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킬러 문항’을 킬하라
[양영유의 교육오디세이] ‘킬러 문항’을 킬하라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10.03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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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본지 발행인/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본지발행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본지발행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언제부터인지 정확치는 않다. 갑자기 ‘킬러 문항’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교육기자로서 매년 수능을 취재하면서 ‘불수능’ ‘물수능’이라는 용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터였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할 수 없이 “올해 수능 ‘불수능’, 국어·영어 어려웠다”와 같은 기사를 쓰곤 했다.

그런데 특정 문항이 아주 어려운 ‘고난도’라는 의미의 ‘킬러 문항’이란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기사에는 그런 말을 쓰지 않고 “가장 어려웠던 문항” 또는 “최고 난도의 문항”등으로 표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킬러 문항이 일반 용어처럼 사용된 것이다.

입시 학원에서는 “킬러 콘텐츠 필살기” “킬러 문항 총정리” “킬러 문제 여기가 급소”와 같은 현란한 학생 끌기 강좌가 등장했다. 애초에 학원이 킬러 콘텐츠라는 말을 상술용으로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어쨌든 학생들은 학원으로 몰렸다.

그러더니 어느새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부, 교육청 등 이른바 교육 당국이라고 불리는 행정기관에서도 “킬러 콘텐츠 문항 어쩌고~~”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정체불명의 킬러 문항은 매년 수능을 치를 때마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입시 학원 상술에 수능이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찔하다.

킬러 문항은 대입 수험생 몇 명을 위한 것일까? 수능 만점자 등 극소수를 위한 문제일까? 2016년이었다. 수능 만점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국어·영어·수학, 탐구 2과목, 베트남어 등 6과목을 만점을 받고 서울대에 정시로 합격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말을 들었다. 수학 30번 문제 하나를 푸는 데 한 시간을 매달렸다는 거다. 30문항 중 29문항을 40분 만에 다 풀고 30번 문제 하나를 60분 동안 풀었다는 얘기였다. 다음은 당시 만점자와의 인터뷰 내용.

“수학 29문제 40분, 킬러 한 문제 60분 걸렸다”

-수능 만점을 받을 거라 예상했나.

“예상하지 못했다. 모의고사보다 어렵다고 느꼈었다.”

-고난도 문제가 있었나.

“국어에도 있었고, 수학도 있었다. 그래서 만점을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수학의 어땠나.

“29번까지는 쉬웠는데 마지막 문제인 30번이 이제껏 본 문제 중 가장 어려웠다. 100분의 수학 시험 시간 중 한 시간을 그 문제에 매달렸다. 평소 어려운 문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쉬운 문제들은 의식적으로 빨리 푸는 연습을 했었다.”

-30번 문제 하나에 60분을 매달렸는데 답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풀기는 했는데 답이 222였다. 숫자가 이상했다. 불안했다. 그런데 다행히 정답이었다.”

-국어도 어려워 ‘멘붕’에 빠졌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헷갈리는 문제가 있어 긴장했다. 뭐, 이렇게 까지 문제를 꼬나 싶었다.”

수능 만점자의 얘기를 듣던 중 나는 수능 출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학 29개 문제를 40분 만에 풀 수 있게 낸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더욱이 고난도 문제, 특히 킬러 콘텐츠라는 문제 한두 개로 최상위권 변별력을 유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킬러 콘텐츠 한 문항을 맞히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하는 학생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뷰한 그 만점자 학생도 재수생이었다. 문제 하나를 더 맞히고 덜 맞히는 게 학생 간 실력에 어떤 차이가 있나. 당시 기사와 칼럼으로 지적했지만 킬러 문항은 킬 되지 않았다.

킬러 문항은 50만 들러리 세우는 출제위원의 방패막이

수능은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으로 구성된다. 국어의 경우 통상 출제 위원 30명, 검토 위원 20명으로 구성(*숫자는 해마다 다를 수 있음)되니 50명이 문제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출제위원도 검토위원도 풀기 어려운 꽈배기 문제를 학생들에게 풀라고 강요한다.

풀라는 게 아니라 풀지 말고 포기하라는 겁박이나 다름없다. 고교 교사도 혀를 내두르는 문제다. 그런 고교 교육과정 밖의 문제를 계속 내고 있었던 게 작금의 수능 흑역사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교육 당국은 “고교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학생은 누구나 풀 수 있는 문항을 출제했다”고 변명했다. 난이도 조절과 변별력을 동시에 갖추려다보니 해마다 무리수를 두면서도 그에 대한 개선책을 여태까지 세우지 않았다는 자백 아닌가. 급기야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까지 발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표 발의한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킬러 문항이 고교 교실을 기계적 문제풀이 중심 전근대적 공간에 머무르게 하는 장본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킬러 문항이 상위권 학생을 변별한다는 명분으로 묵인되어온 관행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킬러 문항이 ‘인재 감별기’ 아니다…입시 통제 그만하자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반대 측에선 “킬러 문항을 없애면 상위권 변별력을 유지하기 어렵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한다. 찬성 측에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선행학습을 줄여 사교육을 없애려면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한다”고 주장한다. 둘 다 일리 있다. 문제는 수능을 왜 시행하느냐에 있다.

학생들의 실력을 측정하기 위해서인가? 학생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인가? 킬러 문항의 의도는 후자임이 분명하다. 소위 상위권 학생 몇 명을 위해 50만 수능 응시생을 들러리 세우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킬러 문항은 사라져야 옳다고 본다. 상위권 1~2%를 추려내려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생존게임을 벌이게 해야지, 50만 수험생을 희생양으로 삼는 건 도덕적이지도 않다. 대학 입시 개편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대입 자율은 그래서 더더욱 절실한 것이다. 왜 대학 입시를 정부에서 통제하고, 사교육의 든든한 후원자인 냥 정권마다 꼬박꼬박 입시를 바꾸나.

입시는 이제 대학에 맡기면 될 일이다. 대학이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그 대학 간판을 떼어버리면 될 일이다. 학생을 채우지 못하는 좀비 대학은 그냥 망하게 놔두라. 인공호흡기를 대줄 이유가 없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연간 27만 명밖에 태어나지 않는 초저출산 시대에, 수능 킬러 문항이 ‘인재 감별기’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이제는 발상을 전환할 때가 되지 않았나. 킬러 문항을 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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