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형의 에듀토크] 가정통신문은 공사중
[김남형의 에듀토크] 가정통신문은 공사중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7.29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김남형 경기 여주송촌초 교사
김남형 여주 송촌초교사
김남형 여주 송촌초교사

구한말, 궁중 전화를 받기 위해 신하는 관복을 갖추어 절을 세 번하고 무릎을 꿇은 채로 수화기를 들었다고 한다. 신기술의 도입과 시대 관습이 어우러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최근 학교의 가정통신문 배부 방식이 종이 인쇄물에서 모바일 어플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원격 수업으로 교실와 가정의 온라인 소통이 활발해지며 전국의 수많은 학교가 어플 서비스를 택했다.

모바일 가정통신은 종이 인쇄물에 비해 여러 이점을 갖는다. 통신문 배부와 회신문 취합에 필요한 인력 소모부터 줄어든다. 빨라진 회신 속도가 가져오는 업무 효율은 덤이다. 종이 소모량을 대폭 줄여 환경 보호의 대의명분까지 챙기니 얼마나 좋은가.

의아한 점은 모바일 가정통신이 도입되었음에도 기존의 A4 인쇄물 포멧의 파일이 관습처럼 고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학부모)와 공급자(교사) 모두에게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학부모들은 좁은 스마트폰 화면을 4배 쯤 확대해야 안내장을 읽을 수 있다. 모바일 웹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사이트를 PC버전으로 보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진다. 담는 그릇과 내용물의 크기가 서로 맞지 않다보니 조금만 부주의해도 놓치는 정보가 빈번히 발생한다.

공급자인 교사의 입장은 또 어떠한가. 회신이 필요한 가정통신문에서는 인쇄용 파일을 제작하고 모바일 어플에 질문 양식을 별도로 입력해야 한다. 일을 두 번하는 꼴이다. 관심있게 볼 사람이 없는 인쇄용 파일을 만드는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하는 의문이 작성 과정 내내 담당자를 괴롭힌다.

모바일 화면에 걸맞는 가정통신으로 전환하기란 어려운 일일까? 다음의 몇 가지 요건이 충족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먼저 인쇄물 제작용 프로세스가 아닌 모바일 화면에 최적화된 페이지 구성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내부 결제에 첨부할 파일을 별도로 저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안내용 어플이 그 일을 소화한다면 회신 문구를 기입하느라 일을 두 번하는 수고도 줄일 수 있다.

방과후학교 신청서처럼 안내할 내용이 많은 경우라면 페이지 구분과 하이퍼 링크를 활용해 볼 수도 있다. 강좌 목록을 안내하고 개별 강좌명을 클릭하면 세부 강의 설명이 나오는 식이다. 이 모든 것이 단일 확장자 파일로 저장되어 내부 결제 첨부파일로 존재할 수 있다.

통신문의 내용도 간략화할 필요가 있다. 계절의 변화를 거론하며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던 인사말은 6인치짜리 화면에선 거추장스럴 뿐이다. 주요 내용도 개조식으로 간단히 표현하는 것이 어플 서비스 사용에 더 적합하겠다.

학교 로고와 연-번호, 전화 회선번호도 안내 어플에서 공통 표시할 수 있으니 개별 통신문에서는 생략 가능하다. 인쇄물에 필요했던 문구와 형식이 사라진 자리에 직관적인 인포그래픽(Infographics)을 가미해본다면 딱딱한 느낌도 줄일 수 있다.

학교 공동체는 변화에 대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적 관점만 융통성을 가지라는 말은 아니다. 진보적 관점도 오랜 기간 검증된 시스템이 가지는 효용과 품격을 제대로 살펴야한다.

다시 구한말, 전화기 앞에서 관복을 갖추고 드리던 삼배의 예를 한낱 허례허식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열강 앞에 꺼져가는 왕조의 위상을 다시금 살리고자 하는 우리 나름의 몸부림으로 해석할지 편히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