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교사와 학생 실력
[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교사와 학생 실력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9.22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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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본지 발행인/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본지 발행인/ 단국대 특임교수
양영유 본지 발행인/ 단국대 특임교수

언론사 기자 시절, 미국에 가족과 함께 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아이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인상이 푸근한 여성이었다.

외국인 학생의 학부모인 점을 배려한 듯 친절하고 살가웠다. 선생님에 대한 거리감이 싹 사라진듯했다. 놀라운 반전은 여름방학 중 일어났다. 아이들과 대형 쇼핑몰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는데 외국 여성이 딸 아이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가족들이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순간, 나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이 의류상가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선생님은 우리 가족을 보고 반가워 딸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이 여름방학에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니…. 그것도 놀랍지만, 상점에서 학생 가족을 보고 창피해 숨을 줄 알았는데 외려 더 반갑게 인사를 하다니….” 미국 교사들의 교육관으로만 생각하기엔 내 이해력이 부족했다.

그날의 해프닝은 미국 교사들의 임금체계가 발단의 원초적 원인이었다. 미국 교사들은 방학 중에는 급여를 받지 않아 상당수의 교사는 방학 중 다른 일도 한다는 것이다.

평상시 급여가 그리 높지도 않은 데다 1년에 서너 달은 아예 급여가 나오지 않으니 일부는 방학 중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부업을 하는 걸 창피해하거나 숨기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당당하게 일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오바마도 부러워한 한국 교사, 실제로는?

이 같은 미국 교사들의 임금시스템을 알게 되었는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는 교사들에게 의사만큼 봉급을 주고, 교육(교사)을 최고의 직업으로 여긴다.”(2015년 7월 15일, 오바마 오클라호마주 고교 방문 자리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한국 교사들이 의사만큼 봉급을 받지는 못하지만, 직업적으로는 임용고시 경쟁률이 보여주듯 최고의 인기 직업군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오바마가 교사인 여동생이 박봉에 시달리는 걸 측은해 하며 한국 교사의 봉급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연수 시절의 기억과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과장된 발언이 생각난 것은 최근 경제협력기구(OECD)가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0’ 내용을 보고 나서다. OECD 교육지표의 조사대상국은 회원국 38개국, 비회원국 8개국 등 46개국이다. 조사 기준 연도는 학생·교원(2019년~2020년), 재정(2018년), 등록금(2019년) 등 2018년부터 2020년까지다.

조사 결과 우리 교사의 급여는 초봉의 경우 OECD 평균보다 낮지만, 15년차가 되면 OECD보다 더 많이 받았다. 즉, 교사의 법정 연봉은 첫 부임한 해는 초등학교 3,178만원, 중학교 3,184만원, 고등학교 3,112만원이었다.

그런데 15년차 초등 교사의 법정 급여는 5,600만원(OECD 평균 4,632만원), 중학교 5,606만원, 고등학교 5,534만원으로 모두 OECD 평균보다 많았다. 다른 나라들은 교사가 계약직이거나 방학 중 급여를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호봉제를 적용하고 방학 중에도 급여가 나가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사들은 여전히 박봉이라고 힘들어하지만, 국제적으론 그리 섭섭한 대우는 아니라는 사실을 국제 비교 통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 실력 추락, 자성 없고 거버넌스는 ‘고장’

여기서 눈여겨 볼 또 한 가지 지표는 공교육비 투자 규모다. 초·중·고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는 3.5%로 OECD 평균 3.4%보다 높았다. 초·중·고의 공교육에 대한 정부 지출, 다시 말해 학생에 대한 장학금·가계지원금 등 민간 재원을 포함한 최종 재원은 GDP 대비 3.2%로 OECD 평균 3.1%보다 역시 높았다. 민간 재원 비율도 0.9%로 OECD 평균 0.4%의 두 배를 넘어섰다.

교사 처우와 공교육비 투자는 OECD 평균을 뛰어넘고 있는데 학생 실력은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열악했던 ‘콩나물 교실’ 시절보다 외려 더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역대 정부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살펴보자.

흔히 말하는 수포자 비율은 중 3의 경우 노무현 정부 중반기에 급증하더니 2008년엔 12.9%로 치솟았다. 이명박 정부 시기(2012년)에는 3.5%까지 떨어졌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정권 교체기인 2017년에는 9.9%로 다시 치솟더니 급기야 지난해에는 13.4%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이 같은 결과를 보고 교단에서 아무런 자성을 하지 않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교총이든 전교조든 무슨 입장을 내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조사에서 표집조사로 바꾼 것도 원인일 터지만, 교육감의 가치관, 교사들의 교육 열정, 그리고 공교육 투자 가성비에 문제가 있는지도 짚어볼 일이다.

존 듀이가 말했듯이 “어제 가르친 대로 오늘도 그대로 가르쳐서 아이들의 실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럼으로써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닌지” 되새겨 봐야 한다. 학생 수준은 절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 학생의 수준은 저 만치 가고 있는데 교사의 수준은 여전히 게걸음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장난 ‘교육 거버넌스’다. 공교육 투자비가 늘고 교실 환경은 좋아지고 있는데 학생 실력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거버넌스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 시그널이다. 2021년,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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