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톡] N잡러와 부캐의 시대,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들
[송은주의 사이다톡] N잡러와 부캐의 시대,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9.29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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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주 서울언주초 교사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본캐’, ‘부캐’라는 말이 유행이다. 본캐는 본캐릭터라는 뜻으로 원래 가지고 있는 직업, 주로 하는 일을 뜻한다. 부캐는 부캐릭터라는 뜻으로 부가적으로 하는 일을 말한다. 요즘 기사에는 의사나 변호사, 회사원이 소설을 쓴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의 부캐는 소설가다.

부캐와 N잡러는 맥락이 비슷하다. N잡러는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경우를 말한다. N개의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N잡러도 생계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하는 본캐가 있고, 그 외의 일들을 부캐로 하는 경우가 많다. 요리 유튜브를 하고 책을 낸 요리사라면 유튜버와 작가라는 일까지 파생되는 힘은 요리사라는 본캐에서 나온다.

이렇게 본캐와 부캐를 함께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가 뭘까.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SNS나 창작플랫폼이 다양해진 점, 전에는 ‘아마추어’라고 칭해졌을 개인의 생산성이 여러 도구 덕분에 질과 양에서 향상된 점, 공유 문화가 확산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인플루언서가 등장한 점 등 이유는 많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이유는 외부요인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런 환경을 이용하는 이들을 움직이는 ‘내부요인’이 무엇이냐이다. 그런 플랫폼이 생기는 이유는 누군가 사람들의 욕구를 일찍 파악하고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이미 태초에 사용자의 욕구와 동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들에게 어떤 욕구가 있었던 걸까?

본캐, 부캐는 2, 30대에만 해당하나 싶지만 그렇지 않다. 1952년생인 신기남 전 국회의원은 4선 의원을 지낸 변호사이고 2019년에 첫 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을 냈다. 신기남 소설가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나태주 시인은 1945년생으로 43년간 교직에 몸담고 2007년 교장으로서 정년퇴임을 했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가장으로서 노릇을 해야 하기에 버텼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고백한 바 있다.

N잡을 하는 사람들의 사례나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배경에는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결국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2020년 트로트 서바이벌에 출연해서 인기를 얻은 가수 신미래는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앨범도 냈지만 무명이었다. 정말 음악을 포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첫 번째 생존자를 가리는 무대에서 그의 무대를 본 선배 트로트 가수가 “하고 싶은 일은 결국 해야 해”라고 말하는 소리가 방송에 나왔다. 후배의 재능을 인정하고 결국 꿈을 놓지 않은 후배의 마음에 공감하는 말이었다.

위의 사례들은 사람이 인생을 살며 하는 일의 의미를 묻게 한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진로 교육의 책임은 아닌가. 생계를 위한 일, 자신이 즐거워서 하고 싶은 일, 자신의 재능이 있는 일이 일치할 수는 없는 걸까?

지금까지 사회 분위기는 “원래 그런 거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어. 진짜 하고 싶으면 취미로 해.”라고 말하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도 많은 학생이 이런 말을 들으며 10대를 보낸다. N잡러 시대라 너희가 어른이 될 때는 여러 가지 직업을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까지 선심 쓰듯 얹힌다. 선택의 책임은 아이들의 미래로 전가된다.

한 인간이 자기 삶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생계가 무난히 유지되어 생리적인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성취감과 미의 추구에서 오는 정신적인 풍요로움도 느껴야 하며, 집단의 구성원이나 일의 주체로서 정서적 연대감과 자신의 ‘쓸모’를 느껴야 한다. 이 측면들은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제로섬 관계가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학벌과 직업에 따라 소득과 심리적 빈부 격차가 큰 사회 환경도 문제이지만 진로 교육에 인간의 삶과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또 N잡러라는 말처럼 여러 가지를 하려면 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 시도하는 용기와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 처음의 계획이나 의도에 맞지 않을 때 회복하는 회복탄력성도 있어야 한다. 여러 개를 하다가 본캐를 ‘갈아타는’ 과감함과 추진력도 있어야 하고, 비생산적인 일은 정리하는 냉철함도 있어야 한다. 이 냉철함은 학생 개인의 기질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기준을 정해 선택하는 방법, 도움을 청하는 방법, 관계와 결과가 상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기술도 아이들은 배워야 한다. 회복탄력성을 배우기 위해서는 선택과 실패와 극복을 해본 사람들의 사례와 모델링을 넘어 자신의 회복탄력성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훈련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한길을 걸음’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여러 가지를 같이 하면 본업에 소홀하다는 생각도 선입견일 수 있다. 단순히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목표와 변화 없이도 한길만 갈 수 있다. 한 가지 일에만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느냐만 따지지 말고, 그 길을 걷는 동안 어떤 성장을 이뤘느냐, 자신과 주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느냐를 묻는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감을 느끼고 마무리하는 개인의 도덕성도 단단해야 할 것이다. “기본에 충실한 마음으로 살았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은 오랜 세월 본캐와 부캐를 균형 있게 살아온 인생 선배의 말이다. ‘네 일을 선택한 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까지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것도 진로 교육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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