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연습해야 하는가?
[전재학의 교단춘추] 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연습해야 하는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3.03.29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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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산남곡중 교장
전재학 인천산남곡중 교장

일찍이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이기적임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얼마나 더 이기적일까? 이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바와 같다.

인간은 권력, 명예, 그리고 부를 추구하며 종국적으로 이것들이 가져다준다고 믿는 행복을 구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부모와 학교는 그런 것이 많을수록 안락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요술지팡이라고 가르친다. 한국적인 출세와 성공 지향적인 우리 사회는 이러한 성향이 매우 심각하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도록 몰입하는 학교 공동체는 과연 교육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 볼 때 학교는 완전한 ‘야만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있다.

이는 유럽에서 모든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을 혁신한 6.8 혁명 당시 독일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도르노가 교육을 통한 경쟁을 지적하며 “경쟁은 또 다른 이름의 야만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경쟁을 통하지 않고도 교육 선진국과 경제 대국을 이룩한 독일은 우리에게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의 현실을 보자. 경쟁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국시(國是)’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초중고 교육은 가장 공정한 경쟁이라 착각하는 시험 제도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한 줄 세우기에 익숙하다.

어려서부터 이를 연습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열은 매년 엄청난 사교육비의 증가와 함께 작년 2022년에는 26조 원이나 사용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 본다. 국가의 낭비요, 온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요원한 과제일 뿐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학교에서의 많은 시간을 오직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간으로 인식한다. 모든 교육활동은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미리 획득함으로써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이라 불리는 곳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정기고사(중간고사, 기말고사) 1달 전, 아니 그 이전부터는 어떠한 교육활동에도 참여를 삼가고 꺼려한다. 오직 지필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획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내신 성적을 확보하고자 한다.

여기서 밀리면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고 울부짖으며 재수, 삼수, 사수, 혹은 마지못해 대학 진학 후에는 편입이란 길을 찾아 무한 반복되는 길을 선택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중학교는 소위 대도시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하는 중산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적 특성을 비교적 잘 보여준다. 중학교 입학 시부터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영재고’ ‘과학고’ ‘자사고’ ‘외국어고’ ‘예술고’ 등의 진학을 꿈꾼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을 사교육(학원 교육)에 참여시킨다. 상당수의 학부모는 중학교 입학과 더불어 처음부터 공식적으로 특정고의 진학을 선언한다.

그리고 제3자가 보기에도 감탄하고 눈물겹도록 뒷바라지를 한다. 이에 학생들의 호응도 무조건적이다. 그러니 학부모에게는 “이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고 말할 정도로 궁합이 맞아 보인다. 적어도 청소년 초기에는 그렇다.

문제는 그들이 청소년 시절을 얼마나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해 나가고 배움이 즐거운 청춘 시기를 지나는가이다. 처음에 영재고를 진학의 1순위로 하고 2순위로 과학고, 3순위로 자사고로 하나씩 밀려 나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앞선다.

그들이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실패를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삶인지 아니면 마음에 상처만 가득한 아픔의 삶인지는 역지사지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이제 부모는 과연 자녀의 이런 마음을 알고는 있는지 그리고 상호 간의 이해와 공감이 존재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지치고 실망한 표정이 어려서부터 그들을 압도하고 있음에 우려할 뿐이다.

필자는 감히 제안하고자 한다. 부모는 이제 자녀의 마음을 공부해야 한다. 즉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녀가 살아야 할 삶의 주체는 그들이지 결코 부모가 아니다. 대리만족은 지나친 이기심이다. 나중에 자녀가 잘되고 성공하면 결국 부모를 고마워할 것이란 기대도 기약 없는 약속이고 허망한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아 소위 명문 학교에 진학한 자녀가 부모에게 ‘살기(殺氣)’를 품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음을 우리는 현실 비판의 드라마를 통해 수없이 접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겐 학부모가 아닌 부모의 마음이 필요하다.

공부와 진로 선택에 하루하루가 지치고 힘든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 응원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그들의 삶을 역지사지하는 자세만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얻는 것이 아니다. 평생교육처럼 의지와 끈기로 부단한 연습이 필요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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