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멋있는 중견교사가 되고 싶다
[교육칼럼] 멋있는 중견교사가 되고 싶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17.01.05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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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재열 경기 초지고 교사

중견 교사라는 말을 자주 쓴다. 어떤 단체나 사회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을 중견이라 하듯, 학교에서 제법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명시적인 지위가 없다. 실체도 없다. 그저 나이로 보아 지긋할 때 중견 교사라고 지칭한다.

중견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법 무게감이 실린다. 적어도 중견 교사는 젊은 교사보다 전문성이 뛰어나고, 그들보다 나은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업 등에서 보이는 전문성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배어 있어야 하고, 인품도 남다른 면이 있기를 바란다. 중견 교사는 젊은 교사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있어야 한다는 잣대를 두고 있다. 그야말로 실력과 멋이 함께 있으면 좋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런가. 멋은커녕 지탄의 대상이 될 때가 많다. 사람들이 모두 나이를 넘지 못하듯, 중견 교사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는 열정을 보이며 동료들과 선배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나이 앞에서는 무뎌졌다. 체력은 물론 인지적 능력까지 떨어져 배우고 가르치는데 집중하기 쉽지 않다.

나이는 참 위험한 구석이 있다. 간혹 자기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우산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힘든 일을 피하고, 오직 알량한 예우를 받기 위한 카드로 쓴다. 나이로 강요를 하고, 경력으로 밀어붙이려는 유혹을 느낀다. 자연히 논리보다는 고집을 부리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긴다. 나이를 앞세워 시시콜콜하게 훈수도 많이 한다.

이는 나이만 있다면 언제나 간섭해도 된다는 우월감이 낳은 결과다. 후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당사자가 필요한 경우에 겸손하게 실현되어야 한다. 일방적 조언보다는 그 조언을 비판하게 하고,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질문을 던지게 해야 한다. 함께 지적 사유를 통해 실천하고,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선배가 돼야 한다. 직무 연차 등의 외형적 나이보다 일에 대한 열정과 도전 여부를 보여주는 경력의 나이로 서야 한다.

나이를 핑계로 겨우 생존해 가는 방식은 너무 추하다. 그것은 잘 버텨도 굴욕적일 뿐이다. 이런 모습은 자신의 불행을 넘어, 한창 젊은 후배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교직에 회의를 느끼게 한다.

중견 교사들의 오랜 경력은 분명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교직 생활에 얻은 경험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견 교사는 멋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발전하지 않은 경력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오랜 경험에 나오는 가르침도 교육학에서 배우지 못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이란 것도 관행과 전통의 범주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새것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좆고, 변화를 안내하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간혹 중견 교사들의 여유와 능숙함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창의적인 사고가 없는 습관인지 경계해야 한다.

물론 교직 사회는 가르치는 삶 속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실천을 하는 뛰어난 중견 교사들이 많다. 교직 초임부터 퇴임까지 늘 연구에 매진하고, 제자를 키워내며 평생 존경받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경쟁하기보다 스스로 창조적 자아를 추구하며 의미를 찾는 삶을 걸어왔다.

문제는 그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직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크다고 본다. 어느 사회나 그런 것처럼 교직 사회도 승진 구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진을 하지 못한 중견 교사는 젊은 교사들과 관리자 사이에 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시행착오로 배운 훌륭한 교수법이 있어도 풀어놓지 못하고 최소한의 업무에만 충실히 살고 있다. 그들은 젊은 교사들과 교장, 교감 사이에서 교육 철학을 나눌 관계도 역할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무의미한 삶을 전개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런 여건에서도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교사의 운명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 꾸었던 꿈을 다시 키워야 한다. 한 개인이 진지하게 삶을 키워나갈 때 옆에서 도와주며 나도 성장한다는 일터는 그 차제가 행복이다. 나보다 훌륭한 제자를 키워낸다는 기쁨도 있다. 학생과 함께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고, 학습에 생산적인 도전을 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속된 말 같지만 세상은 공짜가 없다. 젊은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이 있듯이, 중견 교사도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이를 가장 쉽게 실천하는 방법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스스로 배움을 즐겨하며, 배우며 가르쳐야 한다. 이런 역동적인 삶이 학생들에게, 젊은 교사들의 마음속에 감동으로 남는다. 그리고 젊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젊어지는 것은 열린 생각을 품는 것이다. 드높은 이상을 품고, 끊임없이 희망을 자각해야 한다.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 비판적이고 철저한 성찰을 통해 삶과 교육을 가꾸어 가야 한다.

미래 학자들이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교육을 한다고 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없어진다는 전망이다. 진짜 그럴까. 오히려 따뜻하고 헌신적인 교사, 아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멋진 교사가 필요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 멋진 교사란 책에도 없다. 오랜 연수를 이수한 후에도 길러지지 않는다. 오직 자기 연찬을 통한 신념에 있다. 지식을 많이 아는 교사보다 가르치는 것을 존중하는 교사가 돼야 한다. 아이들의 눈부신 미래를 예견하는 교사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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