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노인 폭행과 담배 셔틀’과 ‘과잠남’
[전재학의 교단춘추] ‘노인 폭행과 담배 셔틀’과 ‘과잠남’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9.03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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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 세원고교감
전재학 인천 세원고교감

[에듀프레스] 우리 교육의 과도한 경쟁체제로 인한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번 그 대안으로 제시된 인성교육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에 우리 교육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그나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뒤에서 따라가던 인성교육의 결과는 매번 충격과 실망으로 참담하게 드러나는 상태에서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근본부터 되돌아보게 된다.

요즘 항간에선 ‘과잠남’이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내린 청년에게 마스크 쓸 것을 건의한 배달 노동자에게 막말과 폭언을 쏟아부은 청년 이야기 말이다. “못 배운 XX가”, “나이 X먹고”, “일찍 죽겠다. 배달하다 비 오는데 차에”, “그러니까 그 나이 X먹고 나서 배달이나 하지 XX XX야.”등등 충격적인 막말의 끝은 어딘지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막말의 끝판왕 같은 청년이 고려대 ‘과잠(학교 점퍼)를 입고 있어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그뿐이랴. 60대 노인에게 담배를 사 오라고 위협하며 폭행한 경기도의 4명의 고등학생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문제의 동영상을 보면 한 남학생이 60대 여성 노인에게 다가가 “담배 사줄 거야, 안 사줄 거야? 그것만 딱 말해”라고 말하며 위협한다. 심지어 들고 있던 꽃으로 노인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노인이 몇 살이냐고 묻자, 학생은 재차 노인의 머리를 때리며 “열일곱, 열일곱”이라고 말했다. 이를 보고 있던 다른 일행은 노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폭행을 말리기는커녕 옆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아버지뻘 되는 배달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롱하는 청년의 모습과 노인 여성을 폭행하며 위협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거북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아무리 고려대 학내 커뮤니티에서 반성해야 마땅한 큰 잘못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고 경기도 교육의 수장인 교육감이 나서 이런 참담함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을 다짐해도 그간 이런 청년들을 길러낸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여도 유구무언일 뿐이며 그의 아픔과 상처만이 남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내가 누군지 남이 알 수 없는 온라인 공간에서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날마다 막말과 비하, 저주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상대 진영을 공격하며 쓰는 용어는 이미 지역감정 조장이나 욕설 수준을 넘어 인용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중장년층 구분 없이 상당수가 대면 상태라면 부끄러워 도저히 할 수 없는 언어의 배설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문제는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 커뮤니티를 들여다보고 자란 청년들의 언어와 반응이 어른들이 보여준 양태와 다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지금은 신분제 조선 시대도 아닌 평등과 정의를 내세우는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21세기 민주주의 시대다. 하지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적 지위 고하를 구분하고 그 배경에 학력을 두는 의식이 청년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아연실색하게 된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배달 노동자 덕분에 편리하게 위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사실에 전혀 고려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의 마음속에서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이들에 대한 무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역시 이 청년만이 가진 뒤틀어진 의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젊은이들이 받아온 우리 교육의 현실이 그 기저에 깔려있다.

또한 노인 공경에 대한 효 의식과 나이 든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심은 어떤가? 이 학생들의 행태는 겉으로 나타난 어느 한순간의 일탈행위로 간주하기엔 너무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런 배경에는 우리 교육의 책임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니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고개를 들기가 민망하고 당혹감을 떨치기 힘들다.

우리의 교육은 온통 입시에 맞춰져 있다. 한때 학생의 적성과 품성 등을 거르는 대입 전형이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교육 효과와 부모 배경에 따른 불공정이 불거지면서 대부분 사라져 간다. 남은 게 고교 내신과 수능에 비중을 두는 전형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교사들이 적는 내용이 있지만, 이 역시 입시에 도움이 되느냐 의문 된다. 아이들은 밤까지 학원을 돌고, 공부로 매겨진 서열을 받아들인다. ‘못 배운 XX가’ 같은 속내를 거침없이 표출하는 젊은이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자조 섞인 한탄이 동반될 뿐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이 사는 지역을 결정짓고, 사교육 등 지역 인프라가 다시 학력 격차를 낳는 빈부 격차의 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실제로 좋은 교육과 고소득 직업을 갖는 데에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이 아니라 좋은 환경을 타고난 덕이 크다. 이제 빈부 격차를 해소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없으면 “그 나이 X먹고 나서 배달이나…” 같은 폭언은 지속될 것이다. 이를 우리는 어떻게 교육하여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길러낼 것인가.

과잠남은 서울의 한 지역 엘리베이터에만 있지 않다. 과잠을 입을 나이가 지난, 우리 어른들 속에 더 많다. 이것이 문제를 풀어낼 핵심 고려사항이다. 이제 기성세대부터 바뀌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젊은이들이 깜짝 놀랄 속내를 드러낼지 모른다. 인터넷 댓글부터 실명으로 공개하듯이 윤리적 양심과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우리도 적어도 얼굴을 공개하고 쓰게 되면 막말과 폭언은 줄어들 거란 생각이다. 또한 장시간 악조건에서 일하지만 배달 노동자의 월수입이 대기업 직원에 못지않다는 것을 직시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21세기에는 직업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자녀들과 직접 현실성 있는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멀리 있지 않다. 가정이든 학교든, 사회든 어디서나 그리고 언제든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기성세대와 청소년들이 허심탄회하게 솔직한 대화를 나눔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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