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레스] 우리는 한때 세계의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나라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쇄국정책으로 인해 강력한 과학기술과 군사력으로 무장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천추의 한이 되는 일본의 식민지배까지 받았다. 당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던 유교 국가 조선은 세계의 변방 국가로 과학·기술 문명에 무지하고 또 지도층의 무능으로 폐쇄국가로 살아왔다.
그 결과는 나라를 통째로 내주는 치욕을 겪었다. 한마디로 정보의 흐름에서 낙오된 국가는 반드시 뼈아픈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교육 또한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안타까움과 두려움으로 경계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100여 년 전 외국 문물의 수용 여부를 놓고 벌이던 논쟁이 지금 초·중·고의 정보 교육 부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기득권을 지키려고 미래를 희생시키는 소위 ‘21세기 위정척사파’들이 많아서 우려가 크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우리에게 망국의 설움과 피해, 상처를 안긴 일본은 발 빠르게 미국, 영국, 중국 등과 함께 미래 대응력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교육선진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초등학교에서의 정보 활용 과목 280시간을 포함하여 초·중등학교에서 총 405시간에 걸쳐 정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나아가 2025년부터는 대입 공통 과목에 정보를 포함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앞서 영국은 1999년부터 초·중등학교에서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현재 374시간을 필수로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은 2003년부터 시작하여 현재 대부분의 주(state)에서 컴퓨터 교육을 416시간씩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중국도 베이징 학생을 기준으로 212시간을 교육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결론적으로 고작 51시간을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실과 시간에 17시간을 배우고, 중학교에서는 정보 시간에 34시간이 필수로 되어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선택으로 되어 있고 대학 입시에도 반영되지 않아 결국 있으나 마나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렇게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지구인 메타버스(metaverse)의 탑승에 때를 놓치고 있으며 거북이가 토끼와 경쟁하듯이 겨우 체면을 유지할 뿐이다. 이로 인해 우리 후손들에게 주어질 부담과 미래 국가의 운명을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고 우려스럽다.
최근 KAIST 총장인 이광형 교수는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밝히길, 컴퓨터 게임을 잘하는 10대 청소년에게 ‘고향’이란 단어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 설명하고 “고향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놀랍게도 에란겔·사녹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 나오는 놀이터이다.
청소년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게임 속 놀이터가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놀랍고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고향을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완전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요즘 청소년들이 놀고 있는 사이버 세상이 그들에겐 한없이 정겹고 즐거운 기억 속의 고향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미래 세계의 주인공은 AI와 메타버스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이들은 인간이 협력해야 할 대상인 AI를 만들고 생활 공간인 메타버스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어린이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사상을 지배하게 되고 결국 인간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AI와 메타버스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문화적인 제품이다. 따라서 어린이에게 메타버스 고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나라만이 주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후손을 길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현재 교육부는 2025년부터 적용할 초·중등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있다. 이른바 2022 교육과정이 그것이다. 개편될 이 교육과정을 적용받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갈 시점인 2040~2050년이 되면 이때가 특이점(singularity) 시대가 될 것이다.
즉,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AI가 태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때가 되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위상에 변화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과 AI의 협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즉, 팀워크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수적인 과업은 AI를 이해하기 위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의 작동 원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서 앞서 밝힌 교육선진국들은 일찍이 저마다 정보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일진 데 우리는 또다시 조선 말기처럼 여기서 뒤처지면 치욕적인 역사의 반복이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등학교에서 정보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고등학교의 중견 정보 교사인 정○화 선생님의 생각을 덧붙여 함께 숙의해 보고자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정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공감하고 있으나, 실제 공교육 현장에서는 초등 실과 시간에 17시간, 중학교는 기본 이수 시간인 주당 1시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컴퓨터공학 분야 진학 수요가 늘고 있어 정보 과목을 개설하고 있으나, 일부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에 정보 과목을 배치하거나, 1,2학년 중 한 개 학년에만 1~2단위로 개설되다 보니 심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학교나 교사의 재량 등에 의해 교육 내용이 달라지고, 초·중학교에서 정보 교과를 학습하고 온 학생들과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처음 정보 과목을 접하는 학생들의 수준의 편차가 크다 보니 1~2단위로 편성된 작은 수업 단위 내에서 다양한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제 우리의 정보 교육은 과거 소프트웨어 교육이 강조될 때, ICT 활용 교육만을 강조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보 교육의 기초와 인공지능 원리교육을 융합한 문제해결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초·중·고·대학까지 이어지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 상황이나 교사의 재량에 의해 교육 내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읽기, 쓰기, 셈하기와 같은 보편적 기본 소양으로, 초·중·고에서 계열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제공되어야 한다. 내실 있는 정보 교육을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이 공교육을 통해 충분한 정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 초·중·고에 편제된 시간을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전 학년에 걸쳐 적어도 매주 1시간 이상, 연간 34~68시간의 교육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무분별한 상치 교육이 아닌 소프트웨어 및 인공지능 교육의 전문성을 갖춘 자격 있는 정보 교사 임용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제도적인 기반 위에 모든 교사들에게 인공지능에 대한 소양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융합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재인식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100여 년 전 세상의 변화에 눈감고 쇄국하던 악몽을 되풀이할 것인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신채호 선생은 강력히 주장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후손들이 특이점 시대에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초·중·고교의 정보 교육을 선진국 수준으로 반드시 강화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 초·중등·대학의 교과과정을 편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음을 부디 통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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