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의 敎育樂書] '우와'한 시인
[원시인의 敎育樂書] '우와'한 시인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5.31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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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 호 현 배화여중 교사
신호현 서울배화여중교사
신호현 서울배화여중교사

[에듀프레스] 제가 국어수업을 위해 교실로 들어갈 때면 가슴이 마구 설렙니다. 종소리보다 빨리 들어가고 싶어 종종걸음을 칩니다. 어느 때는 종소리보다 더 먼저 와서 교실 앞에서 기다립니다. 종이 울리면 교실문을 열면서 "즐거운 국어시간이 돌아왔습니다.~"를 외칩니다. 아이들은 국어시간이 되면, 종소리보다 빨리 자리에 앉습니다.

국어교과서를 꺼내고, 필기할 노트(플래너)를 준비합니다. 종소리와 함께 원시인 선생님의 "즐거운 국어시간이 돌아왔습니다.~"로 만납니다. 그 때 아이들은 "우와~!"하면서 박수를 쳐줍니다. 

 '우와~' 소리를 들으면 내면에 잠자던 기쁨들이 본능처럼 깨어 일어납니다. 수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납니다. 찡그린 주름살이 확 펴지고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아이들의 '우와~'가 원시인을 깨웁니다.

황량했던 교실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봄꽃처럼 잎도 없이 꽃을 피웁니다. 순간 저는 선생님이 아니라 정원사가 됩니다. 저마다 꽃들에게 물을 주고 거름을 뿌려주는 정원사가 됩니다. 교과서는 단지 아이들에게 저의 사랑을 나눠주는 물뿌리개일 뿐입니다.

    "애들아! '우와'의 반대말이 뭘까? 한 글자인데..."
   "우~", "노~", "헉~", "헐~"
   "그래, 맞아! '헐~'이야."

   [옛날에 ‘우와’와 ‘헐’이라는 아이가 한 집(뇌)에 살았어요. ‘우와’는 하는 말마다 항상 “우와~”를 말하고, ‘헐’은 하는 말마다 항상 “헐….”을 말하는 아이였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겨우 내내 집에서 우울하게 지내던 두 아이는 세상 소풍을 가게 되었어요. ‘우와’와 ‘헐’이 골목을 벗어나자 예쁜 개나리꽃이 고개를 내밀었어요. ‘우와’는 꽃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며 “우와~, 정말 예쁜 꽃이구나.”라고 말했어요.

개나리꽃은 그 말을 듣고 싱글벙글 웃었어요. 그걸 지켜보던 ‘헐’은 뒤늦게 따라와 “헐... 매년 피는 꽃인데 뭘! 곧 시들고 말걸.”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꽃은 웃음을 멈추고 울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헐’은 꽃을 위로하지 않고 지나쳤어요. 둘은 들판에 이르자 하늘로 솟구치는 분수가 있었어요. '우와'가 먼저 달려갔어요. “우와! 하늘 높이 솟구치는 분수구나. 부수를 보면 새로운 힘이 솟구쳐 올라!" '헐'은 뒤늦게 따라오며 "헐... 올라가다 제풀에 지쳐 떨어지고 말걸." 어느 덧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어요.

‘우와’와 ‘헐’의 엄마는 자녀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밥을 준비했어요. ‘우와’가 먼저 식탁을 보면서 “우와! 엄마가 만드신 요리가 최고예요! 정말 맛있어요.”라고 말했어요. 엄마는 어깨가 으쓱으쓱거렸어요. 그러자 ‘헐’이 앉으며 “헐... 맨날 같은 반찬이야. 그 밥에 그 반찬!”이라고 말했어요. 엄마는 화가 나서 들고 있던 후라이팬으로 '헐'의 머리를 내리쳤어요.]

   시인은 '3사의 긍정'을 말합니다. '사람에 대한, 사물에 대한, 사건에 대한 긍정'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우와'도 살고, '헐'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긍정으로 보면 참으로 예뻐 보입니다. 사물을 긍정으로 보면 하나하나가 소중해 보입니다.

사건을 긍정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시인은 세상을 긍정으로 깨우는 신의 언어를 내려 받아 세상에 전하는 일입니다. 이 얼마나 '우와한 시인'입니까?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예찬’에서는 생활 속에 만난 존재와 사물들을 깊고 섬세한 눈으로 관찰하며 ‘예찬’하고 있습니다. 정원사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잡초들조차 예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헐뜯는 것은 참 잘하지만 남을 예찬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도, 사물도, 사건도 안 좋은 것은 눈에 잘 띄는데 잘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학생들을 칭찬하는 선생님이라면 가장 훌륭한 시인은 '3사의 긍정'을 넘어 '3사의 예찬'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시인이 다른 수필가나 소설가와는 달리 사람 인(人)을 붙인 이유는 詩人은 '때가 묻지 않은 동심, 그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야 한다.'는 이유랍니다. 더 깊이 헤아려 보면 詩는 말씀 언(言)에 절 사(寺) 자를 붙였는데 절은 신들이 사는 집을 의미했으니 신들의 언어를 내려받는 것이 詩人인 것입니다. 어쩌면 詩는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세상을 예찬하는 언어요. 詩人은 그러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詩는 경전이요, 시인은 세상을 깨우치는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인이 정치를 하고, 시인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인이 가정을 꾸린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요. 시인은 돈 앞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부귀영화로 치달려도 시인은 초가삼간 달빛 한 조각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문학상을 받고, 회장이 되어도 시인은 명예를 탐하지 않아야 합니다.

문학을 이용해서 이름을 알리고 그 이름으로 권력을 쟁취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하늘의 이치를 밝혀 세상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라야 비유, 상징, 반어, 역설, 풍자 등 문학의 5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따스한 봄볕에 민들레는 가장 먼저 노란 꽃을 피웁니다. 겨우내 삭막했던 개나리는 가지마다 풍성히 노란 꽃을 피웁니다. 개울가, 연못가마다 벚꽃은 하얗게 인사를 합니다. 시인은 봄 햇빛처럼 하늘의 언어로 세상을 읊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개나리꽃처럼 노랗게 세상 가득 피어날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벚꽃으로 하얗게 인사를 할 것입니다. 소외받은 이들이 노란 민들레로 다시 희망이 될 것이고, 이어서 연분홍 진달래 같은 청년들이 직장을 잡아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봄꽃 동산이 되고, 푸른 신록의 여름 동산이 되며, 풍성한 결실의 가을 동산이 될 것입니다.

   '딩동~댕!' 어느 새 새로운 수업을 시작하라는 종소리가 들립니다. 에고! 이번엔 원시인 선생님이 교실을 향해 마구 달려갑니다. 소란하던 교실이 종소리에 일순간 조용해지고 "즐거운 국어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우와~" 저는 ‘우와’한 시인이 되고 싶어 아이들에게 詩를 가르칩니다.

적어도 이 아이들이 꾸려가는 미래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희망찬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아이들을 저마다 '우와‘한 시인으로 피워내어 詩를 통한 아름다운 개혁, 詩를 통한 희망찬 혁명을 꿈꾸겠습니다. (21세기 원시인 신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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