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의 敎育樂書] '진로와 인문학
[원시인의 敎育樂書] '진로와 인문학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10.09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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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호현 서울 배화여중 교사/ 시인
신호현 서울배화여중 교사/ 시인
신호현 서울배화여중 교사/ 시인

[에듀프레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쳐보라. '짝!'소리와 함께 아주 쉽게 손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두 손을 뒤로 해서 손바닥을 쳐보라. 좀처럼 손을 부딪치기 힘들 것이다. 학생들은 소리가 잘 나겠지만 세월을 살아낼수록 소리내기가 어렵다. 마음은 앞서가는데 몸이 굳어지기 때문이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 박수를 끝내면 손이 마주해 있는데 이런 상태가 지금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데 중3이 되면 인생에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고등학교 입시다.

인생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디 있겠냐마는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입시의 선택은 정말로 중요한 선택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특기생으로 예체능을 해온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막막하다.

어디 학생들만 막막하겠는가. 학부모들 역시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모르는데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돌이킴은 거의 없고 잘못 선택하면 아이의 인생을 그르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1 자유학년제는 학생들이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먼저 1년 동안 다양한 직업체험을 통해 자신의 꿈과 끼를 발견하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교육과정이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야 그 목표를 향해 공부를 할 수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학부모들은 단지 1년만에 없던 꿈이 생기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공부를 하면서 꿈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학원으로 내몰고 학교 성적 향상을 위해 공부하라고 다그치다 학생의 성적이 다른 아이보다 못하면 그제서야 성적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고 진로를 결정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명제 앞에서 누구나 그 해답을 향해 노력하지만 두 손을 모은 상태가 현재 중1 학생들이 놓인 위치다. 왼손은 '자연과학'이라 하면 오른손은 '인문학'이다. 자연과학은 '사실'을 중시하고 오른손은 '이상'을 중시하는 학문이다.

사실과 이상을 중시하는 경향은 미술사나 문학사에서도 나타난다. 사실을 중시하는 경향과 이상을 중시하는 경향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지는 요소이다. 이것을 다르게 보면 좌뇌가 발달한 사람과 우뇌가 발달한 사람으로 나누는 현상과 비슷하다.

저기 밖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라. 저 나무가 바람에 좌로 세 번, 우로 세 번 15 ̊̊̊̊ 각도로 동서풍의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있는지, 아니면 나무가 춤을 추고 있는지 말해보라. 분명 같은 상황임에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을 중시하는 자연과학자들은 '나무가 춤을 추고 있다.'는 말에 무슨 '뻥'을 치고 있냐고 할 것이고, '이상'을 중시하는 인문학자들은 '좌로 세 번, 우로 세 번 15 ̊̊̊̊각도'라는 말에 질려버릴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서양에서 사실을 중시하는 '고전주의'가 나오고, 이상을 중시하는 '낭만주의'가 나왔던 것이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고, 국어나 영어를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좌뇌가 발달한 사람은 수리 공간 감각이 발달하여 분석적, 비판적, 경직된 사고 패턴을 가지고, 우뇌가 발달한 사람은 언어 예술적 감각이 발달하여 말을 잘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개 남자는 좌뇌가 발달하고 여자는 우뇌가 발달했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 것이다. 물론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 그리 열을 내어 반론을 제기할 일은 아니다.

'이상'을 중시하는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다섯 개 있는데 인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비유, 상징, 반어, 역설, 풍자'의 다섯 가지이다. 나무가 춤을 추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미 어떤 현상을 인간의 동작에 '비유'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학, 예술, 역사, 철학, 신학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을 중시하는 왼손에도 손가락이 다섯 개 있으니 주장과 근거를 통해 사실을 입증하는 학문으로 근거를 드는 다섯 가지 비결이 있다. 수학,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공학, 의학, 건축, 천문, 환경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을 중시하는 인문학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으며, '사실'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은 '부'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도 자녀가 부모님께 "엄마! 저 컴퓨터공학을 공부할래요."라고 말하면 부모님들은 속으로 '에구! 밥은 먹고 살겠구먼!'이라고 했으며, "엄마! 저 철학을 공부할래요, 문학을 공부할래요."라고 말하면 부모님들은 속으로 '에구! 밥은 먹고 살겠나.'라고 생각했다. 이 둘은 완전히 동떨어진 학문은 아니다. 오히려 동떨어질수록 여러 문제가 생기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융합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뻥튀기 아저씨가 옥수수로 뻥을 튀기면, 자연과학자들은 '옥수수 알갱이 5,000원 어치로 뻥을 튀겨 30,000원 어치 만들었으니 팔면 25,000원이 남는다.'고 생각할 것이고, 인문학자들은 '옥수수 그 작은 알갱이가 저기 귀신같이 생긴 틀에 돌려지면 뜨거운 열시와 압력으로 열배로 커지니 키 작은 나도 저 속에 들어가서 열배로 커지면 나를 때린 놈을 때려줘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옥수수를 팔아 부자가 되는데 인문학자들은 상상 속해서 행복해 하다가 기계 옆에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 주워 먹다가 쫓겨나거나 그 이야기가 진짜 뻥처럼 대박 나서 더 큰 성공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게 중1에서 같이 박수로 만나 같이 출발하지만 학생 개개인이 가진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소양에 따라 인생을 선택하게 되고 각자 성공의 길로 가게 된다. 세월이 흘러 자연과학자들은 성공해서 부자가 되면 가난한 인문학자나 예술가들을 불러 공연을 열거나 그림을 사주면서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그것은 자연과학이 인문학을 만나야 행복하고 인문학은 자연과학을 만나야 부자가 되는 것이다. 다만 손을 앞으로 해서 박수를 잘 치는데 손을 뒤로 해서는 박수가 잘 안 쳐진다. 인생은 바로 그것이 문제다.

그러면 진로는 인문학일까, 자연과학일까. 누구나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에 성공을 꿈꾼다면 지금 중학생의 '사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뻥튀기 틀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의 모습, 즉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 필자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훌륭한 성공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확인했다. 학생들은 지금 그대로의 학생들이 아니기에 진로는 한 겨울 뻥튀기 아저씨의 '뻥이요!' 함성처럼 신나고 기대되는 인문학이다.

(글-신호현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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