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평-이용원] 수능영어 무늬만 절대평가 .. 영어교육 퇴보 부른 무능한 정책
[교육시평-이용원] 수능영어 무늬만 절대평가 .. 영어교육 퇴보 부른 무능한 정책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9.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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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용원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국영어영문학회 대외협력위원, 전 한국응용언어학회ㆍ한국영어교육학회 부회장
이용원 서울대 영문과 교수/ 전 한국영어교육학회부회장
이용원 서울대 영문과 교수

[에듀프레스] 전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올 해의 마지막 대학수학능력고사(이하 “수능”) 모의 평가가 지난 9월 1일 시행되었다. 그 직후에 사회탐구 영역 시험지 유출 유혹이 있다며 조사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오고 교육부가 수사기관에 조사를 요청했다는 신문 기사도 떴다.

수능 영어 영역(이하 “수능 영어”)은 작년 물수능보다는 어렵고 지난 6월 모의고사와 비슷한 난이도였으며 이젠 EBS 교재 내용과도 간접 연계하는 문항 출제 방식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견 수능 영어의 이런 변화는 수능 영어 절대평가 체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지만, 사실은 수능 영어 절대평가 체제가 안고 있는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들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된다.

사실 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우리 교육당국이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국가영어시험이 좌초된 이후 급조해서 실행한 대안이다 보니, 실제로 절대 평가에 대해 제기되었던 여러 우려들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시행된 측면이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서둘러 만들어진 임기응변식의 대책을 정부가 연이어 내놓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위 영어 표준화시험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우리 국가 역량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 논란은 대단위 표준화 시험 관련 국가 역량 부실이 원인

오늘날 세계어로서 기능하고 있는 영어의 중요성이나 영어교육 및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기서 따로 강조하지 않겠다. 제대로 된 영어 절대평가를 하려면 먼저 이를 뒷받침해주는 전문적·기술적·교육적 토대가 국내에 먼저 튼튼하게 잘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새로운 평가 체제의 개발을 위한 충분한 연구개발 기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시범 시행을 통해 이들 시험 체제를 개선하고 안정화 시킴으로써 대단위 영어 표준화 시험과 관련한 충분한 시행 경험과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초중고에서 대입에 이르는 공교육 체제 안에서의 영어교육에는 수능 영어가, 대학교육과 그 이후의 평생교육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영어학습에는 토익, 토플, 텝스 같은 영어인증시험들이,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평가 체제의 운영과 관리과정에서는 대단위 표준화 시험이나 절대평가 체제가 요구하는 핵심적인 표준과 절차가 제대로 준수되거나 정착되고 있지 못한 듯 하다.

지금의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가와 개인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 영어격차(English divide)의 심화로 인한 빈부격차의 고착화, 국내 영어교육의 퇴보 및 토종 영어인증시험의 소멸로 인한 대단위 표준화 평가 역량의 부실화와 같은 암울한 결과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

무늬만 절대평가인 수능 영어 어떻게 완성해 나갈 것인가?

우선, 무늬만 절대평가 형식을 띠고 있는 현재의 수능 영어 절대평가 체제를 살펴보자. 절대 평가의 또 다른 이름인 준거참조평가를 수능 영어에 적용할 경우 그 핵심적 요소는 대학수학능력의 일부로 설정된 영어능력의 목표수준에 수험자가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준거를 정의하고 수립하는 일이다.

