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공부는 공감이다
[교육 칼럼] 공부는 공감이다
  • 김민지기자
  • 승인 2017.11.01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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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한양대 교수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사회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된다고 우리가 공부하는 세계도 손가락 하나 클릭하면 모든 걸 저절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만능의 기술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인간의 학습과정이나 교육과정을 대신해주는 첨단 학습기계나 교육적 기술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아날로그 사회가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인간적 접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전통적인 교육이나 학습이 온라인이나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 가면서 일대 교육혁명이 전개되는 것처럼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전대미문의 문제를 앞에 두고 고뇌하면서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탐험이나 한 가지 분야의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해하고 복잡한 문제 역시 기술적 수단으로 저절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내 몸이 움직여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나의 지식이나 지혜로 체화되지 않는다. 체험하지 않고도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체험하지 않고는 가슴으로 느낄 수 없다. 체험적 느낌을 갖고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공감능력은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 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위기는 디지털 기술과 융합기술, 사물 인터넷을 비롯한 초연결화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교육도 힘 안들이고 가만히 앉아서도 저절로 일어날 것처럼 생각하는 데 있다. 특히 기술이 인간학습을 대신해주면서 인간은 과거의 그 어느 때 보다도 머리를 쓰거나 몸을 움직이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술적 편리함 덕분에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어렵고 힘들게 공부하는 가운데 얻는 깨달음의 소중함이나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가 교육을 받든 스스로 학습을 하든 공부를 통해서 배우는 방법에 혁명적인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도 여전히 공부하는 주체의 분투노력은 기술이 대신해줄 수 없다. 예를 들면 e-Learning을 비롯 모바일 러닝(m-Learning), 유비쿼터스 시대를 주도했던 u-Learning, 소셜 미디어 시대를 이끌어가는 소셜 러닝이나 스마트 러닝(s-Learning), 관련 학습 주제나 내용에 관한 비디오를 먼저 선행학습으로 보고 학교에서 동료들과 토론학습을 하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 또는 f-Learning)과 온라인 학습과 오프라인 학습을 섞어서 만든 혼합학습(Blended learning 또는 b-Learning) 등 참으로 다양한 학습이 신출귀몰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학습방식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서 과거에 비해 질적으로 다른 학습효과가 발생하고 있는가? 그 많던 learning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습의 본질은 학습 앞에 유행에 따라 붙어 다니는 각종 형용사가 결정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e-Learning, m-Learning, u-Learning, s-Learning, f-Learning, b-Learning에서 electronic, mobile, ubiquitous, social, smart, flipped, blended와 같은 형용사 뒤에 있는 학습방식을 바꿔줄 뿐, 학습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학습의 무대가 온라인 또는 사이버 공간이 된다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학습의 본질은 학습의 주체인 인간이 기술적 힘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학습활동을 전개한다고 해도 여전히 기술이 대신해줄 수 없는 인간의 고뇌에 찬 결단과 고된 노동을 통해 체험적 지혜를 얻는 과정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을 뛰어넘을 수는 있지만 답이 없는 가운데 답을 찾아 부단히 질문을 제기하는 지성이나 체험적 깨달음을 통해 온몸으로 공감하는 지혜는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공부를 통해서 배워야 될 점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공감능력이다.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발 벗고 나서서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와 노력은 기계가 보여줄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관계가 겪고 있는 아픔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해본 사람은 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공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단순한 연민(sympathy)의 감정보다 공감(empathy)을 느끼게 되며 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연민은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다. 상대는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다. 어쩌다 불행을 경험하는 장면이 목격되어 상대의 아픔에 잠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공감은 느끼는 감정으로만 그치지 않고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 고통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장으로 달려간다. 공부는 먼발치서 느끼는 연민이 아니라 가까이서 아픔을 같이하는 공감이다. 공부는 연민의 감정을 넘어 역지사지가 되어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느끼는 측은지심으로 공감하는 과정이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와도 4차 교육혁명의 힘으로 저절로 기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은 내 몸이 직접 움직여 체험하면서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능력이다. 진정한 공부는 머리로 계산하는 이해타산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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