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 칼럼] 유은혜의 눈물
[양영유 칼럼] 유은혜의 눈물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6.19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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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단국대 특임교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감성적이다. 잘 웃지만 잘 울기도 한다. 유치원 파동 때도,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 때도, 고 3생들의 강릉 팬션 참사 때도, 그리고 총선 불출마 선언 때도 울먹였다.

“저도 또래 자식이 있다”, “부모님 아픈 마음 누구보다도 잘 안다”, “제 터전이었던 일산을 생각하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눈물은 대중의 마음을 녹였다. 함께 울며 눈물을 닦아주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2018년 9월 청문회 당시 치명적이었던 ‘딸 위장 전입’을 비롯한 너저분한 흠결도 지금은 거의 잊혔다.

입각 당시 “청문회에서 시달린 분이 일을 더 잘한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상한 격려를 받더니 취임 초기 1년 남짓 동안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눈물을 흘렸다. 이미지 정치인의 감성적인 교육 행보다.

그러나 나는 눈물의 진위가 궁금하다. “눈물에는 선한 눈물과 악한 눈물이 있다.

선한 눈물은 오랫동안 자기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정신적 존재의 깨달음을 기뻐하는 눈물이고, 악한 눈물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선행에 아첨하는 눈물이다(톨스토이)”. “눈물은 약함의 표시가 아닌 강함의 표시이며, 만 개의 혀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워싱턴 어빙)”는 현자의 말도 떠오른다.

눈물은 만 개의 혀보다 설득력…선한 눈물인가, 악한 눈물인가

유 장관은 취임 초창기와는 달리 이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역대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는 고작 1년 남짓이었다. 그런데 유 장관은 2018년 10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32개월째 장관직을 수행하며 역대 최장수 기록을 깨고 있다.

그런데 문뜩 현자들의 ‘눈물’에 대한 촌철살인이 떠오른 건 유 장관의 교육 행보와 눈물의 진정성이 충돌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우선, 진심으로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었어야 했다. “자사고 돌려줘”, “학교는 우리 겁니다”, “내로남불 물러가세요”…. 절규하는 학생들의 눈물 속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선한 눈물은 그런 때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진보 교육감을 병풍처럼 세우고 폐지 가속 페달을 밟았다. 법정 소송으로 비화한 자사고 문제에 대해 법원이 모두 자사고의 손을 들어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자식은 좋은 학교 보내려고 위장 전입까지 했던 터에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5년부터 자사고와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키로 하는데 총대를 멨다. 문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며 괜히 격려한 게 아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입 흔들, 수능 40%와 고교학점제 상충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입을 흔들었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와 정시 수능 40% 반영은 상충하는 정책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내로남불’이 대입을 흔들고 교육의 방향타를 잃게 한 셈이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지금은 연간 출생아 수가 27만 명으로 주저앉은 심각한 저출산 시대다. 재수생을 포함해 30만 명이 입시를 치른다고 가정하고, 30만 명 전원이 20년 후 대학에 간들 현재 대입 정원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다.

30만 명 중 여학생이 15만 명이면, 이들이 모두 결혼해 자녀를 두 명씩 나아야 30만 명이 유지된다. 유 장관은 자식 둔 엄마로서 누구보다도 잘 알 터이다. 그런 절박한 패러다임 전환기에 대입을 포함한 대한민국 교육 디자인에 헌신하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다.

역사에 남을 명품 교육장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 총선 때 출마를 포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금배지를 포기한 게 그리 아쉬운가. 적절한 눈물이 아니다.

유 장관은 사실 이번에 눈물을 흘렸어야 했다. 바로 6월 2일 중. 고교생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통상 학생성취도 평가 결과는 교육부 차관이 발표했었는데 이번에 장관이 직접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취임 초에는 언론 인터뷰를 자제해오던 유 장관은 최근 부쩍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차관이 발표하던 학생성취도 평가결과 발표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뭔가 전향적인 계획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등교 수업을 확대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코로나 19가 사태 이후 초·중·고 수업에 혼선이 빚어지고, 학생 등교를 막는 일에만 매달려왔으니 결과는 이미 예상됐었다. 중·고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역대 최대로 나타나고, 수포자(수학 포기자) 비율은 13%로 치솟았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지역 격차다. 읍면 지역 중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가 9.6%, 수학은 18.5%였다. 반면 대도시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가 5.4%, 수학이 11.2%였다.

이런 현상은 지역별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기계적인 비대면 수업을 진행한 데다 대도시에선 비대면 수업의 틈새를 비집고 사교육만 기승을 부린 데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코로나로 중고생 수포자 13%, 어제 가르친 대로 가르쳐선 안 돼

그렇지만 유 장관은 “학습 결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했을 뿐 자성의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교육부는 학습 결손 극복 종합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팬데믹 사태 이후 벌써 세 번째 학기가 끝나가는데 대체 그동안 무슨 대비를 해왔는지 모르겠다.

학업성취도 성적표는 교육부에는 ‘죽비’나 다름없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하다, 2017년부터는 일부 표집평가로 전환했다.

전교조가 전국 전수 시험을 ‘나쁜 서열 매기기’라고 주장하자, 문재인 정부가 표집평가로 바꾼 것이다. 그 결과가 학생 실력 추락으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중·고생이 이런 상황인데 초등생은 어떨까. 아찔하다.

중고생의 역대급 기초학력 미달은 물론 코로나 19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교사도, 학부모도 한숨이다. 그런 걸 대비했어야 할 교육 당국은 ‘코로나’ 뒤에 숨어 학생 실력 문제에 소홀했다.

교육부가 아둔하다면 국가교육회의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한술 더 떠 실력 경쟁을 적대시한다. 게다가 진보 교육감들은 학업 성취도 전수 평가를 ‘서열 매기기’로만 비난할 뿐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대체 대한민국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나.

이런 때 유 장관이 나서야 한다. 이미지 감성 정치인이 아니라 엄마 마음의 ‘유은혜 교육’을 펼쳐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또 다른 정치적 자리를 탐하지 말고 교육에 혼신을 기울이면 된다. 무엇보다 “나 때는 이랬어(Latte is a horse)”로 상징되는 ‘라떼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진영 논리를 떨쳐야 한다.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라떼 교육’을 좇아 서는 유은혜 교육은 없다. 존 듀이는 “어제 가르친 대로 오늘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If we teach today as we taught yesterday, we rob our children of tomorrow)”이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이 이 말을 새겼으면 한다.

양영유 = 언론인 학자다. 마음은 따듯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중앙일보 교육담당 기자로 현장을 탐색했으며, 사회1부장, 사회부국장, 행정국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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