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교사에게 어떤 학교 밖의 시선이 필요한가?
[전재학의 교단춘추] 교사에게 어떤 학교 밖의 시선이 필요한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6.22 09: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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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최근에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저학년 학생들의 가정통신문에 게재됨으로써 학부모들의 공분을 자아낸 말이다. 비록 이 말을 어떤 특별한 맥락에서 사용했다 하더라도 인간과 세상을 향해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어린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지극히 비교육적인 말이다. 한 마디로 세상 만물은 각자에 맞는 기능과 역할이 존재한다. 물체는 물체로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고유한 존재의 의미와 역할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기의 지덕(知德)을 연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부터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하여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기의 구슬을 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역사의 쓸모에서 볼 때도 우리는 어떤 역사든 그로 인해 교훈을 얻는다. 비록 그것이 오욕과 능욕의 역사라 할지라도. 우리의 기나긴 굴욕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몽골 지배,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 등이 남긴 역사를 보자. 여기서 원하든 원치 않던 후세대인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는 누구인가, ……’ 등등 시대적 통찰력을 얻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 비온 뒤 더욱 단단해지는 역사를 체험하지 않았던가.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국가 발전에 교육은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 저력의 기반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어낸 우리 국민의 기저에는 교육의 역할이 차지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교육은 새로운 시대 발전의 주춧돌로 존재하고 기능해 왔다. 그래서 미래 세대인 청소년을 교육하는 학교는 더욱 존재의 의미와 역할을 기대하는 곳이다. 여기엔 학교가 교육의 시선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등 많은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즉, 학교에는 교육에 필요한 교사의 시선이 존재한다. 그 시선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교육은 더 먼 곳을 보고,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교육 기관에 그런 교육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대부분 입시 행정 기관으로 전락했고, 모든 정책은 입시로 귀결되고, 여론을 살핀다. 교육에 가치를 두고 뚝심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교육 관료들은 그런 철학이 의문시 된다. 예컨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라. 2025년에 고교학점제의 전면적 실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에 수반될 필요한 정책들은 이율배반적이다. 단적인 예로 입시화된 교육은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수시전형이 우리 사회를 뒤흔든 특정인의 사건을 계기로 교육의 공정성만을 내세워 정시 비율을 상향시켜 또 다시 오지선다형 문제풀이식의 과거의 교육으로 회귀하였다. 즉 교육의 시선, 교육 철학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에서도 교육 당국은 갈팡질팡하기에만 바빴다. 날마다 지침이 달라졌다. 그리고 학교에 관한 소식을 공문이 아닌 포털 뉴스로 듣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러니 우리 교육은 교육청 또는 교육부 차원에서 하는 정책 토론회나 연수에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교사의 자존감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기엔 교사의 아픔에 귀 기울여주고, 그 마음에 다가서는 언어가 없다. 특정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교사를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감지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관(官) 주도 모임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 이처럼 교육청, 교육부가 순수성을 잃고 제구실을 못하니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교사는 특정인이나 민간단체 주관의 모임에 열성적이다. 방과 후 늦은 시간에 그리고 주말에도 불구하고 찾아가 자신을 구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왜 그럴까? 여기엔 교사의 존재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교사들의 내면 탐색을 통해 진짜 고민을 찾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수업 능력을 향상시키는 힘을 찾게 한다. 집단 지성을 발휘하여 연구 과제를 만들고 이를 일정 기간 동안 같이 공부하게 한다. 그 결과 교사들은 책을 발간하고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박사 학위까지 얻는다. 보통의 교사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마음을 모으고 생각을 합치니 교사로서의 전문성이 향상되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이런 모습은 학교 밖에서 자율적으로 모이는 교사 커뮤니티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예(例)로써 교사끼리 서로 모여 그림책을 연구하고 독서 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자료를 만들고 만화나 여러 놀이를 개발하여 교사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등 학교 밖에서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학교는 교사의 고민을 들어주고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교육의 장(場)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넉넉한 예산, 트랜드에 맞는 연수, 저명한 교육자, 연구 학점 … 아니다. 필요한 것은 교사에 대한 따뜻한 환대와 굳건한 신뢰다. 교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그리고 교사에게 건네는 진심의 소리, 응원과 격려가 교사를 진정한 교사로 존재하게 만든다. 그러려면 학교 밖에서 교사에게 보내는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고용불안의 시대에 단지 철밥통이라는 이유로, 방학 동안에 일하지 않고 놀면서 월급 탄다고 바라보는 지극히 사실적이지 않은 겉보기 이유로, 어느 직종에나 있는 일탈적인 행위를 교사만이 예외인 것처럼 소수 교사들이 저지르는 행위가 마치 모든 교사가 그런 것처럼 공격의 대상, 마녀사냥으로 삼는 것은 지나치다. 요즘은 차기 대선에 나서는 정치인들이 능력 없는 교사 퇴출을 명분으로 교사 때리기에 나섰다.

오늘도 묵묵히 학생들을 뒤에서 지켜보고 돌보며 교육을 행하는 양치기와 같은 교사, 비오는 날 우산을 기울여 학생들을 위해 받쳐 들고 동행하는 교사, 하나라도 잘 가르치려고 밤 세워 수업 자료를 만들고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하며 수업의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교사, 자살 위기에 처한 고위험군 학생을 가족처럼 정성껏 지도하는 교사, 학생들이 행복한 배움으로 학교생활을 즐겁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교사, 독서와 토론, 글쓰기 지도를 통해 학생의 학문적 성장을 돕는 교사, ……. 이루 말할 수 없는 교육활동으로 사도(師道)를 걷는 이 땅의 교사들에게 이제는 따뜻한 학교 밖으로부터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교육이 살고 그 주체인 교사가 학교에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한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듯이 교사가 보람과 만족, 자부심을 가져야 청출어람(靑出於藍), 후생가외(後生可畏)의 교육으로 보다 나은 제자, 두려울 만한 제자를 육성할 수 있다. 다시금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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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2021-06-22 10:24: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