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레스의 눈] 혁신학교, 행복하십니까?
[에듀프레스의 눈] 혁신학교, 행복하십니까?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06.25 22: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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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상백 경남 서포초등학교 교감
김상백 경남 쌍백초등학교 교사
김상백 경남 서포초등학교 교감

얼마 전에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 담당자 간담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행복학교 담당 부장 선생님이 행복학교의 확산과 일반화가 더딘 이유를 모르겠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부장 선생님이 말한 의도는 아니지만 행복학교 연수, 행복학교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들의 주장, 행복학교 교감으로서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는다.

1. 운동성 없는 선민의식

우리만 잘하고 있고 우리가 하는 교육이 최고이고, 다른 학교 다른 교사들이 하는 교육활동은 개혁의 대상이라는 빗나간 선민의식이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많은 교사들은 행복학교를 주도하는 교사들의 이러한 빗나간 선민의식을 간파하여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학교를 주도하는 교사들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한 것인지 지속적으로 섣부른 계몽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계몽의 방법도 일반 학교의 교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감하는 계몽이 아니라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는 연수에 주력하고 있다. 연수의 효과는 극단으로 나누어져 긍정의 교사는 관심을 가진 정도, 부정의 교사는 강한 반감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현실의 학교를 혁신하고 싶다면 비판을 넘어 비난을 받더라도 일반 교사들과 함께 연대하여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야 한다. 일반 교사들을 동화시켜 연대하는 방법은 관 주도의 연수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학교의 삶 속에서만 가능하다.

조급한 마음과 연대할 용기가 어떤 학교에 끼리끼리 모이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빗나간 선민의식은 있으나 운동성은 상실했다. 어쩌면 그들만의 선민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의 날개를 스스로 꺾은 줄도 모른다.

2. 가짜 융통성

효율을 강조하기 위해 융통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융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목적이 정의로워야 하고 허용의 범위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며 방법이 정당해야 한다.

하지만 목적이 아이들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보다 말초적인 쾌락을 자극하고 안전이 법령을 넘어서고 교사로서의 책무성이 아닌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문장을 무조건 인용하는 교사 편리 중심의 교육 방법을 융통성이라 정의하는 것은 가짜다.

교육활동의 목적이 아이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임을 명확히 해라.

교육활동의 범위가 법령을 준수하는지, 교사의 복무가 어긋남이 없는지 통찰의 시선으로 공부하라.

교사는 임장지도라는 기본을 준수하는지, 아이들의 활동시간과 교사의 지도시간이 일치하는지, 진짜 아이들의 온전한 성장과 발전인지 아님 교사의 편리성에 의한 방법인지 순수한 교사의 양심으로 확인하라.

융통성은 변명을 위한 단어가 아니다.

3. 형식보다는 정신

행복학교 교육활동의 대부분은 일반학교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어떤 교사는 행복학교의 선생님보다 더 혁신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행복학교가 일반학교와 다른 점은 끼리끼리 모여 있다는 것이다. 일반학교는 교사 개인의 노력이지만 행복학교는 많은 교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학교의 올바른 정신을 알지 못한 상태로 형식만을 추종하여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

행복학교는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기 위한 정의로운 방법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알고 있는 수준이 국어사전에 머물려 있고 알려는 노력이 박약하여 형식만을 추종하는 퇴보의 경향이 감지된다.

다수결은 결정의 최후 수단이다. 최고의 방법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존중하는 의사결정이 비민주적인 방법이라 낙인찍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의를 추구한다. 따라서 의사결정의 결과는 정의다. 결과의 정의에도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정의 정의에 매몰되어 형식적으로 모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비민주적인이라 호도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움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절차상의 민주, 과정의 민주를 강조하기 위해 지위와 직급, 지식과 지성의 개인차를 배제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실상은 빅마우스의 존재에 의한 교사 내의 서열이 존재하여 절차적, 과정상의 민주주의 실현도 의문이다. 학교 문화 개선이 아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선의의 문화도 불태우고 있다.