이런 준거는 피상적으로는 분할점수(cut scores)나 점수구간으로도 표현되기도 하는데, 분할 점수 수치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점수대의 수험자들이 영어를 사용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대학수학능력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의 영어 지식과 사용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또한 이러한 점수(대) 의미는 연도별로 혹은 시험 회차별로 변동이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도별ㆍ회차별로 시험 난이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이도 차이가 발생한 경우에는 이를 측정통계학적으로 보정해주어 응시 연도와 관계없이 동일한 점수는 동일한 의미를 갖도록 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매년 수능 영어 1등급 수험자 비율이 널뛰기를 한다던가 물수능 불수능 논란이 계속되는 것 자체가, 안정적인 점수의 해석의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고, 또 현재의 수능 영어 절대 평가가 이름만 절대 평가란 비판을 듣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비록 수능 영어를 위해 이러한 일련의 준거 설정과 점수 척도 안정화 작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점수 의미 해석의 안정적인 틀이 마련된다 할지라도, 현재의 수능 영어 절대 평가 체제가 그 이전 체제로부터 승계하여 계속 유지하고 있는 수능-EBS 교재 연계 정책이 새로이 마련된 점수 해석의 틀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영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능과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해야 할 수능 영어에 수험생들이 이미 EBS 교재에서 읽거나 들어 의미를 파악하고 있고 심지어는 암기하고 있는 지문을 재사용해서 문항을 출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평가 방식은 성취도 평가란 측면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대학에서 학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실질적 영어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서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아울러, 기존의 듣기와 읽기 문항에 더하여 말하기와 쓰기 평가 문항이 포함되지 않은 현재의 수능 영어는 온전한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볼 수 없다. 현재의 수능 영어를 제대로 된 절대평가로 완성해 나가기 위해선, 교육당국이 이런 근본적인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하나씩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이다.

영어인증시험 간 불공성 논란도 결국 국가 역량 부실이 원인

수능 영어 절대 평가를 통해서 확인된 대단위 영어 표준화 시험 운영과 관련한 국가 역량의 부실함은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토종 및 외국 영어인증시험들을 관리감독 하는 국가 체계에서도 또다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 인증시험들에 대한 국가관리 체계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첫번째 축이 국내에서 개발되어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자격인증시험을 활성화하고 그 공신력과 국제적 통용성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자격기본법과 이에 근거해서 운영되고 있는 정부의 민간자격 국가공인체제이다.

두번째 중요한 축으로는 공무원 공개채용 과정에서 국가가 인정하는 영어인증시험들의 목록과 이들 시험의 직급별 합격기준 점수를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임용시험령 체제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민간자격 국가공인체제는 본질적으로 국내개발 시험에만 적용되는 차별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시험들에는 국가공인 자격의 취득과 유지를 위해 공인ㆍ재공인 심사를 받고 정기적 실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외국 시험들은 이런 공인 체제의 통제권 밖에 있도록 용인하며 이런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관리감독 체제 밖에 있는 특정 외국 영어시험이 국내 공무원 임용 및 기업 입사 시험 시장을 좌지우지 하며 독과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누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물론 이런 외국 시험의 국내 시장 독점 현상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에 소재한 명성 있는 평가 기관에서 만들어 낸 시험이라는 높은 공신력과 뛰어난 품질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민간자격 국가공인체제가 의도했던 국내 개발 시험의 활성화나 통용성 확대와 같은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외국의 특정 영어인증시험이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영어권 국가에서 개발된 영어시험에 대한 정부의 맹목적 신뢰 때문이거나 이런 외국 시험이 대단위 표준화 시험의 규범과 절차를 엄정히 준수하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국가 관리감독 체제의 허술함 때문이라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 정부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내 시험과 외국 시험 간의 불공정한 점수환산표 때문이거나 공무원 채용이나 해외 파견자 선발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영어 합격기준 점수들이 국내 시험에 매우 불리하고 불공정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내외 영어인증시험 어떻게 공정하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

