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칼럼] 구멍 뚫린 학폭 대책 10년, 피해학생 지원부터 재설계 하자
[박남기 칼럼] 구멍 뚫린 학폭 대책 10년, 피해학생 지원부터 재설계 하자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3.03.02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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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학교폭력을 저지르고도 서울대에 입학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 문제를 비판하는 서울대  대자보.
학교폭력을 저지르고도 서울대에 입학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 서건을 비판하는 서울대 대자보.

2021년 초, 과거의 학교폭력(학폭) 피해를 폭로하는 '학폭 미투'(나도 당했다)가 연예계에서 시작하여 체육인, 그리고 공무원(경찰)을 포함한 사회 각계로 확산되었었다.

이번 정순신 아들 사건이나 ‘불타는 트롯맨’ 황영웅 사태를 계기로 현재의 유명인이나 공인으로부터 과거에 당했던 학교폭력 미투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당시에도 많은 대안이 논의되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모으고 있다.

왜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일까? 절차에 따라 가해학생이 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피해 학생들의 분노, 좌절, 트라우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면 가해자는 수십 시간 사회봉사를 통해, 혹은 강제 전학조치를 통해 충분한 처벌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고 하여 피해자의 분노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자신은 고통 중에 살아가고 있는데 상대방은 크게 성공하여 자꾸 언론에 노출될 때, 피해자의 분노와 고통은 더욱 커진다. 언론을 통해 SNS를 통해 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학폭 미투이다.

이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2년 전에도 강조했지만(박남기, 2021), 피해 학생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가도록 돕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제공해야 한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을 경우 심리상담 및 조언, 일시보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등을 받을 수 있고, 이러한 도움을 받은 경우에는 본인이 사전에 경비를 지출한 후에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규칙).

제출할 서류는 치료비 청구서와 영수증, 심리상담 조언의 경우 학교폭력기관장의 의뢰 확인서, 일시보호의 경우 심의의원회 요청서 사본 또는 학교장의 확인서, 치료 및 요양의 경우 의사증명서 등이다.

절차상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피해 당사자인 미성년 학생이 이러한 치료를 직접 받으러 다니지는 못할 것이다. 보호자나 다른 성인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간 사례에 비춰볼 때 피해학생 보호자는 시간과 재력 그리고 역량과 관심 면에서 볼 때 이러한 치료를 적극적으로 추진할만한 처지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와 교사 차원에서 이러한 치료를 주선하고, 학생과 함께 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4조에는 전문상담교사 배치하고 및 전담기구를 구성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학생 회복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것은 학교 상담교사가 피해학생을 치료할만한 여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법 제16조(피해학생의 보호) 제1항에 따르면 “심의위원회는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피해학생에 대하여 법에 정한 조치를 할 것을 교육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이러한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피해학생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자꾸 사회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규정이 효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의위원회는 ‘피해학생 보호’를 ‘학폭 피해로 인해 겪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문제 해결’이라는 적극적 의미로 해석하며 적용할 필요가 있다.

심의회가 법이 정한 조치를 요청할 경우, 교육지원청이 이를 적극 추진할 인력과 예산을 갖추고 있어야만 제대로 집행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이 또한 미비한 상태이다.

학교장은 피해학생이 긴급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1)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 2) 일시보호, 3) 그 밖에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 등을 할 수 있다(「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1항).

이 조항에 따르면 ‘피해학생이 긴급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여야 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해야 하는 기속재량이 아니라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조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조항은 피해학생이 요청하는 경우가 아니라 ‘피해학생이 반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적용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능을 실질적으로 담당할 기구를 학교 내에 갖추고, 그들이 필요한 역량을 갖추며, 아울러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그러나 학폭의 특성상 학교 내에서 치료를 받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부장은 발생한 사안을 조정하기에도 버거운 실정에 놓여있고,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이다 보니 주로 신입자가 담당하며, 매년 바뀌기 일쑤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동법 제16조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미성년자이고,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치료를 요청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경우가 많으며, 피해학생의 심리적 특성상 교내 치료에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서 제도를 재설계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0여년 이상의 시행을 통해 현행 제도는 우리가 기대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헌법」 제30조에 따르면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학교폭력 피해와 관련해서는 이 조항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도 있다. 미성년자인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피해학생의 반대 의사가 없으면’ 법이 정한 담당관이 피해학생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주선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도 함께 하도록 보완해야 한다.

담당관을 별도로 두기 어렵다면 이를 유관 민관기관에 위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교육부는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 선정·운영을 권장하고 있다. 이제는 권장이 아니라 각 교육청이 반드시 선정·운영하도록 규정할 때가 되었다.

비용 청구 절차와 필요한 서류 구비 역시 피해학생 보호자가 직접 하기에는 녹록지 않다. 현재는 “피해학생의 신속한 치료를 위하여 학교의 장 또는 피해학생의 보호자가 원하는 경우에는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제15조에 따른 학교안전공제회 또는 시ㆍ도교육청이 부담하고 이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6항).

하지만 학폭피해 전담기관 담당자에 따르면 어려운 환경의 부모들은 이를 요청하는 것에서 조차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피해학생의 보호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공제회나 교육청이 부담하고 추후 상환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법을 적극적으로 적용·집행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재설계한다면 학폭 피해 학생 대상 치료는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제대로 화해하고 사건이 종료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가해 학생이 처벌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마음으로부터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피해학생의 보호)의 ‘6. 그밖에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한 필요한 조치’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거나 개정할 필요가 있다.

‘보호’는 피해학생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피해학생을 위한 추수상담, 회복탄력성 지원, 후유증이 생겼을 때 간편한 추가 치료 신청 등이 가능하게 하면 피해 학생은 고통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 때문에 인간사회의 범죄를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을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회복을 지원하는 것 등은 가능하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지금이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줄일 뿐만 아니라,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행복한 시민으로 평생을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다. 또다시 들끓다가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박남기(2021.03). 스포츠 스타와 교육감, 그리고 ‘학교폭력 미투’. 새교육, 797, 08-11.

* 이 글은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구자송 대표의 자문을 받아 작성되었다.[박남기 칼럼] 구멍 뚫린 학폭 대책 10년, 피해학생 지원 재설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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