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자율 후퇴시킨 교육 3법 징비록
[양영유의 교육 오디세이] 자율 후퇴시킨 교육 3법 징비록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9.01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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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본지 발행인/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민주당 독주로 사학법·고등교육법·초중등교육법 통과

정치공학적 셈법 의혹, 균형감 잃은 포퓰리즘 아닌가
양영유 본지 발행인
양영유 본지 발행인

[에듀프레스]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은 한 마디로 ‘모호’하다.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 교육을 걱정하는 정책인지, 아니면 즉흥적 포퓰리즘 정책인지 교육을 오래 취재한 필자도 헷갈린다. 공정을 앞세운 대입 정시 확대는 얼핏 보면 합리적인 듯해 학부모들의 성원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그간의 수시 전형 확대와 고교학점제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코로나 19 여파로 학생 학력이 떨어지자 화들짝 놀라 방과 후 학교가 학생들을 과외 시키겠다고 하니 학부모들은 환영한다. 그러나 이 또한 뒤집어 보면 정규 수업 시간에는 뭘 하고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인지, 많은 학생이 학원으로 줄행랑칠 터인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일부 학부모의 마음을 잡으려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교육부 공무들원도 고민이 많다. 여느 공무원들보다 일도 열심히 하고 나름 소신도 있지만, 정권 성향에 따라 속절없이 휘둘린다. 누군들 국정교과서 만드는 일에 발 담고 싶었겠나. 업무상 어쩔 수 없이 관여했다가 “반대했다”라고 잘못 알려진 덕분에 승승장구한 행운의 공무원도 있는 걸 보면 이런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대입 공정성 문제, 자사고와 외고 문제, 마이스터고 문제, 학생 기초학력 진단 문제 또한 그간 교육 관료들이 고민을 거듭하며 다듬어온 정책인데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공무원은 “영혼 없는 집단”이라지만, 일하는 보람이 생길까. 그게 대한민국 교육 정책의 현주소다.

그런데 8월 31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독주로 국회를 통과한 교육 3법을 보면 “대한민국 교육에 미래가 있나”라는 자괴감이 든다. 사립학교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개정안이다. 교육계의 공론화나 교육 수요자인 국민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들 3법을 찬찬히 뜯어보니 걱정이 앞선다. 9월 국회로 상정이 연기된 ‘언론중재법’의 사회적 논란 못지않게 교육적 측면에서 논란과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사학 손발을 묶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대학생 시절 사범대생들 사이에 떠돌던 얘기가 있었다. “사립 중·고교 교사가 되려면 버스 한 대는 학교에 사줘야 한단다.” 그 말을 듣고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돈뭉치를 싸서 들고 가야 교사가 된다니, 말이 되나?” 하지만 그랬던 시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교원 임용고시(공립학교) 문턱이 높으니 우회하는 예비교사들을 위한 뒷거래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교사가 된 이들도 있다. 지금 정년을 향해 달리는 일부 교사들인데, 이 글을 읽으면 뜨끔할지도 모르겠다.

일부 사학에 그런 편법과 부정의 악취가 있었던 것은 오래 전의 나쁜 기억이다. 사학 자율을 방패삼아 뒷거래로 주머니를 채웠던 거다. 물론 일부 사학에 불과해 침소봉대해서는 안 되지만, 전국의 사학이 자성해야 할 부끄러운 과거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이 최근까지도 심심찮게 터지곤 한다. 모 여중의 교직원 채용 비리 사건, 모 고교의 신규 임용 교사 금품 요구 사건, 모 여고의 학생부 조작 사건, 모 고교의 시험지 유출 사건…. 모두 사학에서 벌어진 일이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런 음습한 거래를 한 교사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그런 일부 사학의 비리가 빌미가 됐다. 법안의 핵심은 ‘사립학교 교원의 신규 채용 시 공개 전형에 필기시험을 포함하고, 이를 시도 교육감에게 위탁해야 한다’라는 신설 조항(제53조2 11항)이다. 현행법상 사립학교는 학교법인이나 사립학교 경영자 등 임용권자가 필기·실기 시험 등을 거쳐 교사를 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채용 시험의 교육청 위탁은 의무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개정 사학법이 교원 채용을 둘러싼 음습한 비위를 차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학은 반대하지만, 국민으로서는 공정한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법안이다.

