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해부학
[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해부학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9.27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양영유 본지 발행인/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본지 발행인/ 전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본지 발행인/ 전중앙일보 논설위원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와글대던 시절, 초·중·고 교실은 말 그대로 원시적이었다. 변변한 교육기재 하나 없이 덩그러니 교실에 걸려 있는 대형 칠판이 학생들의 교육과 미래를 책임졌다.

실내 공기는 탁했다. 학생들 체취, 먼지, 도시락 냄새가 겹쳤다. 요상한 공기가 교실을 지배했다. 학생들은 초·중·고 12년을 친구 뒤통수만 보고 공부해야 했다.

일렬로 쭉 배열된 교실의 책걸상 배치는 키가 작은 맨 앞줄 학생을 제외하면 늘 앞에 앉은 친구 뒤통수를 보는 구조였다. 그런 교실구조가 획일적, 암기식 대량 교육의 근인이었다.

그런 교실구조는 이젠 ‘유물’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아니, 늦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과 에듀테크를 이용한 디지털 교육이 가속화하면서, 일방적 대량 주입식이 아닌 개별교육, 학생 창의성 계발 교육이 새로운 교수법이 되고 있지 않은가.

교사들의 낡은 수업 방식은 더 이상 설 자리도, 획일적인 교실 공간 배치는 더 이상 학생들의 끼를 살려줄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교사의 교수법과 교실 공간 구조의 대혁신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시의적절한 프로젝트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라는 세 단어의 조합이 근사하다. 기후변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에 학생들의 꿈을 키우는 미래학교… 말의 성찬이다.

그런데 학교 시설을 개ㆍ보수하는 일, 공간을 재배치하는 일에 영어와 한글을 혼용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가 적확한지 의문이 든다. 얼핏 보면 학교 디지털 정책 같기도 하고, 환경 관련 교육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세 단어의 의미부터 학부모는 헷갈리는 거다.

낡은 학교 증개축 사업을 명칭으로 과포장

명칭이 거창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한마디로 오래된 학교 시설을 증개축하는 학교 환경개선사업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7월 경기회복 국가 프로젝트인 ‘한국판 뉴딜’ 10대 대표 과제를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그린스마트스쿨’이다. 이 그린스마트스쿨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본체인 셈이다.

그린스마트스쿨은 ‘안전·쾌적한 녹색환경’, ‘온·오프 융합 학습공간 구현’, ‘전국 초중고 에너지 절감 시설 설치 및 디지털 교육환경 조성’이 핵심이다.

교육부는 올 2월 18조 5000억원 규모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5년간 40년 이상 된 전국의 1400개 학교 2835개 동을 개축 또는 리모델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올 7월 1일에는 2021년도 대상 학교 484곳을 발표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취지도 좋고, 문제도 없어 보인다. 학교시설을 쾌적하게 만들고, 아이들이 토론식 수업을 하도록 교실 공간 구조를 바꾸고, 디지털 기자재를 확충하고, 친환경적 에너지를 활용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있나.

그러나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 고쳐 매지 말고, 오이 밭에서는 신발 끈 매지 말라(瓜田不納履)고 했던가. 정권 말기에 밀어붙이기식 속도전은 여러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오해와 불신을 낳고 있다. 그 이유를 6가지 질문으로 물어본다.

⓵정권·교육감 치적 쌓기 오해 산다=사실 ‘한국판 뉴딜’과 학교 환경 개선사업이 무슨 상관이 있나. 견강부회(牽强附會) 아닌가. 그냥 ‘21세기형 학교 개선사업’이라고 단순화하면 될 일인데 과대 포장했다. 정권 말기의 치적, 내년 6월 1일 교육감 선거를 앞둔 교육감들의 치적 쌓기가 교묘히 겹쳐 부풀려졌고, 포장을 벗기자 내용물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 혁신’ ‘환경 혁신’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면서 학부모들은 진보 교육감들의 ‘혁신 학교’ 확산 엄호용이 아니냐며 거부감을 보이고있다. 교육 당국의 소통 부족이 빚어낸 불신 아닌가.

⓶선정 방식이 불도저식이다=전국 초·중·고교 중 30년 넘은 건물은 전체의 40%에 달한다(국감 자료). 전국 초·중·고교 건물 6만857동의 39.4%인 2만3985동이다. 40년이 넘은 노후 건물은 전체의 20.6%인 1만2514동이다.

서울 학교는 전체 5879동의 절반 이상(53.1%)인 3122동이 30년이 넘어 전국에서 노후건물 비중이 가장 크다. 대부분 1980~1990년대 학령인구가 늘어나자 급히 지은 건물들이다. 교육부는 노후건물의 기준을 40년으로 잡았고, 교육청은 관내 학교를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개축 대상으로 선정한 93곳 중 학교운영위원회 의견 수렴을 거친 곳은 13곳에 불과하다. 대체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학교를 고르고 있는지 학부모들은 따진다. ‘선 선정-후 통보’ 같은 불도저식 행정이 과연 미래학교를 위한 것인가.

⓷학부모와의 소통은 했나=학교를 증·개축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최소한 공사기간이 3년은 걸린다니, 학교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 될 수밖에 없다. 공사기간 동안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게 뻔하다. 자칫 중·고교는 3년 내내 공사판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고, 초등학교도 입학하자마자, 또는 졸업 때까지 3년을 소음과 먼지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면 학부모들에게 먼저 설명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면밀히 세웠어야 했다. 그런데 교육청은 그런 절차를 외면했다. 가정통신문 하나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 소통을 무시했다. 행정 남용 아닌가.

⓸학생 학습권, 님비로만 봐야하나=교육 당국은 학부모들의 반발을 ‘님비’로 몰아간다.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안 된다”는 이기주의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부 장관의 자녀, 교육감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라도 선뜻 동의하겠는가.

교육부 장관은 자식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위장전입을 하고, 교육감은 자식을 외고 보내놓고 자사고 폐지에 앞장섰는데, 과연 모듈러(이동형) 교실을 받아들이겠나. 학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할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남의 자식도 잘 가르쳐야 하는 자리 아닌가.

⓹학교가 돈 벌이 대상인가=전체 사업 예산이 18조 5000억원이다. 수많은 업체가 동원될 것이다. 건설사, 건축회사, 모듈러 교실 제작사, 디지털 업체,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 그린에너지 업체, 그리고 태양광 업체까지. 특히 학교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문제는 현 정권의 주류인 586 운동권 출신들의 태양광 사업 독점 문제까지 있었던 터라 의혹을 낳을 소지가 있다.

일부에서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이 특정 세력을 위한 마지막 이권잔치가 될 것이라는 불신이 나오는 연유다. 업체 선정과 집행,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자신 있는가.

⓺학교복합화 사후 대책이 뭔가=학교복합화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문화·복지시설을 융합해 학생과 주민이 공유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폐쇄적인 학교공간을 지역생활의 중심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지역공동체 형성에 핵심 역할을 수행토록 하자는 취지다. 바람직하다.

그동안 학교는 지역 사회와의 교류가 부족했다. 다만, 부작용도 대비해야 한다. 학교복합화를 추진하면 학생들이 범죄에 노출될 우려도 있고 안전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이용 시간대 조정 등 학생과 주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한다는 설명은 궁색하다. 대책을 세우기나 한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