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학부모를 만나신다면
까칠한 학부모를 만나신다면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7.03.29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조은 서울신화중 교사

까칠한 학부모를 만나신다면

 

<교단의 꿈>을 붙들고 고통의 먼 길을 걷고 또 걸어 교단에 첫발을 뗀 새내기 교사의 설레임 앞에는 늘 걱정과 불안감도 함께 던져진다. 나름 공부에는 도가 튼 그들이지만 막상 교단에 서서 수 십 대 일의 이질감 속에서 소위 ‘간’을 보는 까칠한 학생들을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선배교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들을 누르고 까칠한 학생과 얘기도 나눠보지만 상처회복은커녕 서로의 이질감만 명확히 확인할 뿐이다.

게다가 담임교사를 찾아온 학부모는 더욱 전투적이다. 학생지도에 있어서 조그만 협력이라도 얻고자 어렵사리 마주앉은 자리에는 학부모의 일방적인 공격이 쏟아지고 “그게 아니구요, 어머님...” 사실을 설명해보려 애를 쓸수록 상황은 꼬여만 간다. 학부모가 떠난 자리에 억울함이 몰아치고 급기야 눈물이 흐른다. 2년 전, 교직 경력 26년 만에 난생 처음 맞이한 세 명의 신규교사들 중에서 3월 한 달 동안 울지 않은 신규교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신규교사들의 눈물은 두 해를 넘겨 지난 12월까지도 이어졌고 “문제학생의 학부모보다 차라리 문제학생이 더 나아요.”라는 신규교사의 절망으로 한 해가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이 절망은 경력교사들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동시대를 살아 온 동년배의 학부모를 대하는 경력교사조차도 까칠한 학부모를 응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힘에 부친다. 이해하려 들지 않고 ‘갈 데까지 따져보세’로 일관하는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의 불편한 심정 먼저 헤아리자!---

교직경력 12년차에 처음으로 내 아이의 담임교사를 만나러 갔었다. 물론 담임교사의 상담요청을 받고서 말이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 담임교사의 첫 마디는 “어머님, 00이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였다. “교실 바닥에 떨어져있는 물건은 죄다 00이 것이구요, 늘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오지 않구요.” 이어지는 담임교사의 말에 나는 연신 “그러셨군요”와 “죄송합니다”만 되뇌이고 돌아섰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선 <화>가 일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교실 바닥에 물건 떨어뜨리는 것, 준비물 좀 아니 챙겨오는 정도로도 힘들어 죽겠다 말하는 것이 이해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상담 내내 아이에 대한 단 한마디의 칭찬도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야속하고 속이 상했다.

‘상담 좀 하시죠’라는 한 마디는 학부모에게는 정말로 <심쿵!!!>하는 소리임을 헤아려야 한다. 교사의 상담요청을 받고 학부모가 학교로 오는 그 길이 얼마나 길고 어려운 길인지 헤아려야 한다. 옥수수 알 같은 허물 속에 단 한마디만이라도 소소한 칭찬이 있었더라면 내 아이가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마음 깊은 곳에 서운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부모에게 전화를 할 땐 늘 이렇게 첫마디를 연다. “어머님, 제가 전화 드려서 놀래셨죠? 저도 제 아이 담임샘한테 전화오면 심장이 멎어요” 상대방의 기분을 읽어주는 것! 그리고 공감해주는 것! 그것처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은 없다. 간혹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샘!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중 어느 것을 먼저 들으실래요?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좋은 소식을 먼저 듣겠노라고 답한다. 그래야 좋은 소식에 스크래치가 아니 난 채 그 기쁨을 만끽할 수 있고, 그래야 좋은 기분에 아이들의 허물을 듣고도 용서하고 이해해줄 내 맘 속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상황은 사진기처럼 읽어주자---

학부모에게 사안을 설명할 때에는 사진기처럼 사실만 나열해야 한다. “어머님, 00이가 또 대형 사고를 쳤어요. 늘 이러니 커서 뭐가 될련지 걱정입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00이 때문에 수업이 힘들다고 하시고 반 아이들도 무척 힘들어해요” 이처럼 무의식중에 표현되는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말들(대형/늘 이러니/ 많은)은 학부모로 하여금 교사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하고 학부모와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또한 잘못된 상황인식으로 화를 내시는 학부모에게 논리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 시도는 오히려 학부모의 화를 증폭시키기 쉽다.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올 때에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학교나 교사에 대한 서운함이나 잘못을 따지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학부모의 잘못 인식된 상황에 대한 논리적 설명 대신에 “그렇게 생각하셨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겠어요!”라고 말해보자. 화난 학부모의 의식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나 공포가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 두려움을 읽어내어 공감을 표현하고 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대화하는 것이 좋다. 4년 전 생활지도부장을 맡아 학교폭력 관련하여 상담을 오신 학부모가 “대체 우리 얘가 뭘 그리 잘못했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가 화가 나서 어머님한테 하듯이 제게 했을 뿐입니다” 이 한마디에 부모님의 입에서는 한숨이, 눈가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부모도 사춘기 아이를 기르는 것이 힘에 겹다. 부모의 화는 상황에 대한 것이지 교사를 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화에 낚이지 말자.

