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보수 교육 쇄신 ‘꼰대’로는 안 된다
[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보수 교육 쇄신 ‘꼰대’로는 안 된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9.14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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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본지 발행인/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본지 발행인/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본지 발행인/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교육감 선거에 나섰던 한 교육자는 농부가 됐다. 30억원을 훌쩍 넘는 선거비를 썼지만 득표율이 11%밖에 안 돼 절반만 보전 받았다. 빚쟁이가 몰려왔다. 아파트 등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통장을 탈탈 털어도 빚을 갚을 수가 없었다.

빈 털털이로 고향으로 낙향했다. 컨테이너 안에서 부인과 살며 논과 밭 7000평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어릴 적 농사를 거들었다지만, 40평생을 교사, 교장, 교육공무원으로 지낸 사람이 감당하기는 녹록치 않았다.

고향의 인심과 정이 그를 버티게 했다. 흙에 묻혀 사는 사이 고희를 훌쩍 넘겼다. 대가는 혹독했다. 2014년 지방선거 때 교육감에 출마했던 김모씨 스토리다.

선거의 계절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여야 경선 후보 레이스가 한창이다. 이번 한가위를 기점으로 앞으로 몇 달간은 온 나라가 정치판이 될 것이고, 대선 이후 치러지는 6·1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정치바람도 그 어느 때보다도 거셀 것이다.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 지방의원과 함께 교육감도 동시에 뽑는다. 지방선거에 앞서 3월 대선 ‘빅 매치’가 열리니 정치적 돌풍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거셀 것이 분명하다. 정당 소속인 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와는 달리 교육감 정당도, 조직도 없는 교육감 후보들은 모든 선거를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교육감 선거는 늘 유권자의 관심에서 밀려났다. 당선자의 평균 득표율이 다른 지방선거 당선자보다 현저히 낮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공론장은 온데간데없고 늘 어른들의 이념싸움으로 변질됐다.

진보 진영이 치밀하게 단일 후보를 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과는 대조적으로 보수 진영은 “뭐 그리 잘난 체” 하는 인사가 많은지, 사분오열 돼 후보가 난립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은 조희연 교육감이 “제 잘났다”며 꼰대 고집을 부린 박선영·조영달 후보의 단일화 실패 덕분에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재선됐다.

내년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 또는 중도를 자처하는 꼰대 후보들이 등장할 조짐이다. 진보 진영은 조용히 유력 후보를 모색하며 단일 후보를 낼 태세인데, 반대 진영은 하마평에 오르기를 원하는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출마가 가문의 영광이라고 착각하거나, 권력욕에 제 분수를 모르거나, 진보 진영의 조력자가 되고 싶거나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진보교육을 비판하면서 실력은 키우지 않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 전국 17개 교육청 중 14곳을 내 주지 않았는가. 교육은 좌우 날개가 필요한데 균형의 추를 무너뜨린 장본인이 바로 진보가 아닌 보수인 것이다.

교육감선거 자문 원로회의, “꼰대 후보” 추천기구 아니길

그런 점에서 이돈희 전 교육부장관을 비록 각계 원로 19명이 최근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 추진을 위한 ‘교육감선거 자문 원로회의’ 출범을 선언한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들은 출범 선언문(13일)에서 “특정 단체의 이념을 대변하는 교육이 아닌 진정성 있는 미래교육과 헌법이 정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교육감 후보들에게 ‘하나의 우산’이 되도록 모두가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더불어 “특정 이념단체의 지원으로 당선된 교육감들이 이념논쟁에 매몰된 채 헌법이 정한 교육의 가치를 훼손하고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경험과 경륜을 살려 사회로부터 받은 책무와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견 일리 있는 주장이고 내년에는 더 흥미진진한 선거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그러나 참여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원로로 구성되어 있다. 인공지능 시대와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교실 등 밀려오는 격랑과는 거리가 먼 ‘아날로그’ 세대 인사들인 것이다.

물론 나이로 인물을 평가할 수는 없다. ‘젊은 디지털 원로’ 들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자칫 원로들이 추대한 보수 진영 교육감 후보는 “꼰대 후보”라는 오해를 살 우려는 상존한다.

진정으로 보수·중도 진영 후보 단일화를 위한 기구라면 세대를 넘나드는 인사를 참여시키고,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전직 장관, 전직 대학 총장 등의 원로가 중심이 된 기구가 과연 젊은 학부모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나.

교육을 다시 이분법으로 나누고 다시 진보 진영의 ‘꼰대 프레임’의 덫에 갇힐 우려가 있다. “나 살아 있다”며 이름을 알리려거나, “옛 시절이 그리워 못 참겠다”며 나선 건 아니기를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출마 후보자들의 실력과 철학과 소신이다. 그런데 여야 정치권에 줄 대기를 하고, 대선 후보 캠프에 몸담으며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이후 각 진영의 추대를 받으려는 출마 예상 후보자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실력과 철학과 소신을 발휘하기보다는 정치권에 편승해 ‘출마 무임승차권’을 얻어내려는 속내도 보인다.

그런 상황이라면 다시 분열과 반목이 거듭되고 보수는 필패한다. 그리고 이 글의 모두에 소개한 김모씨처럼 선거 낭인이 계속 양산될 수 있다. 교육감직은 교육을 사랑하는 자리이지 결코 권력을 탐하는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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