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톡] 실무사님을 실무사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글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서울언주초교사

2021-06-28     김민정 기자
송은주

[에듀프레스] 얼마 전 유머러스하면서도 메시지가 확실해 감탄했던 광고가 있다. 한 남자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요양보호사에게 “아줌마!”라고 부른다. 그 순간 TV 화면에 있던 탤런트 오나라가 말한다. “아줌마라니?” 그리고 “아줌마 NO! 요양보호사! 국가 자격 취득한 전문가!”라는 가사의 랩을 한다.

특정 직업인을 ‘이모님’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는 문화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런 점에서 요양보호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광고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업무적으로 정확한 명칭으로 불러주는 일은 그가 본인의 일을 명확히 인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일 고유의 역할을 존중하는 인식과 문화를 형성하게 한다.

얼마 전 논리와 의도가 이해되지 않아 당혹스러웠던 공문도 있었다. 교육공무직원을 ‘선생님’으로 불러 달라는 공문이었다. 교육공무직은 초등돌봄전담사, 교육실무사와 같이 교육기관에서 교육행정이나 교육 활동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를 말한다.

개인적으로 ‘실무사’로서 고용된 분을 ‘실무사님’이라고 부를 때 무시하거나 차별을 두려고 한 의도로 부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실무사’라는 말이 교육공무직의 자존감을 해치는 언행에 속한다는 공문을 보고 매우 안타까웠다.

내가 ‘실무사님’이라고 불렀던 분들은 그럴 때마다 기분이 나쁘셨을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직업인으로서의 자존감이 직무명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무너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교육공무직원을 ‘선생님’이라 불러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학교현장이라는 특수성을 근거로 든다. 아이들을 돌보는 모든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물론 학교란 교사집단으로만 움직일 수 없다. 넓게 보면 수업 외에도 수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모든 일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야말로 아이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진지하게 접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어려서부터도 ‘선생님’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직접 느끼고 배우며, 선생님이 선생님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학생이 생각할 때 학생 자신도 행복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학교다.

그런 점에서 학교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일은 아이들이 느끼는 선생님의 역할을 모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 곳곳에서 다양한 역할과 호칭을 가진 분들을 접하면서 학교는 여러 분야의 직무자가 협력하여 꾸려지는 곳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학교 안 모든 역할이 하나 하나 중요하다.

아이들이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이렇게 다양한 역할,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 어울려 이 거대한 학교라는 조직을 움직인다는 점이다.

호칭은 그 사람이 하는 일, 직급, 그 사람이 통과한 과정과 자격 조건을 담는다. 그 자체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그 호칭을 쓰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심리의 반영과 상황이다. 호칭이 직급을 담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OOO 주제에’라는 식으로 그 호칭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차별이고 갑질이다.

또는 ‘주제에’ 같은 말을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말한다면 호칭도 차별의 도구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사람이 하는 역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호칭이라면 중립적인 명사일 뿐이다.

또 ‘실무사님’, ‘강사님’이라고 부르는 일과 ‘아줌마’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호칭에 직무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 있다. 후자의 호칭이 차별적이고 불쾌한 이유는, 업무 공간에서 어떤 업무적 능력이나 역할이 아닌, 누구에게나 부를 수 있는 말로 불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장벽이 없다는 의미이며 ‘다른 누군가로 대체가능하다’는 의미와 함께 누군가에게는 그 호칭이 ‘만만하다’, ‘중요하지 않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흐름은 선생님이라는 말에도 통한다. 카페나 식당 등 고객을 응대하는 곳에서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이 어법에 틀린 말임에도 많이 쓰인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라도 상대를 대접하고 있음을 알려야만 인정받는 ‘과도한 친절이 당연해진 사회’다.

상점이나 거리, 전화 설문조사 어디서든 ‘선생님’이라 부르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선생님이라는 말은 상대를 대우한다는 티를 낼 때 사용되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이런 경험 때문에 교권이 있는 선생님과 아닌 ‘선생님’을 아이들이 구분하기 점점 어려워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렇게 쓰면 또 ‘선생님이라는 말을 독점하려는 자의 갑질’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호칭은 직무, 고유의 역할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겠다.

호칭이 문제인 것 같지만 호칭 그 자체보다 호칭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하다. 필자는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실무사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핵심은 ‘호칭’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호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호칭을 중립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선한 의도까지 호도하지는 않는가, 직업인의 자존감이란 정말 어디서 나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