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평- 정온] 퍼주기 교육예산 .. "교사는 괴롭다"
[교육시평- 정온] 퍼주기 교육예산 .. "교사는 괴롭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10.15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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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 온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위원장
정온 전국초등교사노조위원장
정온 전국초등교사노조위원장

[에듀프레스]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기초학력 예산’이 이슈다. 교육부에서 2021년 제5차 국가시책사업 특별교부금이 내려왔고, 이를 위해 교육 회복 지원 사업을 각 시도교육청에서 벌이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학생 개별지도 수당 지급, 도서 구매 등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등교 일수가 줄어들며 생긴 학습결손 회복을 위한 사업은 꼭 필요하다.

현장에서도 이미 하고 있던 학생 개별지도에 수당을 받는다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예산의 규모에 비해 운영이 효율적이지 않아 꼭 필요한 학생에게 전달되기보다는 행정적으로 낭비되고 있는 예도 있다.

◆“3~4개월 안에 학습격차 해소하라” 황당 주문

먼저, 수요 측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미 학년 초 각 학교 별 계획에 따라 기초학력을 측정, 학습부진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학력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올해 등교 과정에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담임교사가 관찰과 상담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과정이 예산 배정 전에 선행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예산을 산출했을까? 교육부의 「교육회복 종합방안」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2년까지 초중고 학생의 1/3이 넘는 203만 명 학생들에게, 교과 보충 특별프로그램 ’학습도움닫기‘ 운영 및 수강료 전액 지원”이라고 한다.

즉,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아니라 그냥 전체의 1/3 이상을 대상으로 잡았다는 뜻이다. 이는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1수준(기초학력 미달) 추정 학생 수 대비 3~6배 해당”한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둘째로, 예산 교부 시기가 학교 행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학교는 학교 교육과정에 의해 운영된다. 학교 교육과정은 보통 학년도 단위, 적어도 학기 단위로 계획한다. 그런데 교육 회복 예산은 9~10월 사이에 내려왔다. 예산은 일반적으로 12월까지 써야 하고, 보통 방학도 12월 말이나 1월 초쯤 한다. 교육은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기 대단히 어려운 영역이다.

보충학습은 더욱 그렇다. 교육부 블로그에 따르면 학습 부진은 “일반학급에서 다루어지는 교육 내용을 느리고, 쉽게 재구성하여 보충 교육을 제공하면 학습이 점차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정작 현장에 예산을 교부하고 이를 통해 3~4개월 내로 학습격차를 해결하라는 과제를 던진 셈이다.

◆ 주먹구구 예산편성 .. 중복투자도 다반사

셋째, 예산 중복이 심각하다. 많은 시도교육청에서 학생 개별지도 수당을 지급하거나 도서 구매 비용으로 쓰라고 한다. 그런데 온 책 읽기(한 학기 한 권 책 읽기, 한 작품을 완전하게 읽는 활동) 도입으로 도서 구매 예산은 이미 많이 책정되어있었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으로 제보된 내용에 의하면, 충남은 학교급과 상관없이 도서 구매비 1,000만 원이 교부되었다고 한다. 충남 A 초등학교는 6학급에 전교생 60명인 작은 학교로, 책을 사서 둘 곳도 없는 학교에 도서 구매비가 너무 많이 내려와 처치 곤란이라고 한다.

A 초등학교에는 학교 자체 예산으로 책 구매비 480만 원, 운영비 120만 원, 독서동아리 활동비 100만 원으로 총 700만 원 예산이 있는데 추가로 1,000만 원을 더 써야 한다.

부산 B 초등학교는 각 학급에 80만 원씩 학습 부진 학생 지도비가 내려왔고, 경기도 C 초등학교는 기존 ‘온배움튜터’ 기초학력 사업도 수요가 없는데 3,000만 원을 또 써야 한다고 한다.

넷째, 학교장 의사에 따라 예산편성 의도와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문제다. 경기도 D 초등학교는 11학급 대상으로 기초학력 예산 1천 205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그런데 학교장이 “담임이 자기 반 학생 가르치는 건 수당을 줄 수 없다”며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강사를 채용해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을 지시했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원래 취지가 교사가 학생을 추가 지도하는 것이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담당교사는 담임교사, 교과교사 등으로 구성(외부강사 포함)이라고 공문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의 허가 없이는 담임교사가 방과 후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없다.

D 초등학교는 위치상 강사를 구하기도 어려워, 교장의 의사에 따르면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 반납해야 한다. 1천 200만원이 넘는 예산을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하는데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

◆ 마른 땅에 홍수난 꼴 .. 쓰자니 죄스럽고 안 쓰자니 불안하고

마지막으로 반납한다면 내년 예산은 어떻게 될지 불명확하다. 기초학력 지원예산은 꼭 필요하다. 학습 부진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교구는 비싸고, 때로는 전문 인력 고용이 필요한 일도 있다. 올해처럼 느닷없이 3~4개월 만에 쓰라고 오는 것만 아니면 예산은 많을수록 좋다.

9월 말, 혹은 10월 초에 공문이 온 만큼 사실 상 학생 수요조사하고 학부모 동의받는 등의 절차를 거치면 실제로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은 2~3개월 정도다. 학교는 진퇴양난이다.

당장 예산을 다 쓰자니 낭비고, 돌려보내자니 내년에 예산 부족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차라리 내년에 반납 여부와 관련 없이 비슷한 예산을 또 주겠다고 하면 필요한 만큼만 쓰고 반납할 텐데, 보통 예산을 반납하면 다음 해에 예산이 깎인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교사들은 불안하다. 올해와 같은 예산 교부는 교사들에게 예산을 쓰면 낭비인 것 같아 죄책감을 주고, 쓰지 않으면서도 불안감을 준다.

교육예산은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다. 학생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써야 한다. 단순히 예산을 많이 내준다고 해서 효율적으로 운영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마른 땅에 폭우가 오면 홍수가 나듯, 교육예산도 잘못된 시기에 너무 많이 오면 낭비될 뿐이다. 교육 당국은 학교의 운영 특성을 잘 살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예산 운용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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