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의 AI 시대 교육법 ⑳] 생성 AI 시대, 똑똑한 컨듀서되기
[박남기의 AI 시대 교육법 ⑳] 생성 AI 시대, 똑똑한 컨듀서되기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3.03.17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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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20여 년, 전 갓 출판한 책을 가지고 대학 은사님을 찾아뵈었다. 받은 책을 훑어보시더니 휙 던지며 “이런 쓰레기 좀 만들지 말게.”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주 존경하는 분이고, 사적으로도 친한 관계이며, 그 은사님의 화법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활짝 웃으며 답을 했다.

존 스타인벡이 40번째 작품인 ‘에덴의 동쪽’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때, 그 이전의 작품들은 이를 위한 습작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말을 인용하며, “선생님, 저도 열심히 쓰레기를 만들다 보면, 언젠가 좋은 책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씀드렸더니 한 말씀 더 하셨다.

“가시나무 새는 죽기 전에 딱 한 번 운다네.” 그래서 다시 답을 드렸다. “제대로 한 번 울어보지 못하고 죽는 가시나무 새도 많습니다.” 은사님께서는 껄껄 웃으셨다.

나중에 그분으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제자들 모임에서 박남기처럼 책을 쓰라고 하시던데 네가 무슨 말씀을 드렸냐고 물었다. 그분은 자신의 소신이었는지 퇴임 때까지 단독 저서를 내지 않으셨다.

그러나 퇴임 후에는 한동안 직속 제자들과 함께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셨다. 나는 그 후 여러 권의 책을 펴냈으나, 선생님 말씀의 속뜻을 새겨 내 강의 교재용 개론서는 집필하지 않았다.

대부분 개론서가 서로를 베끼는 유사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어서 그러한 개론서를 뛰어넘는 책을 구상했다. 그러나 여러 핑계로 완성하지 못한 채 정년을 앞두게 되었다. 내 학문 분야의 개론서와 관련해서는 결국 나도 아름다운 울음을 준비하다가 끝내 울지 못하고 죽은 가시나무 새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

책이라는 것은 저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었고, 출판사도 여러 가지를 따져 출판하기에, 특히 유명 출판사를 통해 출판된 책에 대해서는 사회가 어느 정도 권위를 인정해주었다.

내 책을 건네면 주위 사람들은 빈말처럼 죽기 전에 자신도 책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책 한 권 내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던 은사님 세대를 거쳐, 내 세대는 그보다 자유롭게 책을 써냈다. 대한출판문화협회(2020)가 펴낸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19년 한 해동안 65,432권(하루 180권)의 신간도서가 출판되었다. 그 이후로는 조금씩 줄고 있다.

인간과 협업이 가능한 생성 AI가 등장하면서 AI와 협업한 책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주제를 비롯한 여러 조건을 제시한 후 생성 AI에게 이야기를 쓰게 하고, 달리(DALL·E)등의 그림 그려주는 AI에게 삽화를 그리게 하면, 동화작가만큼의 글 쓰는 실력이 없어도, 삽화를 그릴지 몰라도 동화책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동화책만이 아니라 전문 분야의 책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구나 종이책이 아니라 디지털 출판도 가능하다 보니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자칫 AI의 도움을 받아 뚝딱 제작한 일부 무가치한 책, 세상을 어지럽히는 저급한 수준의 책들이 플라스틱처럼 지구에 넘쳐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보석 가게에서 원하는 보석을 고르는 것도 힘든데, 쓰레기 산을 뒤져 그 안에서 보석을 찾아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기우일 수도 있다. 굳이 책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수백억 개의 사이트를 통해 매일 다양한 글들이 생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 글의 홍수에 휩쓸려 내려가지는 않는다. 설령 책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세계를 떠돌더라도 사람들에게는 일반 웹사이트의 글들과 별반 차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책 홍수 시대에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된 책을 찾을 때에는 기존의 방법과 함께 AI의 추천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방법이란 주위 사람들, 해당 분야 전문가, 언론사, 책 소개 전문 사이트, 그리고 인터넷 검색 결과 등을 토대로 원하는 책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책 표지, 제목, 서문만을 보고 사거나, 어떤 추천 사이트의 추천 글을 보고 구입했다가 후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의 하나는 전자제품을 고를 때 제조사(브랜드)를 보듯이 모르겠으면 저자가 해당 분야의 저명한 사람인지, 출판사는 믿을만한 곳인지를 보는 것이다.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면 책 수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새롭게 떠오르는 작가나 저자의 책을 놓칠 우려도 있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출판사, 언론사, 그리고 학계의 노력으로 늘 신인이 발굴되어왔기에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기대된다.

