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육아시간 써도 할 일은 다 합니다"
[송은주의 사이다 톡] "육아시간 써도 할 일은 다 합니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5.29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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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에듀프레스]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 19조 2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근로시간의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에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공무원은 자녀 한 명이 72개월이 되기 이전 24개월간 1일 2시간 육아시간을 쓸 수 있다. 한 달 동안 출근을 20일 한다면 20일*2시간*24개월 총 960시간을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시작 날짜가 언제든 그로부터 한 달 단위로 계산되며 한 달 이내에 하루만 써도 1개월 치 육아시간을 쓴 것으로 처리가 된다.

그러니 육아시간을 쓰는 사람은 한 달 중 하루든 며칠이든 최대한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담당업무가 있는 사람들로서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복직 전 초등교사의 삶을 다룬 책을 집필하면서 여러 초등교사를 인터뷰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이 가진 권리를 최대한 누리려고 하는 만큼, 부모가 된 교사들은 육아시간 등 복지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교과전담을 맡은 초등교사 K는 인터뷰에서 육아시간을 쓰는 대신 주말에 학교를 나간다고 했다. 육아시간을 쓰는 만큼 채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만 수업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려고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필자도 복직 후 워킹맘으로서 육아시간을 쓰며 일을 해 보니 그 상황이 이해되었다. 필자는 학교에서 4학년 담임, 업무난이도 B인 업무를 맡고 있다(부장교사 업무가 A, 부장이 아니면서 난도가 높은 업무가 B이다).

서른세 명의 담임이자 임원선거, 임원교육과 인권교육, 학생 중심 자치교육, 화합 캠페인 등이 주 업무라서 매달, 매주 일이 끊임없이 있다. 학급 운영과 수업 준비를 충실하게 하지 않으면 솔직히 아이들 앞에서 교사로서 민망하고 미안하므로 나름대로 수업 준비도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자면 육아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 시간을 대체할 다른 시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대의 수업 준비는 이전과는 또 달랐다. 우리 학교는 2주간 목~수요일 1주 등교, 목~수요일 1주 원격으로 수업한다. 원격수업을 하는 주에는 시간과 체력, 기술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담임의 철학과 학급운영 방침이 녹아있는 콘텐츠 수업을 제작하려고 노력한다.

3월에는 체육 원격수업에서도 학년에서 제작한 영상에 우리 반 영상은 담임인 내가 함께 운동을 따라 하는 장면을 작게 삽입하는 등 ‘영상 수업에서도 선생님이 너희와 함께한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학년에서 만든 영상에 따로 비디오를 삽입하고 재편집하는 과정이 너무나 오래 걸리고 다른 과목 수업 제작에까지 영상을 미치게 되니 여러 가지로 득보다 비용이 큰 것 같아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살릴 것과 내려놓을 것을 가다듬으며 코로나 시대의 담임 생활에 적응한 지가 어느덧 3개월이 되었다.

3월에는 육아시간이 있어도 거의 쓰지 못했고, 학교 업무와 온 오프라인 수업 준비를 하느라 2, 3시간만 잤다. 육아시간을 못 쓰니 지방에 계신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4월부터는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게 되었고 육아시간을 주 1, 2회씩은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육아시간을 쓰면 단축된 2시간을 어떻게든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업무담당자로서, 담임교사로서 내 일을 철저히 처리하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업무시간은 매일 8시간 이상 채우게 된다.

육아시간을 쓰지 않는 날은 4시 40분 정시 퇴근을 하지 못하고 초과근무를 할 때도 많다. 5월 들어서는 그냥 육아시간을 매일 쓰는 것으로 신청은 해 놓았는데 실제로 매일 쓰지는 못하고 몇 분만 더 하다 가야지 하다가 결국 한 시간, 두 시간이 가서 복무상으로는 퇴근한 사람이지만 교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도 많다.

결국, 그 과정에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거나 아이가 혼자 유치원에 남아있어야 하는 등 여러 사람의 양해와 도움이 필요하다.

지방 외근이 잦은 남편도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고, 지방에 사시는 친정어머니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날에는 육아시간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러나 오늘 일찍 퇴근하면 결국 오늘 다 못한 일을 하기 위해 또 다른 시간을 내어 일해야 하는 상황을 보면 결국 조삼모사다.

실제로 필자는 매일 아침 시간~1시간 반 이상 일찍 출근하고 아이가 잠든 후 수업 준비를 하며 그 시간을 보충한다. 사실 수업이란 욕심껏 준비하면 그 준비가 끝도 없는 만큼 다음 날 4, 5시간씩 수업을 하려면 방과 후에 수업 준비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다. 거기에 학급 일 외의 업무까지 있는 워킹맘, 워킹대디라면 당연히 육아시간 이상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육아시간 쓰는 사람으로서 소회를 길게 적은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육아시간을 쓰란다고 쓰냐’라거나 ‘육아시간을 쓰는 사람들은 일을 대충한다’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육아시간을 써도 할 일은 다 한다.

단축된 근무시간 내에 모든 일을 철저하게 해 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게 안 되면 단축된 시간을 대체할 시간을 스스로 따로 내어 보충하는 사람도 있다. 상황에 따라 시간 운용 방법이 다를 뿐, 업무를 맡은 사람으로서 각자 일에 책임을 지고 충실하게 해낼 수 있다.

오히려 겉보기에 육아시간이라는 복지체계가 확실하므로 ‘일하면서 육아도 할 수 있는 여건이니 좋겠다’ 또는 ‘시간 많겠다’라는 인식 때문에 직장 일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더 많이 지는 워킹맘 워킹대디도 많다.

정상적인 업무 운영이 가능하도록 본인이 책임감 있게 업무에 임하는 한, 어떤 직장도 육아시간을 업무 핑계로 거부하거나 제도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육아시간이 자리 잡지 못한 직장에서는 육아시간 사용을 권장하며 문화를 만들고, 육아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에서는 육아시간을 쓰는 사람을 마치 모두 업무 태만인 사람들로 바라보지 않는 인식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이 안정적일 때 직장의 구성원으로서도 안정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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