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방역의 최전선’에서 마스크와 소독제로 버티는 교사들
[한희정 칼럼] ‘방역의 최전선’에서 마스크와 소독제로 버티는 교사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6.04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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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교사

2020년 6월 3일, 오늘은 우리반 아이들이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이다.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출근했다. 조금 여유 있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원격수업자료 만들어 놓은 것을 업로드하고, 학생 건강체크 자가진단 참여를 확인하고, 미참여 학부모에게 연락을 한 다음 8시 50분부터 우리반 아이들을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커피머신이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동안 창문을 열고, 컴을 켜고,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는데 갑자기 공용 화장실 출입문을 열어두지 않은 게 생각났다. 화장실 출입문에 아이들 손이 빈번하게 닿게 되는 게 염려되어 열어두기로 학년회의에서 정했던 거다. 문을 열려고 보니 여자 화장실은 열린 문을 고정해주는 장치가 있는데 남자화장실 문에는 없다. 남자 화장실 문을 처음 열어보는 거라 이런 줄도 몰랐다.

급히 교실로 가서 행정실장과 시설담당 주무관에게 4층 동쪽 남자화장실 문에 고정장치가 없으니 조치를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조치가 될까 싶어서 일단 급한 대로 종이박스를 뜯어서 문 밑에 넣고 고정하려고 하는데 바로 행정실장과 주무관이 왔다.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조치를 해주신다고 한다.

다시 교실, 위두랑에 접속하려고 사이트를 열고 ‘자, 이제 커피를’ 하는데 벌써 우리반 아이가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8시 20분이다.

‘아아, 체온 측정’

“잠깐, 00아 거기 발모양에 서서 기다릴래. 조금 땀 식히고 체온 재고 들어오자.”

‘아아, 자가진단 확인’

위두랑 보다 급한 자가진단 확인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름을 입력하고 인증번호를 입력한다. 23명 중 4명이 안했다. ‘빨리 하시라고 문자를 보내야 하는데’ 생각하는 찰라에 두 번째 아이가 신주머니를 옆반 신발장에 넣는 게 보인다.

“아아, 00야, 거기는 우리반 신발장 아니야. 이쪽이야.”

그렇게 문자도 못보내고, 일어나서 체온 측정을 하고, 자리 안내를 해준다.

그 다음부터는 줄줄이 이어지는 등교 행렬에 커피도 잊고, 위두랑 업로드도 잊고, 자가진단 독려 문자도 잊었다.

그 와중에 한 부모님은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으니 전화를 하신다. 설사가 있어서 학교를 안보내시겠다는 것. 그 통화를 하면서 나는 또 신발장 안내를 한다. 그렇게 50분이 순삭 되었다. 일찍 온 아이들에게는 국어책을 꺼내서 읽고 있으라고 하는 동시에,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거리두기를 지켜달라고 하는 동시에, 체온을 재면서, 또 한 눈으로는 들어오는 아이들이 자리표에서 자기 자리를 잘 찾는지 확인을 한다.

1교시 수업은 생활수칙을 배우는 시간이다. 시간이 부족할 줄 알았기 때문에 어제 이미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놓고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고 오라고 안내를 했다. 확인을 하니 절반은 보지 않았단다. 그래서 간단히 안내를 하고, 생활 수칙을 잘 지키겠다는 약속 학습지를 나누어주었다. 평소 같으면 앞줄에 나눠주고 뒤로 돌리라고 하면 될 것을, 손소독을 한 다음 돌아다니면서 한 장씩 나눠준다. 학습지 하는 방법을 설명해준 다음에야 위두랑에 오늘 수업 자료를 업로드 한다.

차시별로 업로드하는 와중에 질문에 답을 하고,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가진단을 완료하지 않은 아이들이 그냥 교실에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자가진단 사이트에 접속해서 확인하려고 하니 재인증을 하란다. ‘이런 망할, 바빠 죽겠구만’하는 소리를 목구멍으로 삼킨다. 이름과 인증번호를 입력하고 확인하니 여전히 4명이 안한 상태. 그제야 폰을 꺼내 문자를 보낸다. 속으로 ‘제발 자가진단 좀 없애주세요’ 욕 아닌 욕이 나온다.

학습지를 하고 있는 사이에 지난 두 달간 학습과제를 얼마나 했는지 확인하려고 국어 학습지와 국어활동 책을 걷는다. 학습지를 다 한 아이들에게는 다음 시간에 있을 시 낭송 연습을 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는 틈틈이 국어활동 책 검사를 한다. 한 명씩 불러서 빼 먹은 곳, 잘못 한 곳을 알려주고 책을 돌려준다. 익숙하지 않은 라텍스 장갑을 낄 여유가 없어서 오늘 손소독제만 열 번은 바른 거 같다.