인터넷에 있는 서평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서평을 읽을 때에도 해당 사이트 운영자의 권위나 신뢰도 등을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향후에는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주고, 필독서를 제시하는 공공 및 민간 기관이나 개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의 추천은 여러 분야에서 이미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책 추천의 경우,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함께 2021년 9월부터 학생의 독서 활동 이력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도서를 추천하는 웹서비스 '책열매'(책으로 열리는 메일)를 제공하고 있다.

AI 추천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학생 개인의 독서 성향에 맞춰 도서를 실시간으로 추천해 준다. 조만간 책이나 논문 추천에 특화된 생성 AI에 주로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생성 AI에게 관심분야를 비롯하여 조건을 상세하게 제시하면 그 조건에 맞는 책이나 논문의 요약, 목차 까지도 보여줄 것이다.

민간 책추천 AI의 경우에는 홍보비를 받은 출판사의 책을 먼저 추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지 못하면 AI 추천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유튜브 시청자처럼 AI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독자와 달리 전업 작가들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20년을 기점으로 신간 도서 수가 줄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2022)의 ‘2021년 출판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발간된 신간 도서는 64,657종으로 전년도에 비해 1.7%가 줄었다.

Lexica를 이용해 그린 인간과 AI 협업 모습
Lexica를 이용해 그린 인간과 AI 협업 모습

다양한 영상 매체와 SNS가 발달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줄고 있어서 이러한 경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국어교육과에 입학해보니 선배들이 학과 이름을 ‘굶은과, 굶는과, 굶을과’라고 했다.

주로 가난한 집 아이들이 들어와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가난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대한민국에서 전업 작가로 살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생성 AI시대, 누구나 재미로 책을 쉽게 써댈 수 있는 시대, 무료 전자책이 범람하는 시대가 되면 경쟁력을 가진 전업 작가 수는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제는 뛰어난 전업 작가보다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독창적 아이디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AI와 협업하는 형태의 다양한 책들을 더 많이 쏟아내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시대란 삶이 아주 편리해진 시대, 소위 전문가만 할 수 있던 것을 자신도 할 수 있게 된 시대이다. 다양한 분야의 생성 AI가 등장하면서 소위 전문가나 해당분야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만 할 수 있었던 창작활동을 일반 소비자들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넘쳐나는 유튜브 방송 채널이 한 예이다. 많은 일반인들이 디지털 카메라와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사진작가처럼 활동하고 있는 것도 그 예이다. 생성 AI가 더욱 발전하여 범용 일반인공지능(AGI)에 가까워지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이미 디자이너, 작곡가, 화가(웹툰작가), 소설가(동화작가) 등으로 그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소비자 역할만 하는 대신 전문가나 타고난 예술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를 넘나들며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고, 동시에 창작(생산)에도 참여하는 사람을 컨듀서(conducer. consumer+professional/producer)라 할 수 있다. 우리말로는 소생자(소비자+생산자)라고 하면 되겠다.

유사한 신조어로 프로슈머(prosumer. professional/producer + consumer)라는 말이 있다. 이는 1980년 앨빈 토플러가 《제3물결》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여러 의미로 사용되지만 주로 제품에 의견을 내는 등의 방식으로 생산에도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 소비자를 의미한다(나무위키. 프로슈머). 우리말로는 생산소비자 혹은 생비자로 번역되었지만 영어 발음을 살린 프로슈머가 널리 사용되어왔다.

프로슈머는 생산에 적극적으로 관여는 하지만 결국 소비자이다. 그러나 컨듀서는 소비자였으나 AI와의 협업을 통해 스스로 생산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만개하고 있는 생성 AI 시대를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매일 등장하는 신기술을 조금씩 익히다 보면, 스마트폰 덕에 새로운 세상을 즐기듯이 생성 AI 덕에 세상을 즐기게 될 것이다.

생성 AI 시대는 독자(소비자)와 작가(생산자)가 완전히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라 소비자가 생산자 역할을 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 시대 즉, 컨듀서가 가능해진 시대이다.

쓰레기에 휩쓸리지 않는 현명한 소비자, 한발 더 나아가 생성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과 나누는 똑똑한 컨듀서(소생자)가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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