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 .. 김재춘 교수의 '최후의 대학'
[화제의 책]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 .. 김재춘 교수의 '최후의 대학'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3.12.29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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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춘 저 '최후의 대학'
김재춘 저 '최후의 대학'

[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대학은 학자를 위한 상아탑인가 아니면 대중을 위한 서비스 공간인가? 이런 도발적인 질문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새로운 과학기술 앞에 놓인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책이 나왔다.

최근 대학가에 필독서로 떠오른 한 권의 책 <최후의 대학>이 주인공이다. 대통령비서실 교육비서관, 교육부 차관,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영남대학교 교학부총장 등을 역임한 김재춘 교수의 역작이다.

이 책은 중세의 대학부터 오늘날 연구중심 대학까지 역사를 섭렵하면서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간다. 대학이라는 제도가 처음 등장한 중세부터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이 패권을 쥔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모습과 대학을 둘러싼 힘의 역동이 어땠는지 촘촘히 살핀다.

아울러 대학과 대학 교육을 경험하고 연구하는 이로써, 대학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 대학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저자는 세계 대학 평가, 대학 구조조정, 대학 재정 지원 사업 등 현재 한국 대학의 현안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학무상교육이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민감한 현안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에듀프레스는 <최후의 대학> 저자 김재춘 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최근 ‘대학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셨던데, 제목이 <최후의 대학>입니다. 제목을 그렇게 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학이 중세에 출현한 이래 900년 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한 종류의 대학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의 대학이 생겨났습니다. 마치 개인은 죽지만 인류는 지속해 온 것처럼 말입니다.

요시미 순야는 <대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근대 대학의 출현을 ‘대학의 재발명’ 또는 대학의 ‘제2의 탄생’으로 기술합니다. 20세기 들어와 출현한 연구중심 종합대학도 ICT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대학이 출현하면 ‘최후의 대학’에 처할 수도 있는 운명입니다. 현재와 같은 정체성을 지닌 대학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표현하려고 ‘최후의 대학’이라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연구중심 종합대학은 돈의 지배를 받는 대학,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의 논리에 포획된 대학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현재가 힘들 때 사람들은 종종 과거를 회상하며 향수에 젖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도시인들이 전원생활의 낭만과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은 아릅답지만 전원생활이 그만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중세 대학을 순수한 학문·교육 공동체로, 근대 대학을 순수한 연구·교육 공동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학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근대 대학의 상징, 훔볼트가 설립한 베를린대학을 살펴봅시다. 설립 정신은 아릅답습니다. 정부는 대학 재정을 지원하고 교수 신분을 보장하되, 교수에게는 연구하고 가르칠 자유를, 학생에게는 배울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목격한 훔볼트는 베를린대학 설립 2년 만에 교육계에서 물러났으며, 베를린대학 설립 10년도 안된 시점에서 프로이센 국왕 등 독일 군주들은 코체부 살해 사건을 계기로 학생단체 해산, 대학감독관 파견, 출판물 검열 등의 규제 내용이 담긴 ‘카를스바트 결의’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결의문에는 “공공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국가의 기강을 흔들 것으로 판단되는 독일 대학 내의 모든 강사와 교수들을 즉각 해고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게 베를린대학의 역사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 체제를 만들었던 클라크 커(Clark Kerr) 총장은 <대학의 용도>에서 순수한 학문·연구공동체로서 대학을 추구하는 교수들을 ‘하늘에 있는 파이에 대한 환상(vision of pie-in-the-sky)을 지닌 학자공화국’에 속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국립대학 무상교육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예컨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담론도 지역거점국립대학의 무상교육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해온 나라들이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입니다. 이들 나라에서 오랫동안 무상교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진학률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독일과 프랑스 모두 2000년대 들어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어서자 심각한 대학재정 문제가 발생합니다. 잘 알다시피 독일 몇 개 주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유상교육화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대학교육의 유상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대학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의 주립대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립대학인 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은 해가 갈수록 주 거주민에게조차 비싼 등록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대학 체제가 등장했던 1960년대에는 사실상 무상교육을 실시했던 UC 대학들이 30년이 지난 1990년대에는 약 3천 달러(당시 한화로 약 200만원)의 등록금을 부과했다가 다시 30년이 지난 2022/2023년 현재 1만 3천 달러(한화로 약 1천 600여만 원)의 등록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혁신 대학인 애리조나주립대학(ASU)은 2000년대 초반에는 대학 재정의 약 90%가 주 정부의 지원금이었으나 2022/2023학년도에는 주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은 대학 재정의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은 과감한 대학 혁신을 통해 등록금 수입과 연구비 수주를 대폭 늘려 대학 재정의 약 90%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대학진학률이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에서 국립대학 무상교육화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교육 혁신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후의 대학>이 어떤 책인지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입학자원의 급격한 감소로 우리나라 대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됩니다. 학자를 위한 상아탑인가 아니면 대중을 위한 ‘서비스 공간’인가? <최후의 대학>은 지난 900년의 대학 역사를 훑던 저자가 대학을 움직였던 힘들의 역동을 발견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당대 지배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순응, 저항 또는 타협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기도 했던 대학 변모의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소 거칠게 일반화하자면, 시대마다 그리고 시대 간에 새로운 대학이 태동, 성장, 쇠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식인들의 학문·교육 공동체로 시작했던 중세 대학, 새로 등장한 여러 다른 교육기관과 대립하면서까지 전통 고수를 고집했던 근세 대학, 국가 교육 체제의 등장으로 국가별 상황에 맞게 적응해 갔던 근대 대학, 경쟁 교육과 평등 교육을 넘나들면서 가능한 한 몸집을 키워가는 기업형 현대 대학 등 여러 유형의 대학의 태동, 성장, 쇠락의 과정을 다룹니다. 이를 통해 대학이 순수공동체라기보다는 다중적 힘의 역동 또는 길항 관계 속에 존재해 온 공동체였음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합니다.

”좋은 대학은 한 종류만 있는가? 대학의 이념은 시대마다 달라지지 않았는가? 이념이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다면 동시대에도 복수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좋은 대학, 즉 대학의 이념·이데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탈플라톤적 비행을 감행하여 대학의 이념·이데아가 복수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입국하자고 제안합니다.

좋은 대학은 어떤 대학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위기에 처한 우리 대학의 지형과 경계선을 새롭게 그려나가는 논의를 시작하는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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