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의 교육시론] “더 이상 사학을 흔들지 말라!”
[김성일의 교육시론] “더 이상 사학을 흔들지 말라!”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8.17 13:4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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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일 창문여고 교사
김성일 서울창문여고 교사
김성일 서울창문여고 교사

경기도교육청은 지난달 23일, 「2022학년도 사립학교 교원 신규 채용 협의 알림」이라는 공문을 도내 각 사학 법인에게 통보했다.

공문의 골자는 경기도 내 사립학교에서 신규 교사를 채용할 경우 반드시 도교육청에 위탁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할 경우 도교육청이 지원해야 할 교사 인건비는 물론 법정부담금 전액을 법인이 부담토록 한 것이다.

내용은 더 가관이다. 사학이 도교육청에 위탁해야 할 신규 교사 채용 과정은 1차 필기시험에서부터 2차 수업실연과 집단토의, 면접 등이다. 모든 프로세스를 도교육청이 주도하겠다고 것이며, 여기서 사학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경기도회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사학 짓밟는 경기도교육청의 막가파식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사학의 자주성을 마구 짓밟고 파훼하는 행정 권한 남용의 불법행위 또한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법조계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사립학교법」 53조의 2(교원의 임용)와 「사립학교법시행령」 21조(교사의 신규채용)에는 교원의 임용은 ‘학교법인’이나 ‘사립학교 경영자’가 임용할 것을 명시하며, 신규 채용의 경우 공개 채용토록 하고 있다. 인건비 지급도 마찬가지다. 「사립학교법」 43조 등에는 보조금 지원 중단 경우가 있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과연 현행법을 무시한 채 이런 정책을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사학에서 불거진 비리를 마치 전체 사학의 일인 양 매도하면서 사학 전체를 절체절명으로 내모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 시작은 평택의 한 사립학교에서 불거져 나온 채용 비리일 것이다. 당연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사학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교육기관인만큼 좀 더 엄격한 도덕성과 법률이 적용되어야 하며, 이것은 국민이 사학에 요구하는 지상명령이다.

그럼에도 경기도교육청의 정책 방향은 지나치다. ‘지나침’을 넘어서 의구심마저 든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와 끝내 맞물리지 못하는 사학에 대해, 글자 그대로 ‘퇴출’을 불사하면서까지 장악하겠다는 편향된 시각이 숨어 있기 때문일까.

경기도교육청의 이번 사태는 명백히 현 정부가 ‘사학’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이미지 메이킹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현 정부 들어 사학 관련 정책들이 법인과 학교를 노골적으로 분리시키고, 국가 주도의 강제적인 방식으로 일관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보여준 사례는 그 도정일 따름이다. 앞으로 더 강압적인 정책들이 쏟아져서 사학의 손발을 완전히 묶어버리고 국가에 복속시켜버릴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만일 우리나라에 ‘사학’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땠을까. 여전히 분단의 변수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경제・문화적으로 빈곤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국으로 남아 있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 세계가 인정하고 감탄해 마지않는 선진국으로서의 강렬한 위상을 갖추게 되었을까.

역사가 증명하듯, 우리나라의 사학은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국가의 버팀목이자 지렛대의 역할을 해왔다. 1880년대 격동기에 들불처럼 일어난 사학 기관들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주체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항일독립정신 고취는 물론 일제에 저항할 인재양성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지나고 본격적인 산업화 시기에도 사학은 국가가 운영하는 교육기관과 공존하면서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부족한 공공재정을 만회하기 위해 많은 인사들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짓고 국민교육과 인재육성에 매진했다.

이처럼 ‘사학’은 국가 교육의 한 축을 형성했다. 국・공립학교의 빈자리를 메울 단순한 보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듯, ‘사학’은 국민의 교육에 대한 다양한 열망과 욕망을 충족시켜왔으며, 공교육의 강력한 파트너로서 국가재정의 결손을 자발적으로 충당했던 것이다. ‘사학’은 대한민국 발전의 기틀을 잡고 가속하며 완성을 향해 고집스럽게 나아간 교육입국의 동력이자 국가 백년의 설계도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사학은, 아니 사학 전체는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사학이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비리’라는 두 글자가 따라다니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가 건설자로서의 공과는 무시하고, 사학을 적폐이고 개혁의 대상이라고 못 박고 있다.

법인은 학교 운영에 관여해서는 안 되며, 설립 때부터 지켜온 건학이념과 교육목적과는 상관없이 정부 정책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리고 재정을 볼모로 이제는 교사 채용 권한까지 강탈하기에 이른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에 교사 채용을 위탁했을 때, 교육청 입맛에 맞는 교사들이 채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차치하자. 위탁했을 때 사립학교에는 5천만원, 학교법인에는 추가 5백만원을 지원하겠다는 회유도 건전한 재정 지원의 일환이라 생각하자.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사학의 원(原)주체를 배제한 채 교육당국이 직접 개입해서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요구에 상반되며, 사학의 자주성과 공공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일부에서 드러난 사학비리는 형법으로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다. 교육당국의 걱정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학들은 정도를 지키고 있으며 비리와는 상관없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교육의 다양성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학은 민주주의 척도이고 국민이 추구하는 행복권의 일환이며,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을 함양할 다양성의 상징이다.

지금이라도 경기도교육청은 「2022학년도 사립학교 교원 신규 채용 협의 알림」을 철회해 사학들의 건강한 교육활동을 훼손하지 말기를 바란다. 오죽했으면 국가가 일괄적으로 사학들을 거두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라도 편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을까. 불행하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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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호 2021-08-20 11:42:32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입니다. 중은 제머리 못깎는 법입니다.

이군천 2021-08-17 17:57:00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경기도 교육청은 사학의 존재근거를 무시한 전체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네요.
사립학교법도 무시하고.
한국교육에서 사학의 역할과 비중을 무시한채 공립화를 추진해서 뺏어가려하는군요.
정치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