에선 꼭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편집자>

 
윤태영 미래학교자치연구소 정책연구위원
윤태영 미래학교자치연구소 정책연구위원

◆ 소외와 차별이 이상하지 않은 학교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끊임없는 구분의 연속이다. 학생들은 각급 학교로, 학년으로 구분되며 구분된 반에 배치된다. 그들의 하루는 7교시로 구분되며, 때로는 동아리로, 계열로 구분된다.소수의 교사가 다수의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학교에서 구분은 어쩌면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어떤 구분은 ‘소외’와 ‘차별’을 불러온다. 차별과 소외를 낳는 무시무시한 구분 메커니즘의 대표적 수단은 시험이다. 많은 경우 학교의 시험은 사람의 능력을 지식으로 한정시킨 후 등급을 부여한다.

높은 등급을 받으면 '좋은' 또는 '가능성 높은' 학생이라는 상표가 부착되고, 낮은 등급을 받으면 '힘든' 또는 '희망 없는' 학생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소위 '높은 등급'을 받은 학생들에게 '낮은 등급'을 받은 학생들과 다른 교육과정/수업/환경/기자재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더 높은 기대와 더 다양한 교육적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학교의 모든 시선과 역량이 '높은 등급'의 학생들 또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에게 쏠리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은 학생들은 소외되거나 차별 받고 있는 것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소외’와 '차별'(institutional discrimination)이 학교에서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 자투리로 남겨지는 아이들

학교는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한 기회의 공간'이어야 한다. 학교는 '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아닌 '통합과 평등'의 원리가 작동하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교과 지식으로 한정된 능력 프레임으로 아이들을 재단할 때, 아이들의 창의성과 잠재력도 함께 잘려나가며, 특히 학습 속도가 느린 아이들의 교육받을 기회도 함께 잘려 나간다.

그렇게 재단 당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투리'가 되어 어떠한 기대와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단지 출석만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학교는 '자투리'들의 성장과 성공에는 큰 관심이 없으며, 당연한 듯 그들의 성취와 성장에 대해 확인하지 않는다.

성장 보고서가 아닌 교과별 최종 등급만을 말해주는 성적표와 출석 일수만 채우면 졸업할 수 있는 현재의 졸업 자격 부여 방식은 이러한 조직적 차별 메커니즘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우리 학교는 저마다 다른 학생들의 학습 속도와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학생들의 기본학력을 보장하지 않고 있고, 결국 모든 아이들을 동일한 수준으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 교육이 이러한 소외와 차별의 벽을 허물고 모든 아이들의 기본학력을 보장하여 책임 교육을 실천할 때이다.

◆ 기본학력 보장이란? 각기 다른 학습 속도와 성장을 지원하여 일정한 성취를 이루게 돕는 것

기본학력 보장이란 교육이 개별 학생들의 각기 다른 학습 속도와 성장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모든 학생들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취를 이루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학력 보장을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교사와 양질의 교육과정 그리고 타당하고 신뢰도 높은 평가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체계적 시스템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국의 초·중등 학교는 일찍이 학생들의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체계를 구축하였다. 영국 학교의 교사들은 매 학년 초 실시되는 진단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각기 다른 개별적 성취 목표를 부여하고 학습 속도와 성장 정도에 따른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그리고 교사들은 자유로운 방식의 평가를 통해 개별 학생들의 학습 속도와 성장 정도를 수시로 측정한 후, 학기 말 또는 학년 말이 되면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학생들이 개별적 성취 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따라서 초등학교의 경우 대부분 매 학기 성장 보고서(progress report)를 제공하는데 여기에 학생들의 교과 성취 등급이 표시되지 않고, 교과별 성취수준의 도달여부가 ‘성취수준 이상 도달(above expected)’, ‘성취수준 도달(expected)’, ‘성취수준 미도달(below expected)’ 등으로 표기된다. 또한 개별 학생의 구체적 성장 정도와 상황은 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등학교의 마지막 2년(보통 10-11학년)을 별도의 자격 시험 과정(Graduate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이하 GCSE)으로 두어, 필수 교과와 선택교과에 대해 지난 9년간의 성취수준 도달 여부를 측정한다.

단편적 비교는 타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영국 학교가 성적 뿐 아니라 개별 학생의 속도와 성장을 점검하고 지원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 기본학력 보장제 – 지원체제와 평가체제

우리는 모든 아이들의 기본학력을 보장하는 책임교육을 수행하기 위해 ‘기본학력 보장제’를 제안한다. 기본학력 보장제란 학생들의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체계적 지원 및 평가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원체제: 연임 담임제와 기본학력 전담 교사제

기본학력 보장제 속에서 모든 학생들은 초중학교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정해진 시기에 성취 수준 달성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받는다. 점검 방식은 담임 교사들의 관찰과 교과 교사들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먼저 담임 교사들은 연임제 속에서 2-3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기간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들의 학습 과정과 그들의 학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관찰하고 파악한다. 이 때, 초증학교 저학년 담임 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많은 경우 학습 속도의 차이가 이미 학령기 이전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과 교사들은 현행 초중학교 교내 평가를 보다 타당하고 신뢰도 높은 방식으로 (예를 들면 100% 서술, 논술형 평가의 도입 등) 개선하여 실시한 후, 주기적으로 개별 학생의 교과별 성취 수준 도달 여부를 점검하고 성장 과정을 누적 기록한다. 이렇게 누적된 개별 학생의 성장에 관한 종합적 기록은 적절한 시기에 기본학력 전담교사들의 전문성과 결합한다.

