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說] 된 사람은 어디 있나요?
[송재범의 교육說] 된 사람은 어디 있나요?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7.03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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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재범 서울 신서고등학교장
송재범 서울신서고등학교 교장
송재범 서울신서고등학교 교장

[에듀프레스] 교육부•국가교육회의는 공동으로 2022 개정 교육과정 작업 중 국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은 교육의 가치와 방향, 교육과정 운영 및 지원 방향 등 전체 15개의 문항으로 구성하여, 5월 17일 ~ 6월 17일까지 한 달 동안 진행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총 101,214명이 설문에 참여하였다. 나도 참여하였다. 이 중에서 추구해야 할 교육의 가치와 방향에 해당하는 3가지 문항(1번, 2번, 7번 문항) 내용 및 설문 결과를 살펴보자.

<문1>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과 가치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1순위와 2순위를 각각 선택해주세요.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성장 (설문결과 ③위-15.6%)

▪학습에 대한 지속적인 흥미와 동기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성 인정

▪국가에 이바지할 인재 육성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

▪개인과 사회 공동의 행복 추구 (설문결과 ①위-20.9%)

▪공정한 교육 기회

▪학생 한 명 한 명의 존엄성

▪자기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자기주도적 학습 (설문결과 ②위-15.9%)

<문2> 다음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미래 인재상과 관련된 주요 단어를 제시한 것입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1순위와 2순위를 각각 선택해주세요.

▪융합 ▪혁신

▪창의 (설문결과 ③위-15.2%) ▪주도성

▪문제해결 ▪배려 (설문결과 ①위-22.4%)

▪포용 ▪책임감 (설문결과 ②위-19.3%)

<문7> 초•중•고등학교에서 현재보다 더 강화되어야 할 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1순위와 2순위를 각각 선택해주세요.
▪안전, 건강 관련 교육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디지털 소양 교육)

▪인성 교육 (설문결과 ①위-36.3%)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교육

▪민주시민 교육

▪진로, 직업 교육 (설문결과 ③위-15.2%)

▪기후환경 변화 등 생태전환 교육

▪글쓰기, 독서,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 교육 (설문결과 ②위-20.3%)

▪수학, 과학 교육

설문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교육의 지향점과 가치로서 개인과 사회 공동의 행복 추구,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성장이 중요한 것으로 선택되었다. 미래 인재상과 관련해서는 배려와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1, 2위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초•중•고등학교에서 현재보다 더 강화되어야 할 교육으로는 인성 교육과 인문학적 소양 교육이 또한 1, 2위로 선택되었다. 1, 2, 7번 문항의 설문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우리 국민이 미래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인성 교육이다.

예상된 결과일까, 아니면 의외의 결과일까? 평소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나였기에, 이 결과에 반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성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인성 교육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한 목소리보다는 서로 다른 주장들이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인성 교육에 1위 표를 던진 36.3%의 국민들은 각자 인성 교육의 의미를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인성 교육의 방법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을까? 인성 교육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민주시민 교육’이 같은 설문 문항의 선택지에 있으면서도 많이 선택받지 못한 것은 왜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 예전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등장했던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난 사람이란 명예와 권력을 얻어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을 말하고, 든 사람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이 많은 전문가를 말한다.

그리고 된 사람이란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인간미가 넘치는 착한 사람을 말한다. 인성 교육[도덕•윤리 교육]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인간상이 바로 된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성 교육[도덕•윤리 교육]에서 이러한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바로 합리주의적 도덕 교육론이 득세하면서부터이다. 합리주의적 도덕 교육론에서는 학생들에게 주입식 덕목 교육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도덕적 문제에 대하여 ‘고민해 보게’ 하거나, 혹은 행동의 이유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도덕•윤리 교과서나 인성 교육 교재를 보면, ‘~ 덕목을 갖춘 ~ 사람이 되거라’보다는 도덕적 갈등[딜레마] 상황을 부여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고 묻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런 합리주의적 도덕 교육론의 등장은 칸트로 대표되는 의무론적 윤리학과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결과론적 윤리학이라는 서양 근대 윤리학의 합리주의적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칸트는, 무엇이 옳은 행위인가, 또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에 집요한 관심을 가졌다.

이성에 의해 합리적으로 따질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가, 나의 행동을 이성에 비추어볼 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칸트가 심각하게 물었던 물음이었다.

칸트의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칸트 이후의 사람들은 칸트 식으로 도덕•윤리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보다는, 도덕적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하는 행동의 “이유”를 묻는 것을 도덕 교육, 인성 교육의 당연한 과제로 여기게 되었다.

핀콥스(Edmund L. Pincoffs)는 이유 제시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근대 윤리학의 이러한 측면을 가리켜서 “문제풀이식 윤리학(quandary ethic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핀콥스에 의하면 “문제풀이식 윤리학”은 윤리학의 핵심적인 과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즉, 근대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에 있어서의 “골치 아픈 문제(quandary)”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풀이식 근대 윤리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합리주의적 도덕 교육론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강제 주입식의 덕목 교육이나 무조건적인 도덕적 행동의 요구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수긍할 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도덕적 행동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합리주의적 도덕 교육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도덕 교육과 인성 교육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우리의 삶에서 시시각각으로 당면하는 실제의 윤리적 사태마다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큰 난점을 가지고 있다.

윤리적 사태가 벌어진 맥락이나 행위자의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떤 특정 장면[딜레마]에 적용되어야 하는 도덕 원리나 행위의 정당성만을 찾아나서는 문제풀이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고 비판적으로 고민은 많이 해보지만,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한 윤리학자의 지적처럼,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도덕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이런 “문제풀이식 윤리학”을 배격하고 그 대안으로 근래 부상한 것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를 대표 주자로 하는 “덕 윤리학(virtue ethics)”이다. 고대 윤리학자들처럼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도덕적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덕 윤리학은 도덕적 행위보다는 도덕적 행위자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어떤 종류의 행위를 해야 하는가?’보다는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중시한다. 행위(doing)보다는 존재(being)에 관심을 둔다.

이 입장에서는, 도덕적 사태에 직면하여 덕 있고 훌륭한 품성을 가진 사람이 바람직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즉, 행위자의 덕 또는 품성에 따라 바람직한 도덕적 행동이 정해진다고 본다.

이러한 덕 윤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인성 교육[도덕•윤리 교육]은 학생들을 도덕 문제의 탐구자가 아닌,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약속을 왜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따질 수 있는 비판적 능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하기보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 거짓말을 하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합리주의적 도덕 교육론에 빼앗긴 ‘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학생들에게 미래 교육 군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창의, 융합, 자기주도성 등과 같은 다양한 능력으로 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난 사람’, 머리에 ‘든 사람’을 넘어, 미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쎈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된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추억 속의 존재로만 기억될 것인가? 2022 개정 교육과정 설문에서 인성 교육에 1위 표를 던진 국민들이 생각하는 인성 교육의 의미가, 도덕적 품성을 갖춘 ‘된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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