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포럼] 교육의 정치학, 정치의 교육학
[교육 포럼] 교육의 정치학, 정치의 교육학
  • 나성신 기자
  • 승인 2016.12.26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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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한국 교육정치학계에서 “교육에서 '비정치(非政治)의 신화(神話)'에 관한 고찰”을 진지하게 시작한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교육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및 학문적 논의가 상당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정치’ 및 ‘교육학과 정치학’의 교류와 협력은 미진하였다. 그리고 교육은 외부 및 내부 정치로부터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고, 정치는 교육 및 시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글에서는 ‘교육과 정치’ 및 ‘교육학과 정치학’이 위태롭게 된 원인을 살펴보고, 상호관계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상생의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정치로부터 고립된 교육 및 교육학

‘교육의 정치학’은 교육 분야에 대한 정치학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고, ‘정치의 교육학’은 정치 분야에 대한 교육학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정치학계에서 교육 분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는지, 그리고 교육학계에서 정치 분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토론해왔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학자들 중 일부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교육정치학회를 결성하여 교육정치에 대해 연구해왔다.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교육과 정치의 역동적인 과정과 의사결정자 및 주요 행위자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연구 및 토론 과정에 정치학자들을 깊이 참여시키고 정치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그 와중에 ‘경제 와 행정’ 및 ‘경제학과 행정학’은 ‘교육과 교육학’을 ‘정치와 정치학’으로부터 고립시켰고, 정치권력과 함께 교육에 대해 경제적ㆍ행정적 논리를 적용하려는 시도를 강화해왔다.

예를 들면, 교육재정을 일반 재정과 통합시키려하거나 교육재정을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에 사용하도록 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국가는 누리과정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대해 교육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특히 재정 지원의 근거가 되는 법률의 개정 없이 행정부가 관련 시행령 개정만을 통해 실시하여 법률적 논란을 야기하였다.

학교급식 무상지원에는 막대한 교육재정이 지출되고 있고, 대부분의 시ㆍ도에서는 특정 학교급이나 학년의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전체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상급식 지원정책에 대해 교육격차 해소 또는 학생 건강 증진이라는 교육적 목적이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고, 이는 무상급식 지원정책이 어떤 점에서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큰 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014년에 실시된 지방선거부터 교육위원회 제도가 폐지되었다. 또한 교육감 선출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서 경제 와 행정’ 및 ‘경제학과 행정학’은 교육행정을 일반 행정 분야와 통합시키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교육의 본질적인 사항에 대한 외부 및 내부 정치로부터의 압력이 깊숙이 가해지고 있으나, 그에 대한 교육 및 교육학계의 대응 수단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흔히 학생, 교원, 교육과정(교과서)을 교육의 가장 중요한 3요소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교육의 고유영역이며 본질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교육과정과 관련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학교장은 학교운영위원의 심의(사립은 자문)를 거쳐 검ㆍ인정 교과서를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법령에 따라 부여받았으나, 지난 2013년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로 교학사 교과서를 선정한 학교들은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심한 압력을 받았고, 상당수 학교들이 선정 결과를 번복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가운데 학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였거나 학운위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이 독단으로 선정한 경우에 대해서는 학교 내부의 문제제기 또는 법적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외부 단체나 정당, 국가권력 등이 학교에 압력을 행사하여 특정 교과서 선정 결과를 번복하도록 한 것은 교육의 자주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위태롭게 한 좋지 않은 선례이다.

교육에 대한 외부 정치의 부당한 압력이나 교육과정을 포함한 주요한 교육정책에 대해서조차 교원은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에 대한 정치교육과 정치체험도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학생 대상 정치교육과 참정권의 일부를 제외한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포괄적으로 금지한 것은 교육 내부에서 교육의 자주성 및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외부의 도전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통제된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과 시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정치 및 정치학

그동안 정치학은 주로 거대담론이나 서양의 사상사 및 인물사 중심의 연구 등에 관심을 가져왔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정치와 학교 정치교육, 시민교육, 지역 및 생활정치 등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지 않았다. 교육의 정치학에 대한 교육정치학계의 연구에도 별다른 관심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치 및 정치학이 학생과 교원, 시민에 대한 정치교육과 그들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관심 및 연구를 소홀히 한 결과, 학교 구성원들과 시민사회는 정치와 정치학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수능시험에서 ‘법과 정치’는 선택 비율이 낮고(사회과 9개 과목 중 7위), 중ㆍ고교 ‘사회’(약 11%)와 ‘법과 정치’(약 33%) 등 관련 과목에서 정치 영역의 반영 비중은 낮다. 대학의 정치외교학과는 지방대를 시작으로 학과 명칭에서 ‘정치’를 제외하기 시작하였고, 그 자리를 ‘국제관계’나 ‘국제’, 특정 ‘지역이나 국가’가 대신하였다. 정치학 전공 졸업생의 취업률이 낮아졌고, 그 결과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학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선적인 조정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정치 자체에 대한 시민사회와 교원 및 학생ㆍ학부모의 불신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커진 상태이다.

최근 정치학계는 정치가 교육과 시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현상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위기의식을 갖고 체계적으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10월에 열린 한국정치학회 추계학술대회 주제는 “정치학 연구와 교육의 실용성: 과제와 방향”이었고, 이 자리에서 ‘정치학의 위기’라고 불리는 현상의 원인과 현황을 진단하고, 학교 및 시민사회에서의 정치교육을 위한 방향과 과제 등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러나 정치학이 직면한 현안 해결을 위한 논의에 머물렀고, 정치로부터 고립된 교육의 문제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인 원인분석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였다.

교육과 정치의 위기 극복 방안

앞에서 설명한 교육의 고립과 정치에 대한 외면은 점차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정치의 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력이 요구된다. 2016년 총선 및 2017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교육과 정치’ 및 ‘교육학과 정치학’이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ㆍ중ㆍ고교 및 대학 교육과정에서 학생 대상 정치교육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고, 이에 관한 교육과정 및 교육평가 편성ㆍ운영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원의 정치적 자유 중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치 분야와 대학, 지역사회가 연계하여 시민대상 정치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ㆍ운영 및 교과서 선정 등에 자주성 및 정치적ㆍ종교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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