기본학력 전담교사는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들의 다양한 원인을 진단한 후 적절한 지원 및 해결책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많은 연구들은 학습 속도의 차이(더 크게는 학습 격차)가 유전적 요인보다 사회경제적 요인, 즉 부모가 가진 사회 경제적 배경과 자본에 더 크게 기안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학습 속도의 문제는 더 이상 학교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기본학력 전담교사는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을 지원할 때 교과 교사와의 협력 가운데 양질의 개별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지역 사회 또는 외부 전문가와 더불어 가정의 사회 경제적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학교 내의 전문 인력인 특수교사, 상담교사, 진로상담 교사 등과 협력하여 입체적이고 구체적이며 전문적인 지원방안을 수립하여 지원하도록 한다. 특히, 국가나 지방 교육 정부는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들을 위한 지원에 소요되는 각종 비용을 부담하여 모든 학생이 체계적 지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한다.

평가 체제: 기본학력 인증 평가제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지원체제 속에서 성취 수준을 유지 해 온 학생들은 9학년(현행 중학교 3학년)에 이르러 인증평가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학습한 교육과정에 대한 기본 수준의 학력을 인증한다. 인증 과목은 기본적으로 기본 교과와 선택 교과로 나누고, 선탞교과의 경우 자신의 향후 진로 또는 흥미와 관련된 교과를 학생들이 직접 고르도록 한다.

기본학력 인증 평가제의 성공적이고 합목적적 운영을 위해 무엇보다 교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학생들을 현장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이 자신의 학생들의 기본학력 도달 여부를 평가하고 결정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평가할지와 어떻게 평가할지를 교사가 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국가 교육과정이 존재하는 현재의 평가 체제 속에서 인증제를 통해 무엇을 평가할지에 관해 교사가 완벽한 자율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증 평가는 진학이나 서열을 나누는 시험이 아니므로, 인증 평가를 실시하는 교사는 주어진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일상의 삶과 미래 사회의 변화를 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지식과 역량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여 기본 학력 인증을 위한 성취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교사들은 이러한 성취 수준을 바탕으로 자신의 학생들을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하며 학생들의 성취 수준 달성 여부를 직접 결정한다.

기본학력 인증 평가는 조직적 소외와 차별을 위한 줄세우기식의 일회성 고부담시험이 아니다. 기본학력 인증 평가는 전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확인하고 지원하는 기본학력 보장제의 일부이자 마침표이다.

따라서 인증 평가의 결과는 ‘학생들의 기본학력 인증’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초중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만 활용되어야 한다. 즉, 인증은 ‘성적과 순위’가 아니며 ‘성취 수준의 도달과 성장’이고, 인증 여부는 ‘진학’의 근거가 아닌 ‘진로’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인증 평가제의 안전한 시행을 위해 교사들은 평가 결과 공개, 인증 비율 공개, 인증 실적을 기반으로 한 학교 서열화 등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한편, 인증 평가제의 성공적 시행을 위해 학교와 교사는 타당하고 신뢰도 높은 평가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여 합리적 평가 방법과 도구 및 시기 등을 마련하여야 한다. 인증 시험이 학교와 교사에게 전적으로 맡겨진다면, 학교와 교사는 인증 평가를 교과통합 등의 방식으로 보다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증 방식이 다양화되면 교과 지식 뿐 아닌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역량을 보다 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교간 비교가 어렵게 되기 때문에 인증 결과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본학력을 인증받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별도의 보충 학습 지원 및 재원이 공급되어야 하며, 언제든 다시 인증받을 기회를 부여 받도록 해야 한다.

◆ 낯설어진 공정 가치의 회복, 기본학력 보장으로!

보통 중산층 이상의 부모가 교육에 활용하는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자본을 일컫는 이른바 ‘부모 찬스 교육’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교육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학교에서 조차 능력을 중심으로 한 소외와 차별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기본학력을 보장받지 못하는 학교생활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상화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학생은 교육을 통해 공평한 기회를 제공 받을 뿐 아니라 공평한 지원과 최선의 결과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기본학력 보장제는 일상화된 불공정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교육에서 낯설어진 공정 가치의 회복임과 동시에 우리 아이들 중 누구도 '자투리'로 남겨지지 않도록 점검하고 보장하는 학교의 가장 중요한 책무를 완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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