사실, 대단위 표준화 시험들 간의 점수 환산 관계라는 것이 섭씨-화씨 온도 변환처럼 한 번 설정하게 되면 고정불변하는 공식도 아니고, 환율처럼 매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최초의 환산 연구가 이루어진 시점 이후, 비교 되는 두 시험 모두에서 회차 간 동일한 수준의 난이도 유지, 난이도 차이의 통계적 보정 절차 실행, 그리고 수험자 모집단 특성의 안정적 유지 같은 대단위 표준화 시험의 기본 전제나 절차가 엄정하게 지켜지는 한도 내에서만, 애초 수립된 환산표는 유효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중도에 어느 한 시험이라도 개정 작업이나 다른 이유로 인해서 시험의 성격, 난이도, 척도 등에 현격한 변화가 오거나 수험자 모집단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 이들 두 시험들 간의 환산 연구는 다시 수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담당 부처나 감독 기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야 하고, 이를 인지했을 때는, 개정 전 후 시험 간에 내용적, 측정학적인 측면에서의 호환가능성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시행 기관에 요청해야 한다.

이들 개정 전후의 시험들을 동일한 시험으로 간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들 신구 시험 간에도 점수 환산표를 제작하여 제공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일정한 주기(5-10년)로 공무원 임용시험령에서 인정하는 여러 영어인증시험들 간 환산표의 유효성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는 연구가 수행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지원하며 그 결과를 새로운 환산표 및 합격 기준 점수에도 반영할 수 있는 공식적 체계와 절차를 확립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세계의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 우리 나라 상황에서 국내 토종 영어 시험이라고 정부의 특별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정부는 앞서 언급한 감독관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여 국내 토종 시험이 외국 영어시험과 공정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은 최소한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느 특정 외국 시험이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유가 지난 20여년간 몇 번의 시험 개정 과정을 거치면서도 슬그머니 시험의 난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어 엄청난 점수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고 합격기준 점수 달성이 용이해지도록 인위적으로 조정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 때문이라면, 이는 허용해서는 안되는 관행이다.

시험의 전면적인 개정이 있게 되어 시험의 성격, 난이도, 시험 점수의 의미에 현격한 변화가 있게 되면, 측정학적으로는 개정 이전과 이후의 시험은 마치 서로 다른 시험들처럼 간주해야 하고, 따라서 이들 간에도 점수 환산표를 만들어 수험자와 시험 점수 사용 기관에 제공하여 점수 해석의 분명한 틀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이루어져야만 다른 영어시험들과의 환산 관계도 공정하게 재조정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필수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점수 인플레이션을 방치해 점수 해석의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대단위 표준화 시험의 기본적 표준과 절차를 위배하는 것이기도 하고 도량형 사기와 같은 비윤리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영어인증시험들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내 토종 시험이건 외국 시험이건 간에 공평하게 대단위 표준화 시험의 절차를 성실히 준수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독려할 책임이 있으며 외국 영어시험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이고 철저한 점검과 관리감독을 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역량을 선진화하기 위한 능동적이고 범정부적 노력이 절실

중국, 일본, 대만 같은 다른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처럼, 우리 나라도 국내 토종 영어시험들이 외국 시험들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생태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영어 평가의 전문적 역량과 경험이 국내에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심화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길이기도 하고, 과도한 국부유출이나 외국 영어 시험에 의한 독과점의 폐해를 예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수능 영어를 제대로 된 절대평가로 완성시켜 나가기 위한 전문적ㆍ기술적 토대를 국내에 구축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최근 전세계적 한류 붐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다양한 한국어인증시험의 개발 및 안착과 계속적 성장을 뒷받침해줄 국내 역량 확보 측면에서도 선순환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언어 평가 자동화 기술들과 접목되면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평가 분야를 한 단계 더 진보 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영어 평가와 관련된 우리의 국가적 역량이 한 단계 선진화되고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교육부, 인사혁신처, 한국교육평가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 정부 내 관련 부처 및 기관 사이의 보다 긴밀한 협력과 범정부적 차원에서의 좀 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능동적인 대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아울러, 국회 교육위나 행안위 차원에서도 교육계나 관련 학계, 정부의 입장을 경청하는 동시에 평가전문가, 교사, 수험자, 학부모, 시험 시행 기관들의 의견도 함께 수렴하여 영어 평가 관련 국가적 역량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공론을 조성하고 입법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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