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교육이 만만한가?
[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교육이 만만한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2.09.12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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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역대 대통령 중에 ‘교육 대통령’을 자처한 분은 드물다. 워낙 현안이 많은지라 관심 가질 겨를도 적었고, 교육계 출신도 없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군사정부 시절 박정희는 평준화 정책을, 전두환은 본고사 폐지와 과외금지를 전격 단행했다. 교육정책을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였다.

가장 적은 노력을 들여 국민에게 생색낼 수 있는 방편으로 교육을 이용한 것이다.

김영삼 5·31 개혁 전문가에게 맡겨

역대 대통령 중 그나마 교육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분은 문민정부 이후 두 분이 생각난다. 김영삼과 노무현 대통령이다.

김영삼은 뼛속까지 정치인이지만 교육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교육개혁을 위해 우수한 인재를 등용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이 되고 있는 5·31 교육개혁안을 탄생시켰다.

1995년 김영삼 정부시절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5·31 교육개혁안은 성적 위주의 교육 탈피가 정책 방향의 근간이다.

지성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자는 나침반을 설정하고, 교과 이외의 다양한 활동과 봉사활동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학교종합생활기록부의 시발이었다. 김영삼은 개혁 디자인을 전문가에게 맡겼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입장을 취했다.

노무현, 대학 총장엔 깍듯이 예우

상고 출신의 노무현은 의외로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임기 내내 3불 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과 대입 내신 확대를 강요했다. 논란의 3불 정책은 그 후 정착되는 계기는 됐다.

고등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노무현은 대학 총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소속 총장들이 청와대를 방문할 때는 일일이 문 앞까지 나가 악수를 하며 영접했다.

총장들이 다 모이면 등장하는 다른 대통령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었다. 그런 노무현은 임기 말에 대학의 반발을 뒤로하고 논란의 로스쿨도 밀어붙였다.

두 분의 공과를 떠나 교육에 대한 관심만 얘기한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정글 속에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다.

문뜩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가 생각난다. “혼자 아무리 달려도 주변 세계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마나 현재 위치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 그리고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뒷걸음 교육…‘붉은 여왕’ 교훈 되새겨야

그런데 우리 교육은 죽을힘을 다해 뛰기는커녕 뒷걸음질이다. 교육계에는 현자가 없고, 리더가 없고, 쓴말 하는 선비가 없다.

“제 잘 났다”며 자리사냥이나 하는 졸자(拙者)’만 득실하니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넉 달이 지났는데도 교육 거버넌스가 엉망이다. 교육부는 장관이 없는 데다 타 부처 출신이 차관과 차관보를 차지해 인사가 엉망진창이다.

교육부 공무원 사기(士氣)는 땅속으로 숨어버렸다. 교육부를 없애려면 군사작전 하듯 없앨 것이지, 이렇게까지 만신창이를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행여 윤석열 대통령이 사적인 문제가 잉태한 섭섭함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교육을 망치는 일이다. 물론 주변 참모들이 더 문제이지만….

곧 출범한다는 국가교육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국가교육위의 필요성과 당위성 여부를 떠나 어차피 법적 출범이 현실이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추석 전 발표한 국가교육위 상임위원 두 명의 면면이 모든 걸 웅변한다. 야당은 교육계가 절레절레 하는 ‘교육 싸움꾼’을, 여당은 교육계가 모르는 ‘폴리페서’를 영입했다. 여야의 인식이 이 모양이다.

게다가 현 정부의 ‘교육 의지’가 옅은 것은 이미 검증됐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국가교육위가 구성된다면 국민의 공감대도, 학계의 지지도, 학부모의 지지도 받기 힘들다.

교육 거버넌스 붕괴, 소는 누가 키우나

‘붉은 여왕의 법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간다. 디지털 인재 양성, 유보통합, 초·중·고생 기초학력 신장,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맞춤교육, 교육과정 개편, 고등교육 재구조화, 교육재정 교부금 리모델링, 교원양성체제 개편, 대입 개편,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려면 지금보다 서너 배는 더 뛰어야 한다.

그런데 교육을 정글의 ‘늪’에 방치하더니 그나마 ‘늪’의 리더조차 넉 달째 사실상 비어두고 있다. ‘교육 생명’이 그렇게 보잘 것 없나? 여기서 정말 궁금증이 생긴다.

초·중·고에 정보교사가 태부족한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AI를 가르칠 것이며, 코스웨어(course ware)가 없는데 어떻게 맞춤교육을 할 것이며, 한가위 연휴를 낀 요식적이고 부실한 교육과정 의견수렴으로 어떻게 10년 지계를 세울 것인가. 

반도체 정원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면서 어떻게 고등교육을 재구조화 할 것이며, 교육감의 몽니에 휘둘리면서 어떻게 교육재정을 리모델링할 것인가.

또 교대와 사대 통합은 건드리지도 못 하면서 어떻게 교원양성체제를 개편할 것이며, 학생이 대학을 골라가는 ‘학생 절벽’ 시대에 어떻게 입시를 디자인 할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교육 홀대론 대한민국 미래 없어

교육을 홀대하거나 얕잡아 봐서는 결코 미래가 없다. 교육부가 아무리 밉더라도 일단 일할 생태계는 만들어줘야 한다. 우선순위에서 교육에 관심이 적은 정부라도 글로벌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득권을 붕괴시키는 교육개혁은 정말 좋은 목표 설정이다.

그렇지만 교육 기득권을 참(斬)하겠다는 명분으로 정글 속에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건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참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정글 속에 방치한 교육의 생존권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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