2교시 국어시간, 1단원에서 배운 시 중에 맘에 드는 시를 골라서 읽는 연습을 해오라고 했다. 겨우 30분 수업을 했을 뿐인데 마스크 쓰고 자리에만 앉아있는 아이들이 딱해서 제안을 했다. 시 낭송하는 거 빨리 하고 학교 화단 산책을 하자고. 아이들은 골라온 시를 읽고 나는 돌아다니면서 동영상을 찍었다. 읽고 난 다음에는 자기평가지를 썼다. 그래서 그런가 10분의 시간이 남았다.

그렇게 장미, 복숭아, 붓꽃, 자두, 딸기, 상추, 고추, 가지 등등을 보고 앵두나무 앞에 이르렀다. 평소 같으면 몇 사람씩 들어가서 다섯 개씩 따오라고 했겠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조금 망설여졌다.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들어가서 48개의 앵두를 땄다. 그리고 운동장 수도가로 가서 두 개씩 나누어주고 깨끗하게 씻어서 먹어보라고 했다.

3교시 수학은 1단원 복습시간이다. 어느 정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학습지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고, 나는 아이들 수학익힘책을 검사하면서 한 명씩 불러 간단한 피드백을 주었다. 4교시 사회는 집에서 그린 마을지도를 발표하는 시간인데 안가져온 아이들이 절반이 넘어서 다음에 가져오면 하기로 하고 우리반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관찰했다. 교실 바닥에 붙어 있는 거리두기 스티커에 맞춰 줄을 서서 한 명씩 관찰하고 들어간다. 5교시는 과학, 사슴벌레와 잠자리의 한 살이를 비교하면서 배우는 건데 어려운 부분은 집에 가서 위두랑에 올린 자료를 보면서 복습하라고 하고 서둘러 마무리를 했다. 왜냐면 밥 먹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먼저 밥을 먹지 않고 하교하는 아이들이 일곱 명이라 먼저 가방을 싸고 어제 준비해 둔 선물 꾸러미를 나누어주었다. 먼저 하교하는 아이들은 1학년 6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하교를 한다. 나는 남은 아이들의 체온을 재고, 수저통을 챙기고, 화장실로 이동해서 30초 이상 손씻기를 안내하고, 학교 식당으로 간다. 음식을 받을 때까지 마스크를 벗어서는 안된다는 안내를 하며 식판을 받아온 아이들을 칸막이 설치된 식탁에 지그재그로 한 칸씩 띄어 앉으라고 하고 밥 먹는 아이들을 본다. 감시 아닌 감시인 셈이다.

그냥 말이 튀어나오는 아이들,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들, 뒤돌아 얘기하려는 아이들에게 각 반 담임교사들은 밥도 안먹고 지켜보다가 득달같이 달려가서 주의를 준다. 다 먹으면 식판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모두 함께 교실로 돌아온다. 더 이상 놀 시간은 없다. 12시면 하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방을 메고 교문을 나선다.

아이들을 교문 앞 횡단보도까지 데려다 주고 교실로 들어와 그제야 다 식어빠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목이 탄다.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학년 회의를 한단다. 오늘 등교수업에 대한 평가, 다음 등교수업을 위해 바꿔야 할 것들, 평가 계획, 다음 주 수업 계획 등등을 이야기하고 돌아와 그제야 점심을 먹었다. 먹고 나니 두 시 반.

서둘러 내일 수업안을 만든다. 만드는 틈틈이 메시지가 오고 답을 하고, 자가진단에 아직도 참여하지 않은 부모님들께는 이제 직접 전화를 돌린다. 수업안을 만들다가 이게 먼저가 아니지 하고, 오늘 수학익힘, 학습지, 국어활동 점검한 내용을 한 명씩 학부모님께 문자로 알린다.

문자 한 통을 보낼 때마다 내 폰에 문자가 쌓인다. ‘감사하다, 아이가 매일 학교 가고 싶다고 한다, 고생하셨다 등등등’ 도저히 집에서 스스로 공부할 형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내일과 모레 중 학교에 개별 등교를 하면 밀린 과제를 봐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 약속을 잡는 문자와 통화를 주고 받으니 퇴근 시간이다.

내일 수업자료를 다 못만들었으니 칼퇴는 물 건너갔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마스크와 소독제로 버티는 대한민국 40만 교사 중 한 명의 하루이다. 수업을 한 건지, 방역을 한 건지, 수업을 하라는 건지, 방역을 하라는 건지, 돌봄을 하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그럼에도 교사니까 ‘교육’을 하려고 버티고 버티면서 만들어가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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