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교육 카르텔’ 이주호 장관이 빠진 이유는?
[기자수첩] ‘사교육 카르텔’ 이주호 장관이 빠진 이유는?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4.01.12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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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가 제시한 사교육 카르텔 10유형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가 제시한 사교육 카르텔 10유형

[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전직 교육부 장관 등 고위공무원들이 사교육 관련 주식을 소유하거나 퇴직 후 사교육업체 임원으로 취업하는 등 공교육과 사교육간 유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육계는 물론 공직사회 전반에 사교육 카르텔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11일 한반도선진화포럼 등과 함께 세미나를 열고 사교육 카르텔 10개 유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밝힌바있다.

양 교수는 이날 “정부는 사교육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고를 받은 뒤 조사하는 수동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교육부를 겨냥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번 기회에 ‘반민특위’를 구성, 사교육 카르텔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했다.

반민특위란 ‘반민심 사교육 카르텔 척결 특별조사 시민위원회’의 약칭이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척결에 앞장섰던 반민특위(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와 약칭이 같다. 사교육 카르텔에서 친일파를 연상케하는 극단적 레토릭을 구사했다.

양 교수는 “윤 대통령이 사교육 카르텔 한번 잡아 주세요라고 말씀하면 이순신 장군이 요청한 것처럼 검찰과 국세청 등 12명의 핵심인력만 가지고 6개월 안에 해결할수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실제 그는 90여 쪽에 이르는 발표자료에서 사교육업체와 연관된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교수, 교사, 정치인 등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명현 전 교육부장관, 고인이 된 송자 교육부 장관과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조 모 과기부 차관 등이 모두 사교육 카르텔에 이름을 올렸다. 전직 교육부 고등교육실장은 해외 주식 내역까지 까발려졌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축구선수 손흥민과 개그맨 유재석도 사교육 유착 의혹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들이 사교육업체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 어린 학생들한테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죄(?)를 물었다.

손흥민에 대해서는 “국민세금으로 국가대표 만들어 줬더니 사교육업체 광고를 찍었다”고 비난했다. 개그맨 유재석에게는 “국민MC라는 사람이 돈이 부족해서 사교육 광고하느냐”며 “아이들한테 학원 가라는 이야기 밖에 안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장 광고를 내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한국교육학술정보원도 양 교수로부터 사교육 카르텔로 지목됐다. 평가원은 2022학년도 수능 당시 생명과학 문항 오류를 심사하면서 자신들과 입장을 같이하는 학회에 자문을 구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당시 평가원은 세군데 학회에 의견을 구했고 이중 두군데가 이상 없다는 의견을 냈는데 그곳이 평가원과 한패였다는 주장이다. 양 교수는 “정부기관이 애들 데리고 사기쳤다”고 맹비난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나이스가 도마에 올랐다. 나이스 구축 사업에 참여, 1조원가까이 수주한 S통신이 특정 사교육업체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사교육업체가 공교육을 넘나들며 돈벌이를 한다"고 지적하고 “실상이 이런데도 교육부는 왜 내버려 두는지 모르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교사들이 출판사 의뢰를 받아 문제집 만드는 것도 사교육 카르텔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사교육업체들이 문제 출제를 명분으로 교사들을 끌어 모아 ‘이름만 빌려달라’고 유혹한 뒤 카르텔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교육부가 이런 고리를 왜 끊어내지 않느냐"고 거듭 책임을 추궁했다.

이외에 입시철 마다 부르는 게 값인 입시 컨설팅은 입학사정관과 사교육기관이 결탁해 폭리를 취하고 있고 입시학원들이 제공하는 대학 배치표는 광고를 한 대학의 커트라인은 올리고 광고를 안주면 내리는 담합이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2024학도 입시에서 A대와 B대 배치표를 예로 들며 광고를 한 입시업체 배치표에는 커트라인이 높게 책정된 반면 광고를 하지 않은 학원배치표는 낮게 나와있다고 주장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추진하는 역점사업에도 사교육 카르텔을 지적했다. 양 교수는 AI 디지털교과서와 IB교육을 겨냥, 사교육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디지털교과서에 사교육업체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을 겨냥, 이들이 공적 자금으로 (에듀테크)기술을 개발한 뒤 관련 정보를 참고서 만드는데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IB교육은 이미 학원들이 앞서가는 등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지방대 지원 사업으로 이 장관이 중점 추진하는 라이즈(RISE)사업에도 사교육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며 이런 사실조차 모르는 교육부가 한심하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교육부 퇴직관료들의 모임인 문우회를 비롯 소위 교피아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카르텔이 형성돼 있으며 교육부 정책추진위원회 등에서 사교육업체 대표가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양 교수는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사교육 유착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그가 발표한 사교육 카르텔 자료는 대학교수 한 사람이 힘만으로 작성됐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노작(勞作)이다.

팩트와 주장, 의혹 제기가 섞여 있어 순도를 확신하기 어렵지만 방대한 정부 자료를 분석하고 우리 사회 각계에 포진한 사교육 유착 사례들을 들춰낸 것 그 자체 만으로도 의미있다.

특히 권력의 핵심이라고 하는 대통령실 직원들의 사교육 유착 의혹까지 제기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간 어느 언론에서도 이를 지적한 사례는 없었다.

학부모들을 힘들게 있던 입시 컨설팅 비용을 문제 삼아 환수 소송까지 전개하겠다는 결기 역시 높이 평가 받을만 하다. 윤 대통령도 이 자료를 본다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한가지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다. 사교육업체 주식을 단 1주 가진 공직자와 이미 타계한 장관과 교육감까지 끌어들여 사교육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권력의 핵심인 대통령실까지 직격하면서도 이주호 장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장관은 취임하기 직전까지 아시아교육협회라는 단체를 운영했다. 이곳에 국내 대표적인 사교육업체 아이스크림이 1억원을 기부했다. 한 에듀테크 업체 대표는 아시아교육협회에 2천400만원을 무상 기부했다.

또 이 장관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을때 500만원의 후원금을 제공한 사실도 있다. 이와 관련 이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사교육과 유착은 없다고 해명했다.

기자는 11일 세미나에서 이 장관이 사교육 카르텔 대상에서 누락된 이유를 물었다. 양 교수는 “천천히 하죠”라며 즉답을 피했다. 느닷없이 나타나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하면서도 한군데는 겨냥하지 않았다. 이 장관이 센걸까? 아니면 이런 의혹을 유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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