대화내용을 메모하는 것은 교사와 학부모 모두에게 감정의 격앙을 막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갈등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갈등을 형편없이 다룰 때가 문제이다.

얼마전, 8명의 남학생 무리가 그 무리의 한 남학생을 오랫동안 괴롭힌 사안이 발생했다. 조용히 한 녀석(물론, 나와 관계가 좋은 활발한 녀석이었다)을 불러 아이들의 일기검사를 하다가 상황을 알게 되었음과 이것이 사실인지를, 그리고 내가 모르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아이들도 차례로 불러서 상담을 할 것이며 해당 부모님과도 직접 만나서 상황을 얘기드릴 것이며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내 목표는 너희들이 다시 예전보다 훨씬 더 사이좋게 잘 지내도록 돕는 것임을 명확히 해두었다. 상황파악이 끝난 후에 피해 학생을 불렀다. 그 아이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고 상황을 축소하려 들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지금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니?”, “누가 가장 네게 힘이 되니?”, “내가 어떻게 널 도와줬으면 좋겠니?”라는 질문 속에서 끊임없이 나의 궁극적 목표를 인지시켰다. 학생상담이 끝난 후 피해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학부모의 놀란 마음을 읽어준 뒤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칭찬을 전했다. 그리고 요즘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난 뒤 아이를 괴롭힌 친구들이 있음과 아이가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친구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도록 어른들이 함께 도와보자고 도움을 요청했다. 피해부모와 상담 날짜를 잡은 뒤 가해 학생의 학부모들과도 연락을 취했다. 두 달에 걸쳐서 피해학생의 책가방을 쓰레기통에 넣기 5차례, 학용품 동의 없이 가져다 쓰고 돌려주지 않기 8차례, 때리고 도망가기 13차례, 여러 친구들 앞에서 ‘관좀’이라고 놀리기 18차례, 운동화 숨겨놓기 3차례 발생했음과 그로인해 상대 아이가 학교오기를 두려워하고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고 있음을 설명 드렸다. 이 모든 부적절한 행위가 **이가 겪는 성장통임과 이를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교사와 학부모가 집단지성을 모아보자고 말씀드렸다.

---진행과정과 절차는 상세하게 안내---

앞으로 진행되어질 과정과 절차에 대해서 관련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때 전례를 예로 들며 조치결과를 예단하여 안내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어떤 조치가 나올지 불안해하는 학부모에게는 학교는 법원이 아니기에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만 아이가 성장통을 잘 극복하고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곳임을 인지시켜 드리는 것이 좋다. 교내봉사나 사회봉사, 특별교육에 대한 안내를 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아이에게 어떤 활동이 재발방지에 더 효과적일지를 해당 학부모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아이에 대해서는 부모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특별교육 하루 만에 뛰쳐나온 학생과 부모에게 특별교육 기관의 다양한 특성에 대해 안내한 후 함께 교육기관을 고르게 하여 특별교육이수를 돕고, 공개사과를 거부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스스로 역제안을 하도록 기회를 주니 생활지도부실에서 생활지도부장과 담임, 피해학생의 절친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사과를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피해학생의 교실에서 전체 학생들 앞에서 공개사과를 함으로써 학폭사안을 모르던 학생에게까지 자식의 부끄러운 행위가 밝혀지는 것이 싫은 그 마음을 읽어주고 수용해주자. 해결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마무리는 관심과 지지로---

학폭사안으로 전학조치를 받고 재심 끝에 전학을 간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이가 새 학교에서 잘 적응은 하고 있는지 친구는 사귀었는지, 새 담임은 어떤지를 물었다.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주십사, 꼭 돕겠다고 말했다. 전학 간 학교에서 담임이 색안경을 끼고 아이를 대하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학부모에게는 편지를 써서 해당 학교 선생님께 전달해 주십사 청하였다. 아이의 이전 학교생활 및 가정상황에 대한 정보와 함께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아이의 장점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었다. 내용을 읽어보신 부모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장점사례를 말씀하시며 이 내용도 적어달라고 요청하신다. 이것이 부모의 자식사랑 마음이다. “아이쿠, 00이가 그런 기특한 짓을 했단 말이죠. 맞아요.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지요. 00이는 틀림없이 잘 성장해서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인재가 될거예요.” 교직 10년차 때에 담임을 맡아 처음 반 아이들을 만나러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유독 눈에 띄는 여학생이 있었다.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있던 그 아이는 늘 거울과 화장품을 손에 들고 쉬는 시간엔 화장을, 수업시간엔 잠을 청했다. 학급소풍을 간 날이었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그 아이의 신발을 가리키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난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와~~ 패션감각 죽이는데! 그런 신발을 어디서 구했어?” 그리고 며칠 후엔 큰 소리로 얘기했다. “너, 글 참 잘 쓰더라. 커서 훌륭한 작가가 되겠어.” 물론 그 아이는 작가가 되지 않았다. 몇 년 후, 청첩장과 함께 보내온 그 아이의 편지 속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샘은 학창시절 제게 칭찬을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저 요즘도 방송에 글을 써 보내요. 선물도 많이 받았죠. 그 선물로 신혼살림 차릴거예요.’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깨알 같은 허물 속에서도 별 것 아닐 수 있는 칭찬 한마디가 행복을 만들어 낸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