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톡] 비주얼싱킹? 그곳에 ‘비주얼’만 남는다면
[송은주의 사이다톡] 비주얼싱킹? 그곳에 ‘비주얼’만 남는다면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8.28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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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서울언주초 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에듀프레스] “나도 그림을 좀 배워볼까.” 여러 교육 매체에서 집필진, 기획자로 참여하는 S는 글쓰기에 특기가 있고 섭외 들어오는 곳이 많아 그것만 하고 살아도 바쁘다. 갑자기 그림을 이야기하니 의아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요즘 ‘비주얼싱킹’이 대세여서인지 S는 어디를 가나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우대받고 포진해있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학습자료 검토나 기획을 요청받을 때도 비주얼싱킹을 활용해달라는 주문이 많단다.

거기에 대세임을 입증하듯 교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선생님들이 비주얼싱킹 판서 사진과 수업자료를 많이 공유하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간단한 얼굴 하나 그리지 못하는 자신은 무력한 느낌이 든다고 S는 말했다.

비주얼싱킹(visual thinking)은 글과 그림을 이용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림이 주가 아니고 맥락적으로 글과 어울려야 하므로 간단한 그림을 지향한다. 몇 년 전부터 교육 현장에서 많이 언급되며 최근 2, 3년간은 학생 대상, 교사 대상 관련 도서가 쏟아져 나왔다.

비주얼싱킹 학습자료가 학습만화와 다른 점은, 학습만화는 만화라는 특성상 글이 적고 스토리 라인에 집중하여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게 하는 매체라면, 비주얼싱킹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며 탐구력이나 연상 능력 등 심화한 인지능력을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학습 방법이자 인지적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비주얼싱킹’ 하면 마인드맵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S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그림이 꼭 필요하지 않은 학습 맥락에서도 ‘비주얼싱킹 테제’가 고수될 때이다. S가 자신이 검토하고 있는 학습자료 파일을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다. 학습 내용은 역사와 지리가 통합된 주제였고 학습지는 그 지역의 특산물과 인물을 배우기 위해 특산물과 인물을 그리게 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학습지는 세계 각국의 특징을 정리하는 학습지였는데 나라마다 기록하는 난이 그 나라의 특산물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태국은 코끼리 모양으로 공란이 되어 있고 학생들은 그 코끼리 그림 안에 태국과 관련된 내용을 적는 것이다.

“음, 이 주제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 코끼리 모양 공란은 좀 비효율적인 것 같네.”

코끼리가 이 좁은 A4 용지라는 바늘구멍에 들어오기 위해 무리하게 몸을 구겨 넣은 듯한 자료를 보고 나도 모르게 조금 웃음이 나왔다.

S는 드로잉 능력이 교사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필수 자질이라는 생각을 해서 그림을 배워볼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림 혹은 이미지라는 수단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판 없이 수용되는 현 세태에 회의가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메타인지적 이동이 일어나기 딱 좋겠어. 아이들이 이 지역 위인 이름을 기억하기보다 그림 그리다가 끝나겠는데?”

메타인지적 이동은 극단적 교수 현상 중 하나로, 학습자가 배워야 할 본질적인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제시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자료 자체에 학습자의 주의가 집중되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말한다.

지역의 위인에 대해 배우는 내용이라면 위인의 이름과 업적, 지역과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기억해야 하는데 학생이 위인의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알아야 할 것을 놓치는 현상이 그 예이다.

이미지와 글이 함께 작용할 때 나오는 직관적 이해라는 시너지 효과도 있지만, 뇌과학적으로 이미지와 긴 호흡의 글이 각각 작용하는 부분이나 기억 장치가 다르다는 점에서도 이미지는 신중히 사용되어야 한다.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고 걱정하는 문해력은 문장 단위 이상의 글을 읽고 이해할 때 특히 요구되며, 이때 학생들은 장기 기억 장치에 있는 스키마를 활용해야 맥락을 이해하며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그림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이야기 나온 김에 교사 커뮤니티에 최근 올라온 비주얼싱킹 자료들을 함께 쭉 살펴보았다. 어떤 게시물은 판서만 봐도 수업이 보일 정도로 비주얼싱킹의 좋은 예로 보였다. 시간대별 흐름과 중요한 특징을 기억하기 좋게 삽화를 적절히 사용했다.

선생님이 워낙 일러스트 급으로 그림을 잘 그려 판서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일러스트 탄생 과정에 집중하고 감탄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림이 간단하여 주의가 이동하는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고 전체 판서가 완성된 후 내용을 정리하기에는 판서가 그림과 글이 적절히 어우러져 유용해 보였다.

어떤 학습자료는 비주얼싱킹이라고 하는데 학습만화인지 단순 삽화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그림이 쓰인 이유와 그림으로 얻은 효과가 생각 정리나 사고력 발달과 이어졌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비주얼싱킹을 한다고 교사가 꼭 해당 삽화를 수려하거나 예쁘고 귀엽게 그릴 필요는 없다. 그 그림이 맥락과 어울리고 학습자가 본질을 바라보는 과정을 침해하지 않으면 비주얼싱킹은 타당하다.

비주얼싱킹 관련 도서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사고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빠르고 간단하게 그려야 하고 특히 관계, 시간, 흐름과 관련된 맥락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비주얼싱킹을 한다고 하다가 학습자가 싱킹까지 이르지 못하고 비주얼에서 끝나 버리지는 않겠는지, 학습 상황에서 그림을 활용할 때 한 번쯤 멈춰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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