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다시 시작하자 -2학기를 맞이하는 교사의 마음
[한희정 칼럼] 다시 시작하자 -2학기를 맞이하는 교사의 마음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9.0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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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9월이다. 지난 2월 코로나-19 환자의 급작스런 증가로 휴업이 계속 연장될 때만해도 9월이 되도록 이 사태가 지속될 거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명성 꽤나 있는 분들도 ‘9월 학기제’를 주장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올해 안으로 종식되기 어렵다는 것, 적어도 내년 이후의 상황을 예비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마스크 착용과 같은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면 집단 감염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은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은 커녕 ‘알게 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8월 15일 전후의 사태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합리적 판단을 요구하나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조차 없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이들의 행태는 ‘교육’하는 일을 한다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반이성, 반지성적인 어른들의 행태에 대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개념이 있으면 말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는 비고츠키의 깨달음에 빗대자면, 질문이 있으면 답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보편적인 질문이 코로나19와 2020년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답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만 우리가 그 답을 찾기까지는 지난할 것이고, 그 답을 찾는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2학기를 맞이한다. 여름방학을 시작할 때만하더라도 2학기에는 더 많이 등교해서 마스크 쓴 얼굴을 보며 공부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기세에 그 기대는 일장춘몽만도 못하게 되었다. 수도권은 지난 1학기에도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 1-2회 등교를 했는데, 이젠 진짜 화약고가 되어 원격수업으로만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1학기 원격수업에 대해 성찰하자. 이미 많은 교사들이 스스로의 수업을 평가하고 고쳐야 할 것, 더해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1학기 원격수업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모든 것이 부족한 와중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5년차, 20년차, 30년차 교사지만 원격수업에서는 모두 ‘신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부족함을 채워나갈 방법들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학교장 통할권이라는 법령 하에 학교장의 명령에 순종하는 ‘미덕(未德)’은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싹부터 잘라내는 미덕(未德)을 발휘하고 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튀지 않는 것, 튀지 않는 것은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으로 곧바로 동기화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조용히 우리반만 잘 챙기면 된다는 것이 이 원격수업 시대에는 거침없이 삐걱댄다. 우리반만 새로운 플랫폼, 다른 소통방식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순종적인 이들에게는 원천봉쇄되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협력’의 다른 이름이 ‘정체’가 되어서는 안되며, ‘협의’의 다른 이름이 ‘눈치 보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학습하는 능력’이듯이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역시 ‘학습하는 능력’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며, 적용하고 실천하는 ‘학습’이 없이 교직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옆반 눈치 보면서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런 것도 하려고 하는 데 같이 하면 어떻겠냐고 얘기를 꺼낼 수 있는 교직 문화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교직문화는 결국 ‘내’가 만들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나는 또 누군가의 상상을 발목 잡는 꼰대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언제나 성찰해야 한다. 옆반에서, 동료교사가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 격려하지 못하고 ‘왜 저렇게 피곤하게 만드나, 대충하나 적당히 하나 어느 정도하나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같은 생각을 품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사실 교직 수행은 대충하나, 적당히 하나, 열심히 하나 그 성과가 바로 눈앞에 보이지도 않으며, 딱히 크게 인정받지도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내가 좋아서 하고, 직무 수행에 대한 자기 만족감으로 추동되는 직업이다. 그런 만족감에 영향을 주는 것이 학생들의 반응이고 학부모의 반응이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디선가 삐걱댄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는데 학부모의 평가는, 특히 무기명 평가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경우들이 언제나 있다. 그러니 대충하나, 적당히 하나, 열심히 하나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자.

사실 이 글은 독자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필자를 향한 것이다. 지난 1학기 원격수업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많이 지쳤고, ‘동학년 통일’이라는 엄명을 수행하느라 힘들었다. 1학기를 마무리하고 2학기를 준비하면서 더욱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나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다짐을 하는 교사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을 거라는 짐작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질문이 있다면 답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답을 향해 가는 과정이 지난할 뿐이다. 만약 코로나19가 신종플루처럼 치료제가 있었거나 메르스처럼 바로 종식되었다면, ‘질문’이 깊어지기도 전에 그냥 끝났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곳,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교육도, 학교도, 교사도 비켜갈 수 없다. 우리가 ‘성실’하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 교육의, 우리 학교의, 우리 교실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과정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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