구성원들의 지식과 지성의 차이는 다양성으로 바라봐야 한다. 구성원마다 가진 소양의 정도, 학문적 깊이, 생활의 지혜, 지식과 지혜의 정도, 관심 분야는 다르고 차이도 있다. 그래서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구성원들 간에 지식과 지혜의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전문가 수준의 구성원이 있을 수 있고, 교사, 교감, 교장의 역할에 따른 앎과 생각의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존중하는 다양성으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이 현명하고 민주적인 결정이다.

한 마디씩 말한 후에 만민평등의 원리에 의한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다양성을 호도하는 민주주의의 퇴보다. 더 나아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토의와 토론이 생략되고 교사 내 우위 서열자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면 최악에 이른다. 정신이 사라진 형식을 추종한 결과다.

4. 프로젝트 점검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인가? 교사의 편리를 추구한 프로젝트인가? 교사가 내용으로 기초와 기본을 다지기 위한 학습과 프로젝트 학습 방법으로 나눌 수 있는 교육 이론을 가지고 있는가?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하다가 나중에는 행복학교 아이들이 더 잘해요라는 소문 말고 실질적으로 검증한 교육연구가 있는가? 소문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제때 배우지 못하여 학습이 더디어졌다는 부정적인 해석도 가능하고 더디었던 학습량을 따라잡기 위해 생긴 역기능이 없었는지도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

5. 기초학력 논란

프로젝트가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면 프로젝트 후에 당연히 기초학력은 충족되어야 한다. 현재 자기 주도적 삶,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학력 등을 운운하면서 기초학력을 재정의하자고 하는데 재정의하고자 하는 학력은 기초학력이 아니고 고차 학력이다.

자기 삶을 자기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학력은 기초학력이 아니라 고차 학력이다. 자기 주도적 학습, 삶과 앎이 하나 되는 교육, 4차 산업혁명에 맞는 학력은 기초 학력이 바탕이 된 고차원적 학력이다.

아이가 자기 주도적으로 자아실현을 하려 할 때 기초학력 부족이라는 장애물을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 방법은 알고 있는데 능력이 부족하여 성취할 수 없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는가?

기초학력 부족이라는 객관적인 보고서를 봤다면 보완하는 정책을 조언해야지 회피하여 기초학력을 재정의하자는 주장은 억지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기초학력 부족 보고서를 받기 전에 새로운 기초학력에 대한 재정의 노력이 있어야 했다.

기초학력을 재정의를 주장하며 현 사태를 비껴가려는 행위는 반교육적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아니다. 기초학력은 기초학력이다.

6. 아동관

행복하게 성장하는 사회 일원, 민주 사회의 행복한 구성원이 되도록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행복학교의 아동관이다. 결과가 인간으로서 성장, 배려와 존중의 인간관계, 자기 주도적인 배움의 태도, 자존감 향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고집과 어리광이 아닌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것을 무조건 아이들을 편드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는가? 교육적 단호함을 주저하지 않는가? 세상을 행복학교 아이들만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하지 않는가?

7. 예산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한 치밀한 계산에 의한 예산 사용인가? 돈을 쓰기 위한 교육활동인가? 예산이 지원되지 않았을 때의 학교를 예상해 보았는가? 행복학교에 지원되는 예산을 잃지 않기 위해 재지정에 목을 매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행복학교 학부모에게 지원되는 돈이 과연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는가? 지원받은 예산을 사용하기 위한 학부모 활동으로 변질되어 있지 않은가? 예산이 지원되지 않아도 지속 가능한가? 일회성, 전시성 행사의 지양을 내세우며 실상은 껍데기의 재질만 바뀌었지 않은가?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예산이 사용될 수 있도록 정말 많은 고민과 공부가 있어야 한다.

행복학교의 일반화와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의 주장도 행복학교를 폄훼하여 중단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한 내부자의 쓴소리 중 일부다.

간과하거나, 아니라고 우기거나, 모르는 소리라고 무시하지 말고 혁신을 위한 진지한 검토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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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2019-06-27 10:29:46
너무나 정확한 파악과 그에 맞는 내용입니다.
핵심을 찌르는 글 훌륭하십니다.
이 곳에서만 읽기 아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