여기서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학의 자세다. 전국 900개 법인(1,653개 초·중·고)을 회원으로 둔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 협의회는 이 법안이 논란이 됐을 때 ‘대국민 반성문’과 함께 셀프 정화 방안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사학 운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교육감 성향에 맞는 편향적 교사채용이 우려 된다”라며 우는 시늉만 했다.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 가속 페달을 가볍게 생각한 게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개정 사학법을 사학의 자업자득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여당의 독주가 전체 사학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독재의 손’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전체 17개 교육청 중 14개 교육청을 장악한 진보 교육감이 사학의 교원 선발권을 갖게 되면 그 힘은 더 막강해진다. 민주당이 노린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일부 사학의 비리는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사학 비리 근절’을 명분 삼아 사립학교 교원 채용을 교육청에 위탁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학법 개정안을 발의한 지 1년도 안 돼 통과시켰다. 법을 통과시켰으니 이제는 전리품이다. 정치공학적 셈법이란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사학 공동선발 방식을 검토할 만하다. 예컨대 2017년부터 관내 사학들이 필기시험을 공동 출제하는 경북도교육청처럼 시·도별, 또는 권역별로 시험을 공동 출제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경우 사학법 시행령에 ‘법인 공동의 출제’를 명시해야 한다. 사학법은 필기와 면접 등 채용 전 과정을 교육청에 위탁하도록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채용 전 과정을 교육청에 위탁하지 않으면 새로 선발한 교사의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경기교육청처럼 교육감 성향에 따라 제도가 파행될 우려는 여전하다. 따라서 사학이 헌법 소원과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으로 법적 대응에만 나서지 말고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특정 학교의 법인이나 교장에 의해 좌우되는 교원과 교직원 선발의 불신을 씻을 특단의 자성책을 내놔야 한다. 건학 이념을 앞세워 자율만 외친다고 그간의 행태가 덮어지는 건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입의 또 다른 꼼수 사회통합 전형 ‘고등교육법’

입시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면 입시가 산으로 간다. 이념에 따른 입시제도 손질은 언제나 후유증을 유발했고, 교육 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번에도 이념 논란이다. 민주당은 다시 입시까지 법으로 옭아맸다. 8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대학이 모집 인원의 15% 범위에서 사회통합 전형으로 신입생을 뽑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물론 대학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건 바람직하다.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또한 그런 맥락에서 시행되어 온 제도다. 우리도 ‘사배자’(사회적 배려대상)로 불리는 대입 전형을 시행중이다. 그러니 몇 %라는 전체주의 국가 같은 강제 방식은 필요도 없다. 대학이 자율로 선발하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 개정 법안에 ‘차등적인 교육적 보상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차등적인 교육적 보상? 참으로 모호한 표현이다. 자칫 민주화 운동 관련자 자녀 대입 우대정책으로 둔갑할 우려도 있다. 자신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녀들까지 대입에서 차등적인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이미 서울 유수 대학에서 최근 8년간 민주화 운동 자녀 자격으로 119명이나 합격해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사실을 잊었나. 학생 선발은 대학이 알아서 할 일인데 이런 것까지 법안에 넣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다닐 때 짱돌이나 던질 걸”하는 어느 가장의 자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학운위가 사학을 주무르게 하는 초·중등교육법

사립 초·중·고의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학교 발전을 위한 자문 기구다. 훈수는 두되 법적 구속력은 없다. 전국의 사학은 학운위를 통해 학교 운영에 관한 자문을 학부모·교원·지역 인사 등으로부터 받고 있다. 그러나 개정 초·중등교육법은 현재 자문 기구인 사학 학운위를 ‘심의 기구’로 격상시켜 학교의 회계·예산·결산까지 심의하도록 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개정을 추진했다가 “법인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라는 비판 여론에 밀려 포기하더니 16년 만에 다시 밀어붙인 것이다. 진보 진영의 집요함이다.

학운위는 원래 공립학교에서만 심의기구 기능이 있었다. 다양한 인사가 공립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공교육과 학교 자치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제 사학에도 학운위가 심의 기구가 됨에 따라 사학의 자율권이 위축될 우려가 커졌다.

물론 학운위 구성원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덕망 있는 인사들로 짜이면 걱정할 일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사학의 학운위 멤버 중 3분의 1 정도가 지방의원(국회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점에서 학운위의 정치적 중립성도 도마에 올랐다. 더욱이 전체 지방위원 절대다수가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학운위의 기능이 강화되면 이념에 따라 학교 운영 방향과 교과과정, 교과서 선택 등 학교 운영 방향, 학교 급식, 대입 학교장 추천, 교복선택에까지 영향력을 미쳐 정치 세력화할 우려가 있다. 기우이길 바란다. 하지만 민주당이 초·중등교육법을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밀어붙였는지를 반추해보면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교육 3법 독주는 교육 공무원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교육 공무원들에게 들어보니 “참 답답하다. 결국은 욕을 먹는 건 우리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교육은 한쪽 날개로 날아서는 안 된다. 좌우 날개를 힘차게 저어 높이 날아 멀리 보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학법, 고등교육법, 초·중등교육법은 좌우 날개를 균형 있게 젓고 있나. 2021년 9월, 국민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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