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규 칼럼] ‘킬러’ 문항을 이용해서 문과를 ‘침공’하자?
[조호규 칼럼] ‘킬러’ 문항을 이용해서 문과를 ‘침공’하자?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3.06.30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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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사무국장
조호교 전국시도교육감협 사무국장
조호교 전국시도교육감협 사무국장

[에듀프레스] ‘다음 달에 태어날 우리 아이 이름은 무엇으로 지어야 하나?’ ‘뜻도 좋고, 발음도 좋고, 느낌도 좋은 이름 어디 없나?’

아이를 낳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름이 지닌 힘, 정확히는 언어가 지닌 힘 때문이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를 넘어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언어에 노출되는가가 알게모르게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

이것은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고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을 지배한다. 공공언어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공공언어의 수준은 어떠한가? 더욱이 한 사회의 미래가 걸려있는 교육계의 공공언어의 수준은 어떠한가?

얼마 전 대통령이 이른바 수능 ‘킬러’ 문항의 폐해를 언급한 뒤로 ‘킬러’ 문항이란 단어가 온 방송 뉴스와 인터넷, 그리고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다. 심지어 교육부에서 배포하는 공식문서인 보도자료에도 버젓이 ‘킬러’ 문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킬러(killer)’란 그 본뜻이 ‘살인자’라는 의미이다. 대체 시험 문항으로 누구를 ‘살인’한다는 것인가? 물론 시험의 목적 중 하나가 경쟁에 있는지라 ‘킬러’란 경쟁자를 제친다는 비유적 의미라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그 본뜻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이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대중이 수시로 입에 올리는 공공언어로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러한 단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언어환경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른바 ‘문과 침공’은 또 어떠한가? ‘문과 침공’이란 통합형 수능이 실시된 후로 이과 계열 학생이 명문대 간판 획득을 위해 인문계 학과에 대거 지원하여 합격해놓고 실제로는 반수 등을 이유로 대학에는 다니지 않아 결과적으로 인문계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이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현상으로서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이러한 행위를 ‘침공’이라는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마치 학생들이 서로 죽고죽이는 전쟁을 벌이는 듯한 느낌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공공언어로 적절한가?

‘킬러’ 문항과 ‘문과 침공’이란 단어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그 밑바탕에는 모두 ‘경쟁’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물론 경쟁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발현시켜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그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고위공직자나 언론이 ‘킬러’ 문항이니, ‘문과 침공’이니 이런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면, 우리 학생들은 더더욱 학교 현장을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전쟁터로 여길 것이다.

‘킬러’ 문항은 ‘초고난도’ 문항으로 사용하면 된다. 또 ‘문과 침공’도 ‘이과생들의 교차지원 현상’ 등으로 사용하면 된다. 자극적인 단어는 언뜻 대중의 시선을 끄는 듯 해보이지만, 고위공직자나 언론이 사용하는 단어의 파급력을 생각해본다면 공공언어의 제1조건은 품위이다.

더더욱 경쟁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교육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넘어 상대방에게 쳐들어가 그를 죽여없애야만 내가 사는 듯한 섬찟함이 담겨있는 언어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이러한 단어에 담긴 숨은의미를 배우고 있고, 그러한 언어가 우리아이의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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