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정서적 수저'가 더 중요하다
[교육칼럼] '정서적 수저'가 더 중요하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7.02.20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조벽 전 미시간 공대 교수

지난 30년간 교수 생활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금수저’와 ‘흙수저’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많은 혜택을 받고, 앞으로도 특별한 기회가 활짝 열려 있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아주 어려운 형편에 놓여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하며 경제적으로 허덕이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탄탄대로에서 자가용 타고 출발하는 금수저와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종종걸음 하는 흙수저가 공존하는 현실이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빈부 격차를 사람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음이 씁쓸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빈곤에 화가 나고,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경악스럽습니다. 이제 수저의 색깔마저 불변의 법칙에 해당되나요.

그러나 의문이 드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상담사로 일하면서 우울하고 불안하고 죽고 싶다고 토로하는 성인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 중에는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명문대 출신 검사도 있고, 의사와 결혼한 의사 집안 딸도 있고, 재력가 딸로 자란 해외유학파 여교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계속해서 금수저로 살아갈 수 있는 재력과 명예가 있지만 괴로워하고 힘겨워합니다. 부모를 원망하고, 배우자를 증오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합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이 아쉬운 걸까요?

저는 사람의 미래를 좌우하는 수저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매사 불만스럽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것이 없고, 모든 게 다 남 탓이라고 여기고, 만사가 다 짜증스럽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정서적으로 빈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들은 흔히 부모의 소유물처럼 살아오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돈만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원초적 불안감과 불신감 때문에 성숙한 자아정체성이 형성되지 않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절망적이고 진흙탕 같은 암울한 인간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정서적 흙수저’라고 부릅니다.

이와 반대로 비록 흙수저로 내어났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외적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 인생대본을 지녔습니다. 이들은 주로 화목한 관계 속에서 정서적 양육을 듬뿍 받은 사람들입니다. 통장이 두둑하면 여유가 생기듯이 정서적 통장이 가득 채워져 있는 사람은 느긋합니다. 그래서 현재 사정이 어렵더라도 희망찬 금빛 비전을 선택할 줄 아는 ‘정서적 금수저’입니다.

행복은 정서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좌우하는 건 정서적 수저의 색깔입니다. 정서적 수저의 색깔은 살아온 경험에 좌우됩니다. 차곡차곡 쌓인 기억이 상(想)과 념(念)이 되어 머리와 마음(心)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상념이란 내적 자극은 외적 자극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입니다. 정서적 수저의 색깔은 영원불면이 아니라 오늘부터 당장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렸다지요. 마치 매일 먹는 음식이 내 몸 모양과 상태를 만들 듯이 내가 오늘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나의 정서와 시각이 달라집니다.

마음먹기에 필요한 수저는 따로 있습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오늘 알아차린 나의 감정 하나 적고, 나한테 일어난 좋은 일 하나 적고, 다행인 것 하나 적고, 감사한 것 하나 적고, 자신의 장점 하나 찾아 적어보세요. 하루 2~3분이면 됩니다. 하루 이틀 한다고 달라지지 않지만 백 일 동안 꾸준히 해보세요. 마치 첫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열심히 수저질을 하다 보면 어느덧 정서적 수저의 색깔이 바뀌어져 있을 것입니다.

수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정책도 바뀌고 경제도 발전하고 사회도 혁신되어야 하지만, 그런 날이 오길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나는 정서적 금수저가 되리라 마음을 먹습니다.                                                       <이글은 한국장학리뷰 2월호에 실린것입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