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요즘 아이들에게 할로윈이란
[송은주의 사이다 톡] 요즘 아이들에게 할로윈이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10.3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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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교사

10월 31일, 올해도 할로윈데이는 왔다. 마트에, 카페에, 거리마다 할로윈을 상징하는 물건이나 그림들이 눈에 띈다.

몇 주 전, 우리 반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할로윈 파티 해요?” 그 질문만 들었는데도 아이들에게는 할로윈이 매우 친숙한 느낌이었다. 학급임원들이 기획부터 준비까지 자기들이 할 테니 파티할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물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너희들이 원하고 스스로 준비해본다면 자치활동 시간을 이용해볼 수 있겠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아이들은 한 달 동안 임원회의, 장보기, 게임 만들기, 대본 짜기, 진행연습을 하며 파티를 준비해왔다. 교실을 꾸밀 할로윈 장식도 아이들이 직접 골라왔다.

내가 한 일은 아이들이 회의하고 결정한 내용에 대해 담임으로서 조언을 하거나 교실 곳곳에 장식달기를 도와주고 창체시간을 확보해서 칠판 앞을 아이들에게 내준 것뿐이었다.

4학년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할로윈 행사는 퀴즈부터 보물찾기까지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알찼다. “Trick or Treat!(과자 안 주면 장난칠 테다!)”이라는 말이 할로윈을 대표하는 만큼, 젤리와 몇 가지 스낵도 준비해서 친구들과 서로 나누었다.

영어 시간에도 아이들은 호박 장식 만들기를 하고 영어선생님께 젤리도 받았다. 점심 먹으러 가는 것도 잊고 호박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정성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아이들에게 할로윈은 내가 느끼는 할로윈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로윈은 영미 문화권의 나라에서 귀신분장을 하고 즐기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켈트족은 죽은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살다가 내세로 간다고 믿었는데, 바로 10월 31일에 자신이 기거할 인간을 선택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기독교가 확산된 후에도 할로윈은 조금씩 변형되어 영미권에 자리 잡고 TV와 같은 매체나 이주 등을 통해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여전히 많은 어른이 “할로윈은 외국의 문화인데 이렇게 들뜰 필요가 있느냐”고 반응하는 반면, 영어학원이나 영어유치원에서부터 할로윈을 접한 요즘 어린이들은 “할로윈은 재미있고 특별한 날”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 반 학생들이 당연한 듯 할로윈 데이를 이야기 했을 때도 필자는 할로윈이 낯설었다. 미국에서 파견학생으로 1년간 머물렀을 때는 할로윈을 그렇게 즐겼으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완전히 남의 일처럼 여겼다. 이태원이나 홍대 등지에서 해마다 커지고 있다는 할로윈 코스튬 파티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도 반가움보다는 생소함이 앞섰다.

과감하게 분장을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언제부터 우리가 할로윈을 챙겼냐”며 혀를 차는 사람들의 반응도 많이 보았다. 잔혹한 분장이나 괴기하게 생긴 해골, 유령이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말에 공감하기도 했다. 교사로서는, 할로윈은 문화다양성의 관점 외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할로윈 데이를 기다리며 자기들만의 축제를 준비하여 즐기는 학생들을 보니, 할로윈에 조금 더 마음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이상 우리 고유의 문화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는 할로윈을 배척하기가 어렵다.

원래 우리나라에 있던 문화가 아닌데도 이미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날이 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라는 종교적 배경을 가진 기념일이다.

2019년 국가통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기독교 인구(개신교와 천주교)가 30% 정도이다. 기독교 국가라고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탄생일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된 이유는 미군정기에 공휴일로 지정되었던 것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라는 휴일이 주는 쉼과 사랑의 메시지를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할로윈은 어떤 의미일까. 우스꽝스러운 호박바구니에 담긴 과자를 받을 수 있는 신나는 시간. 평소에는 써보지 못하는 해골 마스크를 써볼 수 있고 이상한 분장을 해도 이해받을 수 있으며 되어보고 싶은 것이 되어볼 수 있는 시간. 엄숙한 학교와 교실에 귀신 장식, 거미 장식도 달아볼 수 있고, 선생님과 마법사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일탈의 시간이 아닐까. 지금껏 해보지 못한 것을 시도할 수 있고 가끔 있기에 소중하고, 돌아와야 할 자리가 있기에 짜릿한.

자기들이 직접 꾸민 시간, 공간 속에서 친구들과 특별한 이벤트를 하며 초콜렛을 나누는 학생들을 보니, 이런 일탈의 재미와 미소라면 할로윈 데이가 익숙하지 않은 어른들도 함께 즐겨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더 좁아지고 세계의 문화는 더 뒤섞인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더 넓게 포용하며 새로운 문화를 요구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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