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주호의 ‘강한 교육부’ .. 외화내빈 1년
[기자수첩] 이주호의 ‘강한 교육부’ .. 외화내빈 1년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3.11.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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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1년밖에 안 됐어?” 이렇게 많은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 낼 줄은 몰랐다.

난제 중 난제인 유보통합, 대입제도 개편, 교육과정 개정, AI디지털교과서 도입, 글로컬과 라이즈(RISE) 등 대학권한 지방이양, 교육전문대학원 도입, 늘봄학교 전면 확대, 자사고·외고 존치 등 하나 같이 교육계 판도를 뒤흔들 민감한 정책들이다.

게 중에는 수십년 진척없던 것들도 있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주호 이야기다. 7일이면 취임 1년. 그와 각별한 지인조차 “이제 1년...”이냐며 놀라워했다.

이 장관 취임 이후 교육부는 강해졌다. 만5세 조기입학 파동 당시 무력했던 난맥상은 볼 수 없다. 교육부내 ‘이주호 키즈’들을 앞세워 개혁을 주도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부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초정권적 중장기 교육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교위는 기대를 갖고 출범했으나 1년 동안 위원정수도 다 못채우고 쩔쩔맸다. 교육부가 개혁 드라이드를 거는 동안 존재감을 잃어갔다.

급기야 2022 교육과정 개정 때는 교육부 거수기라는 혹평을 받았고 2028 대입개편안은 교육부가 던져준 ‘심화수학’ 숙제를 풀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제 밥그릇도 못찾는 노쇠한 국교위는 젊고 강한 교육부와 대조를 이룬다.

강한 교육부의 동력은 이주호에서 출발한다.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그의 그립은 단단하다. 관료들을 혹독하게 조련한다. 따지고 보면 교육부 관료들이 만만하지 않다.

역대 장관치고 교육부를 장악한 이는 거의 없다. 서슬퍼렇게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나긋나긋했다. 이 장관은 다르다. 야전병원 외과의사처럼 교육부를 다룬다.

정권교체기와 맞물린 탓도 있지만 지난 1년 교육부엔 유독 떠난 직원들이 많았다. 대기발령도 속출했다. 모의평가 킬러문항으로 교육과정평가원장이 수능 4개월을 앞두고 옷을 벗었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과 과장이 뒤를 이어 대기발령에 들어갔다. 나이스 사태가 원인(遠因)이 돼 KERIS 원장은 임기 절반을 남기고 사퇴했다.

초등교장회 연수 야유 사건 직후엔 담당과장이 대기발령 됐고 이어 교원정책 담당과장, 학생 생활지도 담당과장, 늘봄학교 담당과장, 해외유학생 유치 담당과장이 줄줄이 대기발령 또는 교체됐다. 대학권한 지방이양을 이유로 국립대 사무국장 27명이 무더기로 날아갔다.

국장급 보직 27개를 버린다는 건 중앙부처에서 엄두도 못낼 일. 이들을 중 상당수는 옷을 벗었고 나머지 상당수도 보직없이 낭인처럼 스마트워크를 전전한다. 교육부 직원들에게 두려운 존재다. 질책을 받았던 교육부 관계자는 한동안 얼굴 경련으로 고생했을 정도다.

최근에는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직원들에게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열린 교육부내 고위급 전략회의에서는 의대 자율전공 진학 발언과 관련해 "국감에서 힘들게 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여튼 이 장관은 일에 관한 한 진심이다. 교육에 확실한 신념과 철학이 있다. 대학 자율화, 성취평가제, 교실수업 개선, 에듀테크 등 그만의 소신이 있다. 목표를 정하면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린다. 어물쩍 넘어가는 법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 연금, 교육개혁 중 그나마 진도를 나가는 게 교육이다. 개혁 과제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다. 교육부 한 고위관계자는 “이정도 과제를 이 장관 만큼 해낼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야심차게 내건 개혁 과제들 중 그린라이트는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2024년 전면실시 하겠다는 늘봄학교는 교사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아동복지법 개정과 함께 교사들의 반발이 가장 크다.

유보통합은 지지부진이고 교육전문대학원 도입은 물건너간지 오래다. 에듀테크 교육을 앞세우지만 학교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디지털교과서라고 다를 게 없다. 출판사들은 ‘장님 코끼리’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교육업체 배불리고 공교육은 들러리 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대학교수는 ‘외화내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뿐 아니다. 지난 6월 2,800억원을 투자한 새 교육행정정보서비스, '4세대 나이스'마저 먹통사태에 휘말리며 교육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교육계 일각에서 이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는 또 교사들의 요구를 외면하다 서이초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건국 이래 그토록 많은 교사들이 일시에 거리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20여년 동결된 교원수당, 학교폭력의 과중한 업무부담, 잇단 교권침해 등 현장의 절규에 조금만 귀 기울였다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 이젠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막는 지경이 됐다.

이 장관 처지도 곤궁하긴 마찬가지. 지난 1년 윤석열 대통령에게 여러차례 공개 질책을 받았다. ‘방석집 논문심사’와 ‘만5세 조기입학’으로 김인철 후보자와 박순애 장관이 중도사퇴한 데 따른 반사이익을 안고 출발했지만 유독 꾸지람이 잦았다.

지난 6월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두고 혼선을 빚었다. 당시 이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교육개혁 진행 상황 등을 보고한 뒤 브리핑에서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는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했다.

그러나 4시간 뒤 대통령실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출제에서 배제하라”는 내용이었다며 발언을 정정했다.

그는 “입시를 대통령에게 배운다”는 신박한 해명으로 난처한 국면을 빠져나갔다. 이후 9월 모의평가에서 ‘킬러문항 배제, 변별력 확보’라는 성과를 거둬 간신히 회생한다.

‘나눠 먹기’ 논란을 빚은 국립대 사무국장 파동 역시 그에게 아픈 대목이다. 국립대 사무국장들을 타부처 교류를 통해 구제하려다 들통이 나 대통령 질책을 받고나서 원상 복귀시키는 인사를 단행해야 했다. 최근에는 ‘대학 자율전공 후 의대 진학’이란 정책 구상을 밝혔다가 윤 대통령으로부터 또 질책을 받았다.

그래서 일까. 올 하반기부터 심상치 않다. 이 장관에 대한 교체설이 나왔다. 동시에 내년 4월 총선 출마설도 나온다. 실체를 확인할 길 없지만 분명한것은 그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2028 대입개편안에서 이 장관의 구상은 상당부분 잘려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2028 대입 시안을 ‘징검다리’라고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의대 정원 증원 논의과정에서도 주무부처인 교육부가 배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장관은 지난달 교육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25년까지 교육부장관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용산’에 보내는 간절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질지 알 수 없다. 관건은 잦은 논란으로 입방아에 오른 이 장관이 어떤 방식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이다.

지난해 11월 7일 그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교육부 장관 두 번의 경험을 살려 변화는 과감히 지향하되 충분한 소통을 통해 교육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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