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라 칼럼] 9월 4일은 학교자율 사망의 날
[한미라 칼럼] 9월 4일은 학교자율 사망의 날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3.08.29 11:05
  • 댓글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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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미라 서울 면동초 교장
한미라 서울 면동초 교장
한미라 서울 면동초 교장

평화로운 일요일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며, 나약한 자신과 초등학교의 현실에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최근 교육부의 학교장 재량휴업 불가와 파면 해임 압박 지침은 학교 내에 있었던 관례와 상식을 뒤엎는 것입니다.

코로나, 천재지변, 시설공사 지연 등 수없이 많았던 휴업 결정은 온전히 학교장과 학교구성원의 자율권으로 맡겨 혼란을 주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한참을 생각해보니 교육부 발표의 맥락은 언제나 같았던 것같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학교 자율에 맡긴다 하고, 책임을 부여하는 일에는 일관되게 학교에게 강압적이었던 것입니다.

자율과 교육발전(혁신)이라는 포장으로 만족도 평가를 도구로 경쟁하게 하며, 학교 교직원의 과도한 업무 부담과 민원은 알아서 하라는 교권 침해 문화를 만든 것이 바로 교육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월 2일은 왜 또 갑자기 공휴일로 정한다 하고 학교 학사일정을 정부가 흔듭니까? 10월 2일은 천재지변입니까? 편의적으로 휴일을 정하고 학교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교육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육보다 경제, 선거, 입시로 기본을 가르쳐야 할 초등교육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학교를 궁지에 몰아넣는 학교자율은 자율이 아님을 이제야 절실히 깨닫습니다.

방과후학교가 들어올 때도, 무상급식이 들어올 때도, 돌봄이 들어올 때도 초등학교는 사랑과 정성이라는 사명과 희생으로 묵묵히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규교사 한 명도 충원 없이 교장, 교감, 교직원 모두가 감내해왔습니다. 아니 오히려 교사 수는 계속 줄고, 다양한 직종 투입의 행정과 업무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정규 수업과 교육활동을 침해해왔습니다.

나이스업무도 행정업무 전산화라는 좋은 명목으로 들어왔지만 서이초 교사에게처럼 업무 폭탄이 되었습니다. 방과후학교도 사교육경감과 진로탐색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와 이제는 정규수업 운영에 지장을 주고 학교폭력과 시설환경개선 등 민원과 행정업무가 정규수업보다 과중해졌습니다.

돌봄은 정규수업보다 우선시되고 이제 악성 민원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는 교사 외에 너무도 다양한 교직원이 들어왔고 그로 인한 갈등과 조정의 업무, 인사채용의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순진하게 순수한 의미로 했던 일들이 과도한 업무부담과 갈등, 민원확대로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지경으로 만든 것이 교권침해를 가져온 것입니다.

무상급식도 영양교육과 복지라는 이름으로 선의로 했으나, 담임교사들은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식당 서빙자처럼 민원을 받고 있습니다.

진짜 인성교육과 배려와 나눔의 교육이 되기 위해 최소한 지켜져야 할 원칙과 규칙이 무너진 상황은 교육의 개념조차 제대로 고민되지 않는 교육이 교육이 아니게 한 많은 정책들 때문입니다.

이제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많은 것들에 대해 재고할 상황입니다. 초등교육에 동의없이 들어온 많은 정책들에 대해 원점에서 논의해야 할 순간입니다.

교권 침해의 본질은 초등교육의 근간을 흔든 것을 제대로 잡는 것에서부터 하나씩 이제부터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먼저 재량휴업일 입니다. 천재지변으로 정치적, 자의적으로 제한할 거면 재량일 이유가 없습니다. 학기 중에 수시로 교육부와 정부 맘대로 휴업일은 정하면서, 교육공동체가 정하는 재량휴업일은 못하게 한다면 학교장재량휴업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수의 교직원이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은 마땅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학부모 다수가 동의한 학운위의 의결조차 존중하지 않는 교육부라면 이는 자율의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학교는 학생상담, 학교폭력 등 과도한 업무로 힘든 상황입니다. 방과후학교나 돌봄을 학교평가나 교장교감평가 잣대로 넣어서는 안될 것이며 대책없이 들어온 사업들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의사와 약사의 업무가 구분이 있듯이 '교육'이 아닌 것들은 지자체나 다른 부서에 담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학교폭력업무, 교육과정운영, 교실환경개선 업무 등 담당할 학교에게 의견도 묻지않고 계속 확장하는 것은 매우 부당합니다. 실질적인 학생돌봄과 사교육경감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정책들이기 때문입니다.

학습부진, 정서적 치유대상 포함해서 실질적인 맞춤형 지도가 가능하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보조인력 채용 업무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사업무 부담은 점점 가중한데 교감 정원을 계속 줄여 가는 것은 교직원을 계속 죽어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교사 증원없는 개별화교육은 비현실적인 정책입니다.

교권침해의 원인제공은 무분별한 교육정책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세월호 이후 안전교육도 결국 교사에게 안전업무만 떠넘겼고, 안전사고문제도 중대재해특별법으로 교장에게 떠넘겨졌습니다. 앞으로 교권침해를 이야기 했는데 교권업무만 더 늘어날 상황입니다.

초등교장회에 요청합니다. 서이초 사건의 핵심은 초등교육입니다. 초등에서 적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자율과 교권을 침해하고 있는 초등교육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낱낱이 규명해주시고 질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학교 교장을 외롭게 하지 말기 바랍니다. 한초협 행사는 소중한 시간을 내서 참여한 교장들에게 정책홍보나 듣게 할 거였다면 왜 검은 옷은 입고 오라고 했는지~ 교육부가 아니라 교장선생님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선생님들에게 교육적 논리가 서지 않는 감독관리자로만 대상화되지 않도록, 학교교육공동체가 살 수 있도록, 초등교육의 생명력이 살아나도록 적극 나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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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랑 2023-09-09 21:54:03
교장 선생님! 그런데 면동초는 왜 자율휴업일을 지정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언행일치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유정 2023-09-05 13:45:27
늘 교사의 편에 서서 징계도 불사하지 않으셨던 한미라 교장 선생님, 10년도 더 지났지만 교장선생님께서 학생과 교사들을 진정으로 위해주시고 위기 상황을 늘 지혜롭게 헤쳐나가셨던 모습은 잊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늘해랑 2023-09-04 21:48:16
추천 오조오억개 누르고 싶네요. 한 문장도 버릴 문장이 없습니다. 소리내어주어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ㅇㅅㅇ 2023-09-04 14:44:50
동의합니다. 정말 공교육의 장례식이란 말이 딱입니다.. 공교육은 부활할 수 있을까요?

교육정상화 2023-09-01 15:50:14
적극 동의합니다. 이대로 공교육이 무너져만 가는데 정작 책임부서인 교육부는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규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