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수능을 능멸하는가?
[기자수첩] 누가 수능을 능멸하는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3.06.29 14: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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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지난 15일 점심 무렵, 기자실이 술렁였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교육부가 교육개혁 업무보고 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사전 예고가 없었던 탓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오후 2시, 이주호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이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김은혜 대통령실 대변인을 ‘유은혜’라고 부르는 등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이 부총리가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대통령께서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수능과 관련,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론은 수능 난이도에 집중했다. 올 수능은 쉬울 것이라는 성급한 관측이 나왔다. 한국사회 대표적 역린을 건드린 순간, 파장은 컸다. 놀란 대통령실이 곧바로 수정 보도자료를 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 말씀이라고 바로잡았다. 이 부총리가 ‘학교수업’이라고 표현한 것을 대통령실이 ‘공교육’으로 용어 정리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수능에서 다루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국어 비문학을 예로 들며 킬러문항과 카르텔을 언급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분이기는 격화됐다. ‘학교수업’이 맞는지 ‘공교육’이 맞는지 진실공방에 이어 수능 킬러문항이 도마에 올랐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됐다. 대통령 업무보고 다음 날인 16일이다. 교육부는 6월 모의평가에 대통령의 지시가 반영되지 않아 경질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3월 대통령으로부터 공교육 내에서 출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부연했다(그러나 27일 열린 국회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실제로 지난 3월 그러한 지시가 있는지는 이주호 부총리에게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이 부총리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으며 구두로 전달받았다고 답변했다. 자신도 직원들에게 구두로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진실이라는 데 자신의 명예를 건다고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 내부 문서에 수능 킬러문항 배제를 담은 대통령 지시사항은 적혀있지 않았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쏘아붙였다. 세간에는 이주호 동정론까지 나온다).

지난 19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과 교육부 간 당정협의. '대통령이 수능 난이도까지 지시하느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 부총리는 기자 질문에 “입시에 대해 윤 대통령이 깊이 있게 알고 연구하고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신 걸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제가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한껏 몸을 낮췄다.

그리고 이날 오후 4시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6월 모의평가 책임을 지고 전격 사임했다. 총리실과 교육부가 평가원에 대한 감사 방침을 밝히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26일 교육부가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이 부총리는 최근 3년 수능과 6월 모의평가에서 출제된 22개 킬러문항을 공개했다.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돼 대학교수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이들이 킬러문항인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킬러문항을 올 수능에서 출제 않겠다고 했는데 정작 킬러문항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지를 알 수 없으니 혼란은 더했다.

교육부가 예시한 킬러문항 또한 논란이다. EBS와 연계된 문항을 킬러라고 들이대고 정답률이 35%를 넘는 문항도 있다. 꼼꼼하게 살펴봤다면 얼마든지 걸러낼 수 있었겠지만 교육부는 그런 것조차 놓쳤다.

심지어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의 제목에는 ‘소위 킬러문항 사례’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정부 부처, 특히 교육부가 시쳇말이나 다름없는 킬러문항이라는 용어를 정부 공식 문서에 적어야 했는지, 교육부장관이 국민들앞에서 이를 그대로 읽어야 했는지를 두고도 뒷말이 많다.

이해를 쉽게하려는 배려인지 아니면 킬러라는 자극적 용어를 사용해 극적 효과를 높이려 했는지 알수 없지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다.

교육부가 26일 공개한 킬러문항 사례 자료 표지
교육부가 26일 공개한 킬러문항 사례 자료 표지

28일 오후 국세청은 대형 입시학원 메가스터디, 종로학원, 시대인재 등에 대해 전격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사교육 카르텔에 포커스를 맞춘 세무조사다.

그날 이 부총리는 EBS를 방문, 공교육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EBS가 공교육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사교육을 줄이는데도 많은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교육부 장관을 두 번 지낸 안병영 전 연세대 교수는 지난 1997년 EBS 수능 방송을 시작하면서 이를 ‘당의정(糖衣錠)’이라고 했다. 먹기 좋게 만든 응급수단일 뿐 장기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신현석 고려대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교육정책의 패러독스>에서 “사교육비 줄이겠다고 만든 수능 EBS 연계정책이 오히려 공교육 정상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수는 교육부의 사교육 대책을 해열제로 비유했다. 그는 “중병에 걸려 열이 펄펄나는데 <킬러표> <EBS표> 해열제를 먹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시적으로 열이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지금이 딱 그런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역대 정부마다 사교육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수혜대상과 소외대상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한가지 분명한 건 교육정책과 입시제도의 잦은 변경이 오히려 공교육의 신뢰를 떨어뜨려 사교육 의존도를 증가시켰다는 점이다.

위정자가 진정 뼈아프게 반성해야 하는 대목은 '소위 킬러문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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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학 2023-06-29 16:01:15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지 않은 문제를 출제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지극히 당연한 지시라고 봅니다. 다만 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학교 수업만으로도 수능에 좋은 성적을 얻을수 있도록 학교교육이 정상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지시과정이나 전달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있으나, 근본적으로 공교육 교육과정의 틀에서 출제되어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효과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