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형의 에듀토크] 성교육과 계륵
[김남형의 에듀토크] 성교육과 계륵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12.20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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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형 경기여주송촌초 교사
김남형 경기여주송촌초 교사

[에듀프레스] 한중 지역을 놓고 유비와 싸우던 조조는 고민에 빠진다. 전쟁을 계속 이어서 한중을 차지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계륵.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 결국 조조는 자신이 만든 암호 ‘계륵’의 의미를 해석한 양수의 목을 베고 퇴각하는 일화를 남긴다.

우리의 성교육은 현재 계륵의 위치로 향하고 있다. 교실현장에서 교사가 성교육을 유의미하게 구성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이 너무도 크다. 성교육의 특성상 보수적 사회 통념의 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광주시교육청은 성교육 시간에 노출 장면이 포함된 단편 영화를 활용한 중등 교사에게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해당 교사와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의 생각, 검찰의 무혐의 판단과 교육청의 징계 결정, 교사를 비판하는 여론과 교육청을 비판하는 여론 모두 일치하지 않았다.

교사의 구체적 발언과 수업 맥락이라는 중심 요소를 모른 채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으나, 관련된 모두의 생각이 달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지난 8월 여성가족부는 성교육을 목적으로 학교에 배포했던 도서가 논란이 되자 긴급히 회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선 배포된 도서의 적합성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으며, 여성가족위원회에선 긴급히 회수한 정책의 주관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었다.

해당 도서의 적합성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할지 몰라도, 정부 당국이 성교육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만큼은 확연해 보인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교육을 소개하며 성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성교육이 올바로 시행될 때, 자아(ego)는 초자아(superego)와 성충동(libido)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고 튼튼하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성교육이 학생의 자존감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성교육은 다분히 교과서적이며, 지독히 형식화된 내용만을 담고 있다. 특히 남성 교사들에겐 조심히 다루어야 할 내용을 넘어 회피의 대상으로까지 느껴진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은 성교육을 하라고 하면서도, 시행 과정에서 논란이 된 교사를 보호하진 않는다. 표준 자료도 이론 목록만 잔뜩 제시할 뿐, 구체적 교육 방법이나 수위를 거론하지 않는다. 국가 당국도 어떤 성교육 방법이 옳은지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비난의 대상이 되길 꺼리기 때문이다.

좀 더 현실적인 성교육을 원하던 학부모도 시행 이후에는 민원인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으로서의 관점과 한 아이의 부모로서의 관점이 차이나는 것은 공감하지만, 어떻게 판단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성교육을 하는 교사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조조에게 한중은 과연 먹을 것이 없는데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이었을까. 토지가 비옥하고 물자가 풍부한 전략 요충지인 한중을 조조는 꼭 취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기 어렵고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조조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륵이라는 비유를 통해 한중을 그저 먹을 것은 없으나 버리긴 아까운 곳으로 치부하며 퇴각을 합리화한 것은 아닐까.

성교육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감당해야 할 위험을 걱정하는 현장 교사들이 성교육을 계륵이라고 치부하는 순간, 우리 아이들의 자아는 어떻게